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경차, 서민용인가 고급차인가

입력 2016-11-09 09:18   수정 2016-11-10 11:21


 경차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경차의 효용성이 많이 떨어져서다. 다시 말해 경차를 적극 보급할 명분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1991년 319만원으로 시작한 가격이 지금은 평균 1,200만원에 달한다. 그래서 경차가 경차 같지 않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돈다. 게다가 작아서 효율이 높다는 것도 옛말이다. 경차보다 크지만 효율 높은 제품이 즐비해서다. 그래서 경차가 서민용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경제적인 차'를 의미하는 경차의 시작과 끝
 1980년대 후반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되 기름 사용을 아끼기 위해 국민차 보급 사업을 펼쳤다. 88년 올림픽 이후로 자동차가 증가하는 것은 좋았지만 기름은 100% 수입이니 적게 써야 했다. 여기서 나온 방안이 경제적인 자동차의 필요성이었고, 정부는 개발비 지원을 선언하며 사업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자동차회사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만들어 팔아봐야 이익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유일하게 뛰어든 곳이 당시 대우중공업이다. 이른바 사업 영역 확대 차원이었고, 정부는 대우중공업의 경차 개발을 독려해 마침내 1991년 티코가 등장했다.
 
 그런데 최저 300만원대 가격임에도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중과세를 면제해줬다. 당시는 가구당 승용차가 두 대 있으면 세금을 꽤 많이 내던 시절이다. 그러자 세금을 피하기 위해 티코가 불티나게 팔렸고, 대우의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로 국민 소득이 크게 줄자 티코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팔짱만 끼던 현대차가 아토스로, 기아차가 비스토를 선보이며 3파전을 형성한 것도 경차의 인기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티코의 아성은 견고했고, 대우차는 시장 수성을 위해 이탈디자인 작품의 마티즈를 내놓으며 선전했다. 덕분에 경차 시장은 한 해에만 20만대에 달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정부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면 세수도 확대되는데, 세금 면제 대상인 경차가 많이 팔리니 세금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래서 2000년 들어 경차 혜택을 없애버렸고, 그 때부터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혜택이 없는데 굳이 작은 차를 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차 판매가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다시 2004년부터 경차 취득세를 면제하기 시작했다. 중대형차 판매가 활황이어서 세수가 안정적인 만큼 경차 판매가 늘어도 세수에 큰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경차만 영구적 면제를 해줄 수 없어 한시적인 특례법에 포함시켰다. 이후 3년마다 경차 취득세 면제 기간은 연장됐고, 기한이 끝날 때마다 경차 취득세 부활은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 사이 경차 규격도 확대됐다. 마티즈의 아성을 흔들려는 현대기아차의 부단한 노력이 배기량을 800㏄ 미만에서 1,000㏄ 미만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기아차 모닝이 마티즈를 앞서는 일도 벌어졌다. 또한 2002년 GM에 인수된 대우차는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하며 스파크로 1위 탈환을 노렸고, 기아차는 박스형 경차 레이를 추가하며 적극 방어에 나섰다. 최근 스파크가 모닝을 넘어섰지만 기아차 또한 모닝 신형을 준비 중이어서 경차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혜택을 이용한 제조사의 잔꾀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동차회사에 수익을 많이 안겨주는 제품은 중대형 차종이다. 값이 비쌀수록 이익도 따라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차는 여전히 수익성 낮은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가격을 높이면 구매력이 떨어지고, 낮추면 그나마 유지하던 수익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한 마디로 가격 조정을 위한 운신의 폭이 대단히 좁은 제품이다. 

 고민하던 제조사는 수익성 증대를 위해 경차의 고급화를 선택했다. 제품은 비록 경차여도 갖가지 편의품목은 모두 있어야 한다는 소비자 욕구, 그리고 경차 혜택을 결코 버리지 못하는 구매 심리를 적극 파고들었다.

 이런 전략은 가격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매년 편의품목을 추가하며 가격을 올린 덕분에 일부 경차는 가격이 1,60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가격 수준이 준중형차에 버금갈 만큼 가파르게 치솟았다. 실제 최근 10년 간 가격 상승률에서 경차는 중형차를 가볍게 제쳤을 정도로 많이 올랐다.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경차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경차로 모아진 혜택이 워낙 막강해서다. 취득세 부활 논란에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즉시 나타냈지만 세수 측면에서 부활시킬 가능성도 남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일부에선 대안으로 부분 면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현재 경차에 주어진 혜택을 부분적으로 줄이되 이를 고효율 소형차로 옮겨주자는 방안이다. 100% 에너지를 수입하는 상황에서 자동차 보급을 위해 경차를 만들어 낸 만큼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소형차 전반이 늘어야 취지에 맞다는 의미에서다. 경차보다 효율이 높은 소형차가 즐비한 상황에서 경차에만 혜택이 집중된 것은 시대착오적 상황이라는 얘기다.

 어찌됐든 경차 지속 가능성의 열쇠는 정부가 손에 쥐고 있다. 채권구입의무면제, 취득세 면제, 통행료 50% 할인, 공영주차장 50% 할인. 환승주차장 80% 할인, 유류세환급 등이 경차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값 비싼 고급 경차로부터 세금을 일부 거둬들일 것이냐, 아니면 여전히 경차를 서민용 고효율 자동차로 인식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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