[칼럼]완성차회사의 또 다른 이름, '조립 공장'

입력 2016-06-23 08:10  


 영어 사전에 '어셈블리(Assembly)'는 여러 의미로 해석돼 있다. 입법기관을 의미하기도 하고, 집합과 집결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무언가 모이고, 합쳐진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셈블리를 자동차로 가져오면 '조립'이 된다. 공장을 나타내는 플랜트(plant)가 더해지면 '조립공장'으로 사용된다. 완성차 공장을 '어셈블리 플랜트'로 부르는 배경이다.  


 조립을 위해서는 세분화 된 여러 부분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조그만 부품들이 모여 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모듈(Module)'이라 한다. 그래서 모듈은 크기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개별 세포가 모여 신경조직이 되듯 단품들이 모여 작은 구성품이 되고, 구성품들이 합쳐져 비교적 큰 구성품을 이루게 된다. 큰 구성품은 어셈블리 플랜트에 모이고, 조립이 되면 비로소 완성차가 태어난다. 그래서 자동차회사는 구성품을 조립하는 역할일 뿐 제품력의 뿌리는 결코 되지 못하는 법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자동차도 부품의 기술과 품질이 높으면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져 소비자 선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 수준은 여전히 낮다. 2014년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자동차부품업체' 가운데 한국은 모비스가 6위, 현대위아가 32위, 만도가 45위를 차지했다. 현대파워텍은 54위, 현대다이모스는  71위다.

 반면 1위는 독일 보쉬이며, 캐나다 마그나와 독일 콘티넨탈이 2,3위에 올랐다. 일본 덴소는 4위다. 상위 톱10을 국가별로 봐도 독일 3곳, 일본 2곳, 미국 2곳 등이다. 상위 20위 안에 들어가는 부품업체로 확대하면 일본이 8곳으로 압도적이며, 독일과 미국이 4곳 등이다. 독일과 일본, 미국이 자동차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져가는 배경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같은 완성차로 성장했음에도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얼까. 전문가들은 어렵지 않게 이유를 분석한다. 독일과 일본은 부품업체가 완성차를 떠받치는 구조로 성장한 반면 한국은 완성차가 부품을 견인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점을 꼽는다. 독일과 일본이 완성차를 뒷받침하면서 자체적인 기술혁신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은 국내 완성차에만 집중, 덩치를 키워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었고, 부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분명했다.
 
 그리고 해외 진출의 지각은 종속적 관계의 고착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한국 내 완성차의 요구 사항이 우선이었고, 그 결과 국내 자동차부품산업은 수직 관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최근 해외 진출이 활발하지만 역시 국내 완성차의 해외 공장 진출에 따라 동반하는 것일 뿐 다른 브랜드와의 거래 비중은 미미하다. 지금도 부품업체 대부분은 국내 완성차 회사가 요구하는 스펙에 따라 개발, 생산, 공급만 할 뿐 자체적인 해외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럼 발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결코 아니다. 몇 가지만 해결하면 한국도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다. 부품 업체 CEO를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비용절감과 인력수급의 어려움이다. 

 먼저 비용절감은 연구개발의 투자 여력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얼핏 보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완성차 회사의 일방적인 단가 인하는 부품업체가 확보해야 할 연구개발 투자비를 위축시키게 된다. 부품의 질적 경쟁력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또 하나는 개발자의 모든 눈높이가 완성차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부품업체가 자발적으로 연구개발을 확대하려 해도 국내에서 부품업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싸늘하고, 그렇다보니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완성차회사의 명함을 가지려는 성향이 적지 않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포르쉐보다 보쉬에 서로 입사하려는 독일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완성차회사가 협력업체의 인력수급을 위해 채용박람회 등을 열지만 그보다 부품업체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완성차 대기업의 이익을 부품업체로 나눠주고, 열매를 산업 전반이 골고루 가져가야 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기술 수용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오래 전 중장비 브레이크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가 자동차로 영역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인 예다. 중장비 또한 기본적인 제동원리는 자동차와 같은 만큼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을 만들어 국내 자동차회사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의 연속이었다. 결국 해외 완성차를 찾았고,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부품회사의 M&A도 활발해야 한다. 지금 한국차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기술 주도권이다. 완성차 제조 영역은 서서히 중국이나 인도 등 인건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나마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을 선점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수많은 중소 부품업체의 연합이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황에도 독일차가 선전하는 이유는 기술에 대한 업계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부품업체도 오래 전부터 여러 기술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그러나 한국 내 부품 업체는 합병을 통한 기술의 다양화가 아니라 오로지 지키는데 급급할 뿐이다. 덩치 키우기는 공감하되 정작 행동에는 머뭇거린다. 그만큼 소유욕이 강한 탓이다. 

 부품회사의 브랜드 마케팅도 필요할 때다. 지금까지 완성차 회사가 요구하는 부품만 개발, 공급하는데 집중해 왔다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브랜드 마케팅이 전제돼야 한다. 해보지도 않았고, 또한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낯설겠지만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서도 마케팅이 수반돼야 한다. 마케팅 하라니 TV CF를 내보내고, 신문지면에 그럴싸한 광고쯤으로 받아들이는데, 결코 아니다.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올 가을에 파리모터쇼가 열린다. 현장을 가면 작아도 꾸준히 참가하는 곳도 있다. 다가가 물어보면 '열심히 참가해보니 바이어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할 때 부품 경쟁력이 확보되는 법이다. 그리고 경쟁력은 곧 완성차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완성차공장은 조립공장일 뿐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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