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느날’ 천우희, 처음부터 끝까지

입력 2017-04-12 11:37  


[임현주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의외였다. 이번에도 어두울 줄 알았다.

지금껏 연기해왔던 인물의 대부분은 아픔이 있었고,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대표작 ‘써니’ 속 불량학생부터 ‘한공주’의 성폭력 피해자, ‘곡성’에서 무당까지. 매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 놀라운 연기력으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충무로 대세 여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천우희의 이야기다.

최근 영화 ‘어느날(감독 이윤기)’의 개봉을 앞두고 bnt뉴스와 만난 천우희는 지금까지 보여 온 역할과는 또 다른 색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 모습을 보니 자기 옷을 입은 것 마냥 편안해보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미소를 봤을 때 살이 닿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이미지?로만 캐릭터가 보여서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됐어요. 대사도 문어체로 되어있었고. 그래서 제 말투를 녹여서 캐릭터화 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근데 또 극적으로 현실말투를 쓰면 캐릭터가 깨질 수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시나리오대로 한다면 가상인물처럼 감정이입이 안 되니까. 너무 일상적인 제 말투도 아니고, 캐릭터화된 말투도 아닌 그 둘을 중첩해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천우희는 이번 영화에서 뜻밖의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영혼이 된 미소로 변신해 데뷔 이래 처음으로 발랄하고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도전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일 중점을 둔 부분으로 “영혼이지만 일반 평범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게끔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시각장애인이었던 미소가 영혼으로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인물임에도 보는 이들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왔고, 아이 같은 모습에 귀엽기까지 했다. 

“극중에 미소가 강수(김남길)와 처음으로 차를 타보고, 수족관도 가보고 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렇게 세상을 처음 접했을 때 마냥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어 천우희는 “배역을 맡으면 그 인물을 분석해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게 (연기하기 전) 가장 기본적인 단계”라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시각장애인인 미소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 단계는 “잣대”에 불과했다고 전한 점이 특이했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위해) 실제로 도와주셨던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뵀던 날 예쁜 원피스를 입고 귀걸이를 하고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그 모습이 너무 예쁜 거예요.(웃음) 그때 선생님을 보자마자 (만나기전) 구축해놨던 생각을 없애버렸어요.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은) 그냥 이 사람이 갖고 있는 기질이나 원래 천성일 수도 있잖아’하고 캐릭터가 아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부분 내지는 원래 이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과거에 시각장애인을 바라봤던 시선과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이어 “처음에는 선생님과 점자도 배워보고 작업도 해봤는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시간이 흘러 나중엔 선생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 대화를 했던 시간이 더 많았고 어딘가에 모르게 (연기에) 더 도움이 됐었죠”라고 덧붙였다.


대화를 나눠볼수록 의심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일까. 물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 심도 있는 집중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길게 끌고 갈지 말지는 본인의 의지고 자유니까. 이에 천우희는 “고민은 영화를 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라고 말한다.

“항상 열심히 준비해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촬영이 끝나면 바로 감정 정리를 하죠. 물론 편집하는 부분까지 신경 쓰시는 배우들도 계시지만 그건 각자의 지켜줘야 하는 선이라고 생각해요.”

감정 정리라. 깊게 고민을 하며 역할에 몰두했던 그 시간을 정리한다는 것이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험들이 쌓여야 연기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수용하죠. 근데 (연기한 후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잖아요. 그게 다음 촬영에 영향이 가면 안 되니까. 물론 감정들이 쌓여서 캐릭터를 표현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 반대로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천우희를 보고 참 어렵게 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조금은 가볍고 쉬운, 밝고 재미있는 그런 인물을 맡으면 고민의 짐이 조금은 덜할 수 있을 텐데.

“안 그럴 거 같아요. 저도 당연히 그런 캐릭터가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죠. 근데 사람을 웃기는 게 더 힘들다고... 그런 고충이 있지 않을까 해요. 어려울 것 같아요. 연기란 참 쉽지 않아.(웃음)”  

이런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가 있는 편인가 싶기도 하다.

“우려는 아니고 하고 싶어요. 예전엔 ‘(밝은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을 보고) 혹시나 거부감이 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거부감이 들어도 하고 싶은 건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랄까? 작품을 할수록 느끼지만 어떤 분에겐 ‘써니’에서 저를 처음 봤던 것 일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곡성’이 처음일수도 있고... 사람들이 저를 보는 이미지가 다양한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맞추기보다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특권이 배우한테 있잖아요. 그걸 잘 활용해서 하고 싶은 연기를 해야겠더라고요.”


천우희는 하고 싶은 작품으로 “액션과 멜로”를 꼽았다. 하긴 그의 연기 실력은 이미 입증되지 않았나.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어서 어느 장르로, 어떤 캐릭터로 나와도 손색없을 것이다. ‘리틀 전도연’ ‘믿고 보는 배우’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 괜히 생겼겠나.

“제가요? 제가 정말 벌써요?(웃음) 이제 막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욕구가 큰데...(웃음) 이런 타이틀이 생기는 게 감사하지만 그 기대에 부담이 되고 그 틀에 갇혀 있을까봐 걱정이 돼요. 물론 최선의 선택과 최고의 분과 작품을 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과감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아주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 많은 것들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면 좋을 것 같아요.”
 
참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한다. 안 그래도 예쁜 얼굴에서 더 빛이나 보였다.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전하는 천우희의 대답 속엔 연기에 대한 애정과 깊고도 성숙한 고민들이 묻어났다. 이쯤 되니 아까 들었던 의심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사라져있었다. 말의 원천은 내면에서 비롯되니까.

“전 트레이닝 복을 입는 게 좋아요. 편하기도 하고. 제 모습을 보고 좀 꾸미고 오라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전 캐릭터를 입어야하기 때문에.(웃음) 사실 그래요. ‘오늘 뭐 입지?’ 고민할 시간에 대본을 한 번 더 보고, 작품생각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천우희가 돌아가고 싶은 ‘어느날’까지도 연기했던 그 순간들이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빠질 수 있겠나.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날로 가고 싶어요. 그땐 영화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거든요. 그냥 단순히 연기가 재밌어서 시작했었는데... 소중한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보낸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천우희는 지금의 속도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한 작품, 한 작품을 해오면서 자신이 매번 달라지지만, 진정성을 갖고 배우를 해야 한다는 이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는 천우희.

“전 참 운이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작품들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데 항상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복 받은 배우죠.”

연기도 연기지만 그만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맑은 심성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천우희를 있게 해준게 아닐까. 밝은 캐릭터로 변신한 천우희를 볼 수 있는 영화 ‘어느날’은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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