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젊은 사람은 신이 만들고, 나이든 사람은 인간이 만든다”
고수(39)를 수식하는 단어는 직업인 배우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미남’이다. 고수의 입을 빌리자면 약 10년 전부터 그에게는 늘 미(美)와 남(男)이 결합된 2음절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이에 반기를 들거나, 우려를 표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대중은 냉정하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강물은 파도가 되고 폭풍이 되어 내용을 정정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고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잘생긴 배우다.
심지어 ‘미남’이란 표현은 ‘고비드’로 거듭났다. 조각상인 다비드(David)와 고수의 결합어인 ‘고비드’. 그러나 고수의 업(業)은 ‘고비드’ 아닌 배우다. 배우는 연기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이는 고수의 잘못이 아니다. 잘생김은 신의 선물이지 누구의 과오가 아니다. 하지만 묻고 싶었다. ‘고비드’와 배우 사이 간극이 주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이에 고수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전부 허구다. 만들어낸 기사다 (웃음)”라고 난색을 표했다.
“왜 나에게만 그런 질문이 오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근사하고 멋있는 배우들이 많은가. 물론, 외모에 대한 칭찬은 예전부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배우다. 배우니까 연기에 대한 어떤 칭찬을 듣고 싶다. 영화 ‘루시드 드림’ 때도 똑같은 질문이 나왔다. 외모 때문에 역할 제한을 받았냐는 질문이었다. 물론 칭찬은 좋다. 하지만 기사 댓글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때마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고수는 질문의 시작인 ‘고비드’라는 단어만 듣고도 기자가 꺼내려는 물음의 전체를 파악했다. 같은 질문을 얼마나 자주 받았으면 ‘고비드’ 단어 하나가 방아쇠인 마냥 고민을 토로했을까. 물론 웃음 가득한 하소연이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잘생긴 배우의 우수(憂愁)가 보였다. 돌이켜보면 90년대 장동건도 그랬다. 장동건의 수식어였던 ‘조각 미남’. 그러나 그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점차 ‘조각 미남’ 아닌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 이제는 외모 대신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은 고수가 선택한 신작이 스크린에 개봉했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감독 정식, 김휘)’이다. 유일한 증거는 손가락뿐인 의문의 살인 사건에 경성의 재력가와 정체불명의 운전수가 얽히는 이번 영화에서 고수는 초라한 행색 뒤에 미스터리한 과거를 감춘 남자 최승만 역을 맡았다. 더불어 그는 재력가이자 냉혈한 남도진을 연기하는 김주혁과 남남(男男) 앙상블을 이뤘다.
“(김)주혁이 형님은 늘 알고 지내던 형 같은 느낌의 배우였다. 오래 전부터 형님의 얼굴을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형님이 남도진 역할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고,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실지 궁금했다. 키도 있고, 약간 스타일리시한 부분도 있는 분 아닌가. 이번에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봤을 때 음성도 그렇고, 형님만의 남도진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형님만의 연기 방식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주혁이 맡은 남도진 역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경성 최고의 재력가다. 동시에 출신이 분명치 않고, 베일에 싸여있어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의뭉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미리니름이 될 수 있기에 자세한 언급은 불가하지만, 남도진의 존재는 영화에서 악(惡)을 표현한다. 다시 말하자면 악역이다. 이 가운데 고수는 “사실 남도진 역할은 내가 하고 싶었다”며 욕심을 드러냈다. 남도진에 대한 갈구 속에 그는 악역을 기다린다고 이야기했다.
“(김)주혁이 형님이 캐스팅 되기 전이었다. 감독님에게 내가 남도진 역할을 하면 안 될지 여쭤봤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드렸던 질문이지만, 감독님이 어떻게 캐스팅했는데 말도 안 된다며 무안을 주시더라. 결국 알겠다고 물러서긴 했으나, 아직도 내게 남도진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만약 악역을 맡는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뼛속까지 악역인 그런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악역이라고 해도 사람이니까 사람에서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상황, 생각, 행동을 관객에게 완벽히 이해시키고 싶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환경이라든지, 주변 상황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람인데 생각이 안 난다. 아, 히스 레저. 영화 ‘다크 나이트’. 정말 자유롭지 않나. 그리고 그 정도의 분장, 그 정도로 나를 감추고 연기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서스펜스 소설 ‘이와 손톱’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1955년도 작품을 2017년에 재현하면서 김휘 감독은 “원제 ‘이와 손톱’은 원래 물고, 할퀴고, 온 힘을 다해서 시도한다는 뜻의 관용구다”라며, “작품을 사건에 집중시켜야 된다는 생각에 장르 성격과 작품을 부각시키는 제목을 고민하던 중, 원작에 석조저택 살인사건에 대한 워딩이 있어서 그 제목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던 바 있다.
소설을 원작으로 둔다는 것. 장(長)과 단(短)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장은 구조성 및 옹골참의 부재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고, 단은 영화의 러닝 타임 120분과 소설의 300페이지를 병합하는 것에서 오는 빛바랜 변질일 테다. 이와 관련 고수는 “순수 각본. 시나리오만 읽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원작을 보면 원작과의 비교 속에 만날 싸울 것이기 때문. 원조의 장점을 가져오되, 고수의 장점도 살리고 싶은 그의 고집이 느껴졌다.
“비유 대상이 생기면 의견 충돌이 있을 것 같아서 원작을 아예 안 봤다. 안 그래도 감독님에게 이를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원작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안 보는 것이 나을지 솔직한 대답을 부탁드렸더니,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고 반응하시더라. 영화와 소설 모두 경험하셨던 분들이 각색이 잘 됐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소설적인 언어와 영화적인 언어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는 사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 봤을 때 몇 번씩 뒤로 돌아가서 보기도 하고 그랬다. 앞부분을 놓치고 나면 뒷부분에서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생기더라.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할 유기적 시나리오였다. 물론 텍스트와 영화는 다르다. 하지만 언론시사회에서 봤을 때는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고, 적절하게 잘 조화가 된 것처럼 보였다. 관객 분들이 보시기에는 재밌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때로 배우는 개인의 연기 추구에 중점을 두곤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배우 선호도가 티켓 파워로 환산되는 현실이라면, 상업 배우는 관객의 기호를 견지하는 자세도 일정 수준 필요한 것이 사실. 이 가운데 고수의 필모그래피가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2014년 ‘상의원’, 2011년 ‘고지전’, 2016년 MBC ‘옥중화’, 특별 출연이었지만 2016년 ‘덕혜옹주’까지 고수와 시대극은 어느새 바늘과 실이 된 것. 그는 “본의 아니게 선택이 이뤄졌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현대극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시대극에서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내면의 발로가 아닐까. 혹은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작품이 끌리고 재밌어서 선택하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또 모르겠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심 마음 속 깊이 어떤 마음이 있어서 그런 시대극에서의 모습이 나 자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증이 있던 것 같다.”
고수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변곡점이 보인다. 때는 2009년.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이후 그의 스크린 맥박이 다시금 뛰기 시작한 것. ‘초능력자’ ‘고지전’ ‘반창꼬’ ‘집으로 가는 길’ ‘민우 씨 오는 날’ ‘상의원’ 등 총 10편의 주연작을 가진 그는 이제 명백한 영화 배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브라운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유리 벽을 제친 이유를 물으니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명쾌한 답이었다.
“이전부터 드라마를 많이 했다. 또,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일 하시면서도 보시고, 식당에서도 보시고, 병원에서도 보시고 즐거워하시고, 때로는 같이 행복해 하시고, 그런 보편성이 참 좋다. 드라마를 병행하는 것은 시청자 분들에게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사드려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다.”
고수와 외모의 상관 관계에 대한 질문은 마지막까지 계속됐다. 이에 그는 “나는 스스로를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잘 나온 사진들 보면 머리가 다 했고, 메이크업이 다 했다. 기사를 보면 외모 이야기만 있으니까 속상하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나 궁금증은 안 갖고 계신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젊은 사람은 신(神)이 만들고, 나이든 사람은 인간이 만든다”라는 말로 취재진에게 어떤 울림을 줬다.
그렇다. 신의 존재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탄생은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평생 동안 세상에 남긴 흔적은 온전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인생은 알파벳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탄생이라는 의미의 ‘버스(Birth)’, 죽음이란 뜻의 ‘데스(Death)’, 선택을 뜻하는 ’초이스(Choice)’. 분명 고수의 외모는 그가 택한 가치가 아니다. 그리고 고수의 연기는 그가 행했던 선택들의 누적이자 인정 받고 싶은 무엇이다.
열 번째 주연작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20년 차 배우는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고민은 계속된다”라며, “말에 대한 고민, 작품에 대한 고민,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줄곧 이어 오고 있다. 고심 중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도, 취재진도, 대중도, 모두가 그의 겉모습에 집중하는 동안 줄곧 연기만을 생각해온 고수. 어쩌면 그의 연기는 거죽의 향(香)이 너무 강해서 누군가에게는 비(非)매력적일 수도 있다. 과연 고수는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어떤 이의 편견을 물리칠 수 있을까. 이번 영화에서 고수는 해답을 찾았다는 입에 발린 소리는 쓰고 싶지 않다. 편견은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고수는 늘 편견과 싸워왔다. 이것이 기자의 답이다.
한편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5월9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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