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자동차를 살 때 소비자들이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인 효율은 'ℓ당 ㎞'로 표시한다. 기름 1ℓ를 태울 때 주행할 수 있는 거리인데, 길면 길수록 연료비 지출이 적다는 의미여서 제조사마다 효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쓴다. 또한 배출가스도 감소하니 무게를 줄이고, 연소율을 높이는 것 모두가 ℓ당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ℓ당 주행거리'보다 연료를 가득 채웠을 때 주행 가능한 거리에만 관심을 두는 제품이 있다. 바로 전기차다.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연료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니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총 주행거리(Total Range)'로 시선이 몰리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연기관차의 'ℓ당 ㎞'에 해당되는 전기차의 효율, 즉 '㎾h당 ㎞'는 무의미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전기차도 효율을 높일수록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게 당연해서다. 그럼에도 지금은 총 주행거리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등장하는 순수 배터리 EV는 오로지 주행거리 확장에만 초점을 맞춘다. 실제 미국 EPA가 공개하는 자동차 효율비교에 따르면 테슬라 제품 중 가장 주행거리가 길다는 모델S 90D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473㎞다. 그런데 ㎾h당 주행 가능한 거리는 4.87㎞에 머문다. 반면 총 주행 가능거리가 130㎞로 짧은 BMW i3는 5.95㎞에 달한다. 두 차를 직접 비교하면 1㎾h당 대략 1㎞의 거리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물론 두 차종의 단위 효율과 총 주행거리가 극명하게 차이나는 배경은 배터리용량 때문이다. 내연기관으로 비유하면 연료를 담는 탱크의 크기가 다르다. 모델S 90D에는 90㎾h 배터리팩이 장착된 반면 i3에는 22㎾h가 설치됐다. 배터리만 놓고 보면 모델S가 i3보다 4배 크다. 총 주행거리에서 테슬라가 i3보다 340㎞를 더 갈 수 있는 배경이다. 만약 i3에도 90㎾h 크기의 배터리가 탑재된다면 당연히 총 주행거리가 130㎞의 4배인 520㎞에 달하게 된다. 용량 증가에 따른 무게 부담을 감안해도 총 주행거리 면에서 경쟁력이 뒤지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총 주행거리로 전기차의 제품 우열을 가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경쟁력의 개념이 소프트웨어다. 같은 용량, 같은 무게의 전기차라도 작동 프로그램의 로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단위 효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전기차회사가 특히 주목하는 게 운전자의 패턴 분석이다. 사람마다 운전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만큼 동력 구동 및 전달도 맞춤형이 된다면 배터리를 늘리지 않고도 주행 거리를 확장시킬 수 있어서다. 자동차에 지능형 소프트웨어를 앞 다퉈 적용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EV의 주도권은 배터리가 아니라 IT가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가 쉼 없이 등장한다. 물론 자율주행차를 두고 나오는 말인데, 어찌 보면 자율주행차 이전에 운전자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는 소프트웨어가 완성차회사의 생존을 가를 수도 있다. 동일한 하드웨어 조건일 때 소프트웨어의 효율 경쟁력이 기술력으로 인식될 수 있어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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