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파일]그랜저는 쏘나타를 먹고 산다

입력 2016-11-23 09:25   수정 2016-11-23 15:29


 현대자동차가 5년 만에 신형 그랜저를 출시하고 고무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전계약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1만5,000대의 주문이 몰렸고 3주만에 2만7,000건 이상 성사됐기 때문이다. 기대를 뛰어넘는 인기에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녹록치 않은 내수 시장에 대한 타개책으로 신형 그랜저에 사활을 걸었던 만큼 이번 성공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게 내부 판단이다. 

 사실 6세대 그랜저의 성공적 진입은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결과다. 5세대가 이미 수명을 다했고, 국산차 중에선 소비자 충성도가 매우 높은 차종이어서다. 게다가 비교 대상에 올릴만한 차를 딱히 떠올리기 어려운 점도 성공을 거든 요소다. 4,000만원대 가격을 지불하고 이만한 디자인과 상품성, 성능 그리고 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춘 제품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사전계약도 이를 입증한다. 계약 하루만에 달성한 1만5,000대는 국내 준대형 차급의 월평균 판매보다 많다. 물론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허수도 있겠지만 영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신형은 이전 세대 만큼 인기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마냥 신형 그랜저의 성공을 기뻐해야 할까? 자축은 빨리 끝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유는 그랜저 소비자의 유입 경로 때문이다. 현대차는 4,000만원대 수입차 소비자들이 그랜저로 돌아올 것으로 설명한다. 또한 국산 경쟁 브랜드 소비자 시선도 빼앗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랜저 구매자의 유입 경로는 기존 현대차 소비자, 특히 쏘나타 소비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랜저는 지난 30년간 대표적인 국산 고급차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많은 소비자가 그랜저에 대한 이미지로 소위 '각 그랜저'가 풍기는 품격을 떠올려 왔던 것. 하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다.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그랜저 소비 연령층이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젊어지면서 고급차의 품격보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세단 정도로 이미지가 변모했다. 즉 과거 중산층의 기준이 쏘나타였다면 요즘엔 그랜저로 바뀌었단 얘기다. 쏘나타에 투영된 '택시 및 렌터카' 이미지도 소비자가 그랜저로 옮겨가는 데 한몫했다. 

 그런데 요즘 현대차의 부진은 쏘나타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의 주력인 쏘나타가 흔들리며 전체 판매가 하락했다. 6세대 그랜저가 나오면서 쏘나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등장한 지 불과 2년 만에 힘을 잃은 쏘나타가 같은 지붕 아래서 또 다시 강력한 태풍을 만난 셈이다. 실제 올해 10월까지 쏘나타는 전년대비 19.2% 하락한 6만9,039대에 그쳤다. 이는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부진한 실적이다. 2009년 14만6,326대, 2010년 15만2,023대와 비교하면 시선조차 외면받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기존 그랜저 소비층은 제네시스로 넘어갔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제네시스급에선 소비자가 고려할 수 있는 수입차 브랜드가 다양해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따라서 쏘나타와 그랜저, 제네시스(브랜드 전체)로 구성되는 현대차 세단군의 판매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형국이다. 2009년 쏘나타와 그랜저, 제네시스의 연간 판매는 27만6,667대였지만 2012년엔 22만1,169대, 2015년엔 24만474대로 감소했다. 2016년 1~10월엔 16만7,562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로선 건재한(?) 그랜저에 환호하기보다 어떻게 쏘나타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로는 계속해서 수입차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아래로 유입되는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손놓고 본다면 쏘나타 입지는 계속해서 위태로워질 것이고, 현대차의 중심 또한 흔들릴 수 있다. 아니면 오히려 쏘나타를 택시 및 렌터카 전용차종으로 설정하고 또 다른 승용 쏘나타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러모로 쏘나타에 대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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