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계현 기자]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또 오해영’의 희란 역, 언제나 당당하고 똑 부러진 여자를 연기했던 배우 하시은을 만났다.
그간 ‘장옥정’, ‘추노’ 등 인기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지만 이번 희란은 어쩌면 데뷔 이후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역할이지 않았을까. 그것이 비록 ‘주인공 친구’ 역이었을 지라도 그는 어느 장면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눈에 콕콕 박히는 연기를 펼쳤다.
예쁘고 섹시한 인생을 사는 희란이 동경하는 언니의 느낌이라면 수수하고 털털한 실제 하시은은 편한 친구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어디에나 꼭 있을 법한, 수다를 떨다 보면 몇 시간이 금세 지나곤 하는 솔직하고 의리 있는 친구. 그런 그가 이제는 누군가의 친구가 아닌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길목에 섰다.
Q. bnt와 첫 화보 촬영이에요. 어떠셨어요?
다른 배우들 사진 보고 정말 멋있어서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직접해보니까 bnt만의 색감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예쁘네요. 좋은 경험이었고 다음에 또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Q.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느낌의 콘셉트도 있었어요. 그런데 평소에도 섹시한 스타일링은 안하고 다닌다고 하시더라고요.
화장도 거의 안하고 굉장히 편하게 다녀요. 자외선 차단제만 바르고 다니기도 하고 모자도 즐겨 써요. 옷도 청바지에 티셔츠 정도로 캐주얼하게 입고요. 희란이와 굉장히 다르죠. (웃음) 그래서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희란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 잘 표현이 안 될까봐요.
Q. 얼마 전에 포상휴가까지 다녀오셨어요. 사실 포상휴가를 아무나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만큼 드라마가 잘 됐다는 걸 느끼세요?
공항에서 처음 느꼈어요. 입출국 할 때 기자분들이 너무 많이 오셨더라고요. 시상식에는 안 가봤지만 정말 시상식을 방불케하는 열기였던 거 같아요. 촬영할 때는 실감 못하다가 그때 아 드라마가 잘 되긴 했구나 느꼈죠. 포상휴가도 그래요. 보통은 촬영 끝나면 쫑파티를 하고 마무리를 짓는데 3박 5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촬영했던 분들과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뜻 깊고 소중했어요.
Q. 촬영장 분위기가 유난히 화기애애했다고 들었어요. 원래부터 출연진들끼리 친분이 있으셨어요?
아뇨, 친분 있는 배우는 단 한명도 없었어요. 여기서 다들 처음 만났는데 어쩜 이렇게 10년 지기처럼 호흡이 잘 맞고 분위기도 좋은지 모르겠다고 모두들 얘기했어요.
Q. 아, 그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막판에 허영지 씨랑 기 싸움하는 촬영을 할 때 정말 재미있게 찍었어요. 그때 제가 좀 파인 옷을 입었는데 영지가 자기도 스팽글 원피스로 힘주고 왔는데 저를 보자마자 위압감을 느꼈다고 대사 까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대사 맞춰보는데 너무 귀엽고 발랄해서 촬영장도 웃음바다였어요.
Q. 허영지 씨는 훨씬 동생이라 귀여움을 많이 받았겠어요.
아이 같죠. 그런데 저희가 엄청 칭찬한 게 요즘 어린 애들 답지 않게 속이 깊어요. 굉장히 겸손하고 예의바르고요. 배우려고 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괜찮을 수 있지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Q. ‘또 오해영’이 연기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시은 씨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요.
그동안 길다면 긴 활동을 하고 여러 가지 역할을 하긴 했죠. 그런데 추노 이후로 어떤 포인트가 없었던 느낌이에요. 이번에 희란이라는 캐릭터를 맡으면서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라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역할을 맡았을 때 좀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오해영’이 사랑을 받아서 희란이도 사랑을 받았지만 저에게는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질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예쁘게 나왔던 작품이죠. (웃음)
Q. 드라마 속 희란은 똑 부러진 사이다녀에요. 실제 성격과 얼마나 닮았을까요?
50% 정도? 말 똑 부러지게 하고 털털한 면은 비슷한데 외모적인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요. 희란이처럼 냉정하게 일하는 성격은 사실 못되는데 그래서 통쾌한 점도 있었죠. 희란이는 참 멋진 여자구나 싶어요.
Q. 반면 해영이에게는 멋진 의리파 친구잖아요. 실제로도 그러세요?
네, 엄청 의리파에요. 그래서 해영이랑 우정이 돋보이는 장면이 있을 때 제 친구들은 자기들한테 얘기해주는 거 같다고 하고 실제 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공감하고 봤다고 해줘서 고마웠죠.
Q. 그럼 이번 희란 역할과 작품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만족하시나요?
너무 만족하죠. 지나고 나면 항상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잖아요. 다시 한 번 한다면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오해영’은 정말 최고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끝까지 대본이 재미있더라고요.
Q. 아, 결말을 모르고 계셨어요?
몰랐어요. 더 황당한 건 마지막 촬영이라 생각하고 인사도 하고 포옹도 했는데 갑자기 A4용지 세장을 주시면서 다른 곳으로 촬영하러 간다고 하는 거예요. 결말이 새 나갈까봐 대본에서도 일부러 빼놓으셨더라고요. 현장에 온 사람만 알 수 있는 결말이었죠.
Q. 그만큼 인기가 많아서 철두철미했나 봐요. 젊은 친구들한테는 정말 인기가 많았는데 나이대가 좀 있는 분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나요?
저희 할머니가 지금 80이 넘으셨는데 엄청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엄마가 음식점을 하시는데 엄마 나이의 손님들이 ‘또 오해영’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고 너무 신기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어르신들한테 어떤 공감코드가 있었는지 되게 궁금해요. 엄마, 아빠, 딸의 이야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Q.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제 다른 작품을 하실 텐데 배역 선택에 기준이 있다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배역인가가 가장 중요해요. 정말 좋은 배역, 누구나 탐내는 배역이 있어도 내가 잘 할 자신이 없다면 표현력이 떨어지고 어색할 수 있거든요. 배우가 어떤 역할이든 다 소화할 수 있으면 정말 좋지만 저는 아직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고요. 지금은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인정을 많이 받아야 좀 더 폭넓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Q. 해영이 같은 역할은 어때요? 해피엔딩이지만 중간에는 안타까운 로맨스도 있고 그렇잖아요.
너무 좋죠. 여배우들이 다 탐낼만한 역할이에요. 왜냐면 너무 다이나믹하잖아요. 개구진 거, 사랑스러운 거, 슬픈 거, 웃긴 거, 따뜻한 거 등 모든 희로애락을 다 가진 역할이에요. 정말 탐나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정말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죠. 해내려면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Q. 직접 연기를 했거나 시청을 했던 작품 중에서 정말 하시은 답다는 캐릭터는 뭐였어요?
지금껏 했던 것 중에서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나왔던 엄시영 캐릭터가 저랑 비슷한 면이 많아요. 그때 태희 언니를 옆에서 지켜주는 역할이었는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어요. 저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연기하기 정말 편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희란이를 연기하면서 친구들이 저한테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고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갇혀 있지 말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Q. 2009년에 제대로 연기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 이른 시작은 아니에요.
그쵸. 배우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었거든요. 항공경영과 전공인데 빨리 취직해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평범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뛰어든 케이스라 영지 같은 친구를 보면 엄청 부럽죠. 그 나이에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Q. 추노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셨지만 무명시절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연기를 놓지 않았던 게 아니라 버텼던 것 같아요. 나한테도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버틴 거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뻔하잖아요. 이게 너무 좋으니까 돌아서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버티고 계신 배우들이 많잖아요. 회사 이사님이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는 이해도 안가고 얄미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버티다보면 언젠간 한 번의 기회는 오는 것 같아요.
Q. 그 버텼던 시절에는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셨어요?
운동이요. 하루에 세 개씩. 아침에 헬스, 점심 먹고 요가, 다음에 필라테스. 왜냐면 정신없이 살고 싶었어요. 혼자 있으면 비교에 대한 불행감이 없으니까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대신에 가만히 있으면 너무 무기력해지니까 뭔가에 빠져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저는 운동이었어요. 그 와중에 희란이가 왔고 다행히 붙는 옷을 입을 수 있었죠. (웃음)
Q. 점점 나이가 들면서 조급해지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그 시기를 넘겼어요. 그 시기는 20대 후반에 왔던 것 같아요. 서른이 넘으면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확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20대의 파릇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 되게 조바심 냈어요. 그런데 서른이 돼보니까 별게 없더라고요. 어차피 늦게 시작했잖아요. 오히려 기다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 같아요.
Q. 그럼 결혼에 대한 생각도 지금은 없으시겠어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늦게 하고 싶은 거죠. 지금이 너무 편해요. 혼자 즐기면서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는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해요.
Q. 기사나 SNS를 통해 포상휴가 소식을 봤어요. 정말 재미있게 노시더라고요. 원래 놀 때는 신나게 노시나 봐요.
그렇게 풀어져서 노는 걸 좋아해요. 친구들이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그러니까 기회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 시간이 되게 소중했어요. 수영도 매일하고 술도 새벽까지 열심히 마시고 마지막인 것처럼 정말 끝까지 재미있게 놀았어요.
Q. 정말 좋았다는 게 아직도 보여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보니까 참 다양한 얼굴이 보였어요. 스태프들도 같이 한 말이 김태희 씨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원래 친하게 지내신다면서요?
장옥정 이후로 친해져서 손에 꼽힐 만큼 친한 언니에요. 작년에 세례를 받았는데 대모가 언니에요. 언니가 희란이에 대해서도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다음 작품 선택도 도움이 컸을 만큼 연기자 선배, 인간적으로 많이 의지해요. 가끔 0.1초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영광스러울 데가 있냐고 언니한테 웃으며 얘기하기도 해요. 활짝 웃었을 때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몇 번 있어요. 감사하죠.
Q. 조연이라고는 하지만 주연급의 영향을 미친 드라마가 많아요. ‘또 오해영’도 그렇고요. 한편으로는 자기 이름보다는 오해영 친구, 누구 친구 이런 말을 많이 들으니까 아쉬울 것 같아요.
일을 오래하다 보니까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주인공 옆에서 양념역할을 해주는 역할이잖아요. 처음에는 계속 친구만 하다 보니 친구 전문 배우로 될까봐 걱정도 됐는데 이제는 이렇게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어요. 이것도 하나의 특성이니까요. 하다보면 누군가의 친구가 아닌 내 스토리를 지닌 역할이 오겠지 생각도 하고 오해영 친구라고나마 알아봐주면 감사하게 생각해요.
Q. 워낙 비중이 큰 친구 역을 많이 하셨잖아요. 앞으로 어떤 모습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이번에 섹시한건 해봤으니까 다음 작품은 좀 더 하시은스러운 것에 트렌디함을 입혀서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역할이고 싶어요. 한없이 청순하거나 한없이 슬픈 역할보다는 오해영처럼 다양한 면을 가져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Q.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되요. 시은 씨 자신도 기대가 많이 될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워낙 집중 받았다가 잊혀지는 시간에 익숙해서 이번에도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했어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앞으로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가 겁나죠. 경험을 했던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잊히기 전에 빨리 좋은 작품을 해야 된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꾸준히 작품으로 인사를 드리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Q. 정말 솔직하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배우로서의 각오랄까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여쭤볼게요.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누가 됐건 어떤 작품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사랑받았던 배우들을 모두 존경해요. 앞으로 제가 어떤 배역을 맡든 사람들이 계속 찾아주고 계속 궁금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연기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기획 진행: 배계현, 이주신
포토: bnt포토그래퍼 김태양
의상: 츄,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레미떼
선글라스: MCM
시계: 베카앤벨
슈즈: 츄, 아키클래식, 사뿐
헤어: 알루 혜니 디자이너
메이크업: 알루 김수진 부원장
장소협찬: 소하 라운지(SOHA LOU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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