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국내에선 가솔린, 디젤, LPG, 전기 등의 자동차 동력원을 구분한다. 그러나 유럽을 대표하는 2017년 제네바모터쇼는 동력원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게다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표시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동력원을 적절히 활용해 배출규제를 충족하고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올해 제네바모터쇼에 등장한 신차 및 컨셉트의 흐름은 동력 경계선 허물기로 요약된다. 한 때 앞다퉈 내놨던 배터리 전기차는 새롭지 않을 만큼 모든 제조사가 라인업에 포함했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화석연료 내연기관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등의 완성차업체가 출품한 신차 및 컨셉트카는 여전히 내연기관 중심이다. 오히려 배출가스는 줄이되 성능은 향상시킨 엔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대표적으로 벤츠는 고성능 브랜드 AMG GT 컨셉트를 내놨다. V8 4.0ℓ 트윈터보 엔진으로 고성능을 추구하되 전기모터를 결합시켜 배출가스도 억제했다. 이른바 최고 805마력의 고성능 하이브리드를 탄생시킨 셈이다. 아우디의 미래 SUV 컨셉트 Q8도 예외는 아니다. 6기통 3.0ℓ TFSI 엔진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했다.
이 밖에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 컨셉트 FE를 등장시켰다. 그 만큼 친환경 동력발생장치, 즉 엔진이라 불리는 자동차 심장의 변화 속도가 빨라진 형국이다. 나아가 성능에 집착하는 유럽 내 튜너들 또한 전기와 내연기관 중 하나를 선택받았던 것에서 벗어나 시스템 융합으로 배출가스 규제 돌파를 시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다면 이번 모터쇼의 또 다른 흐름은 무엇일까. '동력원의 다양화'라는 측면 외에 명확하게 파악 가능한 흐름은 형태적 변화다. 유럽 자체가 세단보다 왜건이나 해치백을 선호하는 건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들어 SUV 및 CUV 성장 흐름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새로 등장한 제품 가운데 세단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한 크로스오버가 커다란 물줄기가 됐다는 뜻이다. SUV 또는 CUV가 없으면 유럽 내 성장 담보가 어렵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흐름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신차발표 현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SUV 및 CUV 계획이 쏟아졌다. 현대차는 오는 2021년까지 유럽에 공격적인 제품을 내놓되 SUV 중심을 선언했고, 폭스바겐 또한 티구안과 투아렉 등의 SUV를 키우되 틈새 SUV 제품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제품 설명은 없었지만 오명을 벗고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동력원과 SUV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의미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2017 제네바모터쇼는 한 마디로 '세단의 쇠락, CUV의 전성시대'로 집약할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또한 SUV에 사활을 걸고, 각 세그먼트에 다양한 SUV 파생차종을 추가해야 소비자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력은 소비자가 선택할 뿐 제조사가 주도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과거 100년이 제조사가 소비자를 견인하던 시대라면 이제는 소비자가 제조사에 제품 개발을 요구하는 시대로 빠르게 바뀌어 가는 중이다.
제네바=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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