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인터뷰
-자동차는 거대한 미디어 플랫폼
"지금까지 자동차 업체들은 이동성(mobility)에만 집중해왔습니다. 더 빨리, 더 안전하게, 더 편안한 차를 만들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죠. 앞으로 이동성은 기본이고, 자동차가 탑승객에게 어떤 컨텐츠를 제공할 것인지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운전에서 사람을 해방하고, 전장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에서 움직이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변화하는 겁니다."
젊은 뇌과학자로 통하는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향후 10~20년 사이에 자동차 문화 전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장비에 불과했던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 삶을 바꿔놓은 것처럼, 자동차의 지능화가 진행되면 운전 경험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뇌공학자 입장에서 자율주행차는 당혹스럽고, 지금까지 연구를 부정하는 새로운 기술입니다. 지금까지 뇌공학자들은 인간이라는 운전자가 어떻게 하면 운전을 안전하게 잘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왔습니다. 운전하는 도중 만나는 수많은 자극 중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운전 중 졸음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말이죠.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사람이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연구대상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자율주행차는 뇌과학자에게 흥미로운 분야다. 자율주행차는 차가 직접 상황을 판단하고 몸을 움직인다. 지능과 이동성을 갖춘 기계란 점에서 로봇의 범주에도 포함할 수 있다. 로봇은 뇌공학자들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려면 인간의 지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는 인간의 뇌에서 어떤 기능을 벤치마킹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자율주행차가 인간의 뇌를 흉내낼 필요는 없다는 게 정 교수 설명이다. 자율주행차는 외부 센서가 모든 방향과 관점에서 외부 신호를 받는다. 감각기관의 정밀도는 사람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다. 또 집중력의 제약이 적다. 즉, 모든 외부 상황에 똑같이 주의하면 된다. 교통법규나 각종 신호 체계도 미리 입력해두면 된다.
반면 인간의 통합적 사고와 기능은 자율주행차, 나아가 인공지능 분야 전체에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사람은 뇌의 전전두엽이 주의와 사고, 판단, 의사결정 등을 모두 조정하고 융합하는 기능을 한다. 자율주행차 역시 외부 자극을 인식하고, 상황에 따른 선택을 하고, 실제로 정확히 움직여야 한다. 일련의 통합기능을 제대로 잘 구현하는 게 자율주행차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정 교수는 전망했다.
-자율주행차 사고나면 인간 분노는 지금보다 커져
-자동차도 업그레이드, 업데이트 대상이 될 것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차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윤리적인 문제도 불거져 나온다. 트롤리 딜레마가 대표적이다. 다수의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율주행차가 운전자를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냐는 윤리적인 딜레마다. 정 교수에 따르면 트롤리 딜레마는 자율주행차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윤리적 판단 기준은 자율주행차에 입력해주면 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해져야 합니다. 문제는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될 분노와 공포입니다. 사람이 사고를 내는 건 우리 사회가 많이 경험을 했고, 이에 따른 법적, 사회적 절차들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어서 보편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경험을 쌓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율주행차라 보편화되면 사고율은 극적으로 감소할텐데, 하지만 지금의 1/10, 1/100로 사고가 줄어도 자동차 스스로 일으킨 사고의 당사자가 느낄 분노는 지금보다 훨씬 클 겁니다"
확실한 건 자율주행차가 자동차를 이용하는 문화부터 우리 삶 전체를 바꿔놓을 잠재력이 크다는 점이다. 이동수단으로서 자동차는 제품과 기술 모두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동차와 인공지능은 최근에야 융합 작업이 시작됐다. 주행환경에 대한 정보가 많이 쌓이면서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자율주행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비단 자율주행차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단순히 사람을 실어나르는 이동수단이라기보다 탑승객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발전적인 플랫폼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제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하는 건 기본이고, 그 위에 무엇을 더 얹을 것이냐에 대한 솔루션이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주도할 것입니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진행되면서 주도권을 놓고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와 신흥 세력인 IT 기업 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정 교수는 최근 제조업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제조업이 IT업계의 기술을 빌려다 쓰는 정도였다면, 이젠 제조업 스스로 IT적인 관점에서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동차제조 외에 필요 컨텐츠 제공이 곧 주도권
-10년 후 로봇 보편화 시대 올 것, 준비 없으면 뒤늦게 후회할 수도
"자동차는 교체주기가 길죠. 한 번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10년 정도는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IT 업계는 교체주기가 2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차는 가격도 비싸고 개발 기간도 길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러나 IT 기기 사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겐 긴 제품 주기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자동차도 IT제품처럼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 개념이 도입돼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보다 제품주기가 훨씬 길다고 하는 건설업에서조차 이제 사물인터넷(IoT)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자동차 회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정 교수는 자동차 산업이 그 동안 쌓아온 신뢰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정도면 로봇이 보편화된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로봇을 직접 사서 이용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봇은 잔고장이 많고, 문제가 생겼을 때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대처하기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로봇은 아마 렌탈산업으로 발전할 겁니다. 큰 회사가 여러 대의 로봇을 관리하고 대여하면서 수익을 내는 방식이겠죠. 자동차 회사가 직접 로봇 렌탈 사업에 뛰어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동차회사를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초부터 자동차가 어떻게 보편화됐는지, 이전에 없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죠. 또 사람이 만든 물건 중 자동차처럼 신뢰도가 높은 제품은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 주차를 해놓고,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그러면서 10년이 지나도 불안감 없이 이용하죠. 로봇산업은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제품 내구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자동차산업을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겁니다"
대담=권용주 편집장
정리=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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