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한국인 심사위원 유승헌 교수를 만나다
"레드닷(Red Dot) 어워드요? 영화로 비유하면 베를린, 베니스, 칸 영화제 등에 해당할만큼 디자인쪽에선 권위있는 국제적인 상이지요. 여기서 수상작으로 선정된다는 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한국이 디자인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 전자, IT 등 업종을 막론하고 유럽 내 레드닷과 iF, 미국의 IDEA 등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의 각 분야에서 수상하고 있는 것. 특히 최근 몇 년간 국내 기업의 수상은 물론 심사위원에도 위촉되면서 '디자인 한류'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그러나 레드닷을 포함한 여러 디자인 어워드가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생소하다는 평가도 많다. 지난해부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인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유승헌 교수(사진)를 인터뷰한 배경도 레드닷의 의미와 가치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참여는 물론 이제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만큼 그 누구보다 '레드닷'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 터. 유 교수가 말하는 레드닷에는 어떤 의의가 담겨 있을까. 고려대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유 교수는 지난 2014년 학생들과 함께 레드닷 디자인에 3점의 작품을 출품하며 인연을 맺었다. 당시 출품한 모든 작품이 수상하며 레드닷 주최측의 이목을 끌었다. 이 가운데 한 점은 최우수상을 거머쥐자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레드닷위원회는 유 교수에게 심사위원을 제안했고, 커뮤니케이션-UI분야의 심사를 맡게 됐다.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심사에 나서면 공정성을 위해 작품 출품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로서,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서 출품 제한을 받는 것과 심사에 나서는 걸 놓고 고민하다 결국 심사를 선택했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의 실력은 출중한데 심사위원이 많지 않았고, 한국 또한 글로벌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로 제안 수락 이유를 밝혔다.
레드닷은 모든 디자이너에게 이미 잘 알려진 세계 3대 디자인상 가운데 하나다.
유 교수는 "레드닷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좋은 디자인으로 인정하는 일종의 증명서"라며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인정받기 위해 도전하고, 수상을 마케팅에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상같은 명예적 측면을 떠나 자신의 디자인을 외국 디자이너들이 평가하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라 생각하기에 국내에서도 많은 작품을 출품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매년말 레드닷위원회는 이듬해 심사를 맡을 위원을 내부적으로 선별한 후 인터뷰 및 공모 등을 통해 확정한다. 현직 전문가, 교육계, 디자인관련 미디어들로 구성하며 분야별로 40명 이하의 심사위원이 총 7,800여 작품에 점수를 매긴다. 한국인은 제품 1~2명, 컨셉트 1명, 커뮤니케이션 1명 정도가 심사에 나서는 실정이다.
유 교수는 "심사위원 수가 적다는 건 그 만큼 한국 디자이너의 심사 참여 기회가 많이 열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출품이 많이 이뤄지면 심사위원도 자연스레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에게 심사위원으로서 레드닷에 도전중인 많은 한국 제품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교수 이전에 산업디자이너, 나아가 삼성전자 UX부문 책임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만큼 제품분야 또한 능통해서다.
그는 "그 동안 레드닷에 꾸준히 참여해 온 LG,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웅진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최근 수상작 중에선 중국 기업들의 제품 디자인이 주목받는다"고 말한다. 중국이 다양한 분야의 유럽 디자인연구소 등을 흡수하면서 디자인 능력을 많이 키운 만큼 빠른 추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유 교수는 그러면서도 한국 기업의 경쟁력 수준이 여전히 높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점차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컨텐츠를 담아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어서다. 유 교수는 기아차 K5의 사례를 들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2년 연속 수상한 건 하나의 플랫폼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얘기다.
그는 "포르쉐, 아이폰 등도 세대별로 비슷한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며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는 제품은 물론 브랜드까지 향해야 하고, 이런 부분을 한국에서 보다 많이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그는 "한국, 일본 작품의 경우 디자인을 풀어내는 어법, 사용자 환경, 소개 방식, 어색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 알아채는 데 어렵지 않다"며 "제품 기능, 형태도 그렇고 전에 볼 수 없던 걸 새롭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답을 내려는 디자인보다 새로운 서비스와 사용자 환경을 개발하는 창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는 한국의 독창적인 디자인상을 세계적으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산업미술대전이나 굿디자인 등의 국내 디자인상을 국제적 수준으로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 학계, 산업계, 정계 등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유 교수는 "K5 등이 레드닷 수상을 한다는 건 그 만큼 한국 디자인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한국도 레드닷에 버금가는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를 가져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유 교수는 올해 레드닷 디자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심사를 해보니 좋은 한국 작품들이 많았다"며 "자동차와 IT, 가전,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다양한 수상작이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구기성 기자 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