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김옥빈의 액션이 극장가를 찾아온다.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의 언론시사회가 5월30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정병길 감독, 김옥빈, 신하균, 성준, 김서형, 조은지가 참석했다.
‘악녀’는 살인 병기(兵器)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가 그를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강렬 액션 영화.
김옥빈이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킬러 숙희를, 신하균이 숙희를 킬러로 길러낸 남자 중상을, 성준이 숙희 곁을 맴도는 의문의 남자 현수를, 김서형이 숙희에게 임무를 내리는 국가 비밀 조직의 간부 권숙을, 조은지가 숙희를 견제하는 김선을 연기했다. 그 외에 박철민이 숙희의 아버지 역을, 정해균이 장천 역을 맡아 극에 힘을 보탰다.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와 더불어 ’내가 살인범이다’에서도 액션의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바 있는 정병길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칼 싸움을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스물여섯 살 때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가 이 영화의 초석일 수도 있다. 그것을 만들면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배웠다”라고 운을 뗐다.
더불어 그는 “처음에 여자 액션 원 탑 영화를 한다고 말하니까 우려가 많았다. ‘한국에서 그런 영화가 되겠냐’라는 반응부터 시작해서 ‘그런 배우가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았다. 약간의 우려가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여자 원 탑 영화는 안 돼’라는 의견이 내 귀에는 ‘지금이 아니면 안 돼’로 들렸다”라고 연출 소감을 밝혔다.
‘악녀’는 ‘복수가 시작된다’라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복수의 주체는 숙희로, 상의부터 하의까지 모두 검정색으로 덧입혀진 그가 좁은 복도를 걸어가는 포스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비장미를 안겨준다. 그간 복수를 감정 이입시키는 많은 영화들이 스크린에서 두 팔을 벌렸던 것이 사실. 그렇기에 ‘악녀’의 복수극은 평이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숙희는 여성이다. 영화계에 여배우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점이 터져 나오고 있는 지금, 여성 복수극의 당도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 가운데 ‘악녀’는 다른 배우 아닌 김옥빈이 복수를 몸으로 노래하는 숙희를 연기한다는 점이 관심을 불러 모은다. 영화 ‘여고괴담4-목소리’로 시작해 ‘다세포 소녀’ ‘박쥐’ ‘시체가 돌아왔다’ 등 줄곧 평범을 거부하는 배역을 선택하던 그의 2017년 첫 영화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 또한, ‘빅매치’ 에이스 역으로 결이 다른 악역을 선보였던 신하균이 표현하는 중상 역은 어떤 외양으로 관객을 소름 돋게 할지 이목이 한 곳에 쏠린다.
#‘악녀’의 창조주-정병길 감독
‘악녀’의 주인공 숙희는 김옥빈이 연기했지만, 취재진 질문의 상당수는 정병길 감독을 향해 쏟아졌다. 숙희가 극의 주인공이라면 액션은 영화의 공기이자 흐름이었기 때문이리라.
먼저 정병길 감독은 1인칭으로 진행되는 오프닝 신에 대해 “액션 오프닝 신은 어렸을 때 했던 슈팅 게임에 영감을 받았다. 그런 것을 이렇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고 총 아닌 칼을 사용했다”라며,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점을 고민했다. 거울이 떠올랐고, 헬스 클럽에서 거울과 부닥치면서 1인칭에서 3인칭으로의 롱 테이크를 의도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음에 드는 액션 신에 관해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오토바이 칼 싸움 장면이다. 그 장면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촬영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다. ‘칸 영화제’에서는 후반부 버스 액션 신을 많이 좋아해 주셨는데, 그 장면은 전작 ‘내가 살인범이다’를 업그레이드했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오토바이 장검 싸움은 나한테 도전이었다”라고 밝혔다.
영화는 롱 테이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NG는 없었을까. 정병길 감독은 “롱 테이크긴 하지만, 길게 찍은 신들을 잘라 붙여서 한 테이크처럼 만들었다. 그래도 막 붙일 순 없으니까 최대한 길게 찍었고,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서 끊어야 되는 작업들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악녀’의 동반자-상처
액션 영화는 언제나 출연진의 상처를 수반한다. 상처가 깊게 패일수록 관객이 체감하는 아드레날린의 농도가 더욱 짙어지는 것은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지는 얄궂은 속성이다.
먼저 김옥빈은 “액션 신이 총합 다섯 부분이 있었다. 크고 작은 신들 다 합해서. 그리고 신들마다 감독님이 스타일을 각자 다르게 설정하셨다”라며, “또 현장 가면 스타일이 바뀌곤 한다. 그것에 맞춰서 연습을 많이 했고, 멍과 피는 늘 있는 일이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다행히 안전 장치가 있었고, 리허설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큰 부상 없이 잘 마무리했다. 대단했던 것은 (박정훈) 촬영 감독님이다. 촬영 감독님도 와이어를 달고 내려오셨다. 같이 리허설하고, 부딪치고. 배우들끼리 (정병길) 감독님도 액션 스쿨 출신이시지만, 촬영 감독님도 액션 스쿨 출신을 뽑았다고 이야기했다”라고 덧붙였다.
조은지도 에피소드를 보탰다. 그는 “(김)옥빈 씨랑 같이 목검으로 대결하는 신이 있었다. 본 촬영 들어가기 몇 시간 전에 합을 맞췄기 때문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라며, “하다 보니까 목검이 하늘을 찌르고, 웃음이 터졌다. 결국 마지막에 옥빈 씨의 목검에 내가 직접 맞았다. 옥빈 씨는 괜찮은지 물어봤는데, 나는 웃겨서 괜찮다고 했다”라고 당시를 추억했다.
신하균의 엉뚱한 대답은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사실 액션 신이 많지 않아서 영화를 보면서 ‘옥빈 씨가 고생 많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중국어가 잠깐 나오는데 오히려 그게 굉장히 어려웠다.”
#‘악녀’의 트로피-‘칸 영화제’
‘악녀’는 ‘제70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Midnight Screenings)’ 초청작이다. 정병길 감독, 김옥빈, 김서형, 성준이 프랑스 칸을 방문했다.
먼저 김서형은 “리뷰를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아시아에서 보기 힘든 액션이라고 전해 들었다. 아무튼 반응이 뜨겁다”라고 칸의 열기를 취재진에게 소개했다.
이어 김옥빈은 “인터뷰 예정이 많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BBC를 비롯한 외신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라며,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 액션이 많지 않았는데, 한국 여성 액션에 대해서 신기함과 새로움을 가득 느끼신 것 같았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나에 대한 질문은 아니나 다를까 부상이 많았다. 훈련 과정도 물어보셨다. 특히, 오토바이 시퀀스가 신선했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출연진의 맺음말이 이어졌다. 먼저 성준은 “재밌게 봐주셨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꼭 좋은 말씀으로 영화에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말 열심히 했고, 외신의 열기를 한국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라고 응원을 당부했다.
이어 김서형은 “나는 ‘악녀’에 숟가락 하나만 얹은 기분이다. 덕분에 칸까지 가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보셨던 것처럼 스태프들과 (김)옥빈 씨, (신)하균 씨 등 모두가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다”라고 겸손과 격려를 동시에 내비쳤다.
‘악녀’는 그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김옥빈의 참여와, 개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내가 살인범이다’의 액션 신을 만들어낸 정병기 감독의 연출이 조합된 작품이다. 여기에 믿고 보는 배우 신하균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김서형이 김옥빈이 미처 채우지 못한 여백을 채우며, 성준이 액션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드라마를 이끈다.
종려 나무의 잎사귀로 상징되는 ‘칸 영화제’의 로고가 포스터에서도, 예고편에서도 돋보이는 영화 ‘악녀’. 혹자는 ‘칸 영화제’가 선택했기에 고리타분하며, 지루함이 강조된 작품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시각에서 러닝 타임 123분 내내 뜀박질한다. 오히려 홍보의 주안점처럼 액션이 너무 강조돼서 아드레날린의 만연 속에 덤덤함을 느낄 정도.
어떤 배우는 지금의 영화계는 여배우에게 나중을 기약하게 만드는 시기라고 밝혔던 바 있다. 남성이 중심이 되는 충무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가운데 등장한 김옥빈 주연의 ‘악녀’는 어쩌면 한국 영화계의 비주류인 순수 액션마저 내포하며 2017년 극장가를 찾아왔다. 과연 ‘악녀’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김옥빈은 언론시사회를 마무리하며 “고생했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다시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악녀’는 숙희의 기승전결로 마무리될지라도, 김옥빈의 바람처럼 제2의 ‘악녀’, 또 하나의 ‘악녀’가 충무로에 단비처럼 내리길 희망해본다.
한편 영화 ‘악녀’는 6월8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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