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결함 밝혀낼 제3의 기관 만들자"

입력 2017-02-22 17:32  


 자동차 결함과 급발진 의심 사고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피해 사례와 시정조치 과정에 대해 발표하면서 '미비한 법 제도 보완'과 '구제기관의 강화'를 역설했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자동차결함 피해사례 간담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박 의원은 "부산 싼타페 사고가 운전자 과실로 결론이 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제품에 결함이 생기면 제조사와 이를 인증해 준 정부의 공동 책임인 만큼 국민 안전과 관련된 조치에 대해 관계부처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개최 취지를 전했다.

 첫 번째 피해자로 나선 손준영 씨는 한국지엠 쉐보레 올란도 미션 문제를 제기했다. '보령미션'으로 알려진 '젠1' 미션은 크루즈와 올란도 소비자 사이에서 쉽게 과열되고 미션오일이 변질돼 결함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손 씨는 130만원을 내고 미션을 교체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장명선 씨는 메르세데스-벤츠 ML300 주행 중 화재 사고를 경험했다. 매연여과장치인 DPF가 막혀 과열로 불이 붙은 것. 보증 기간 내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벤츠코리아는 이미 화재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무상 수리 거절 답변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임러트럭 유로6 아록스 14t을 운전하는 박상봉 씨는 구입 직후 센터샤우도에 녹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리를 요구해 6번의 서비스를 받았지만 발청(부식)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 명의 피해자는 모두 제조사에 결함 사실을 알리고 시정조치를 요구했지만 리콜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손 씨는 보증기간 이후에 결함을 느꼈기 때문이고, 장 씨는 화재가 나기 전에 공식 서비스센터에 문의하지 않아서다. 박 씨의 경우 운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부식이었지만 안전상 결함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리를 거부당했다. 

 이들은 제조사가 자기인증방식으로 신차를 판매하는 만큼 정부 입장에서 사후검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전에 안전 및 품질을 인증하지 않았다면 사후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는 이와 같이 특수한 결함에 대해 적극적인 소비자 구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리콜뿐 아니라 자동차 교환이나 환불 등에 대해서도 강제력 있는 법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어 자동차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례들도 소개됐다. 부산 싼타페 사고의 유가족인 최성민씨와 팔공산 싼타페 사고 당사자인 권혁윤 씨, 카렌스 급발진을 경험한 최재규 씨가 참석했다. 이들은 차가 쏟아지듯 가속하는 급발진 순간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도 무용지물이었다. 사고기록장치인 EDR 분석에서는 대체로 엔진회전수가 급증하고, 스로틀밸브가 100% 열렸으며, 제동페달이 작동하지 않고, 조향각이 급격히 틀어지는 등 유사한 기록을 보였다. 

 조사기관은 세 사건 모두 운전자가 가속과 제동 페달을 동시에 밟았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 급발진이 아닌 소비자 과실이라고 결론냈다. 사고 당사자들은 모두 운전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들로 '당치 않은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제조사와 국가기관을 상대로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급발진 의심 사고로 가족을 잃은 최성민 씨는 "자동차 제작 결함을 조사하는데 국과수와 제조사가 합동조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의료과실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를 데려다가 사망원인을 밝혀내라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사설 감정조사기관의 결과는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국과수 자료만 증거로 채택해 판결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보다 독립적인 조사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또 급발진 등 제작 결함은 소비자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직접 밝혀내야 하는데,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다고 격분했다. 따라서 제조사에게 무과실 입증 책임을 지우고, 소비자 구제를 도울 관련 기관이 창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정부가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 편에 설 것을 희망했다. 최성민 씨는 "급발진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고 억울함을 금치 못했지만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며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정부지만 피해자로서 기댈 곳이 없다는 현실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통안전공단 남궁석완 결함조사센터장은 "모든 결함과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요청하면 급발진 영상이나 EDR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제공할 것"이라면서도 "세계적으로도 아직까지 급발진 사고가 판명난 국가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ECU는 제조사별로 암호화 돼있고 차종별로 다르기 때문에 1만 종류 이상의 ECU 분석기가 필요하다"며 "제작사에서 암호를 풀 수 있는 툴을 제공받아야 하기에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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