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황치열의 10년은 감사한 시절이다.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행복하다.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
데뷔 10년 만에 첫 번째 미니 앨범 ‘비 오디너리(Be Ordinary)’의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던 가수 황치열. 6월9일 서울시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내면의 행복을 취재진에게 전달했다. 그의 미니 앨범은 ‘프롤로그(Prologue)’ 연주곡부터 ‘사랑 그 한마디(Alone)’라는 자작곡까지 총 일곱 트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가운데 황치열은 첫 미니 앨범이기에 애착을 갖고 신중히 작업했다는 후문. 더불어 앨범은 선 주문 수량이 10만 장을 돌파하며 솔로 가수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체감이 안 온다. 선 주문 기사를 읽었을 때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과거에는 김건모 선배님이나 신승훈 선배님이 100만 장 돌파를 하실 정도로 음반 판매가 활성화 됐지만, 이제는 그 추세가 떨어진 상태 아닌가. 기사를 보고 팬님들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을 보면 사진도 잘 나왔고, 글씨체까지 내가 다 신경을 썼다. 글씨를 보면 코팅돼 있다. 오디너리라고 적혀 있는 곳이 반짝반짝한다. (웃음)”
우선 제목부터 평범함이 강조된 이번 앨범의 콘셉트 배경을 물었다.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경험들을 음악에 잘 새겨 담았다는 ‘비 오디너리’.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음악을 습관처럼, 일상처럼 계속 곁에 두고 있다 보니까 앨범을 처음 준비할 때 문득 떠올랐다. ‘아, 음악은 그냥 일상적으로 늘 주변에 있구나.’ 내 주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뭔지 생각했을 때 정답은 음악이었다. 그래서 ‘일상은 곧 음악이다’가 결정됐다.”
황치열이 치열이던 시절의 1집 정규 앨범 ‘오감(五感)’ 이후 무려 10년 만의 앨범이자 데뷔 10주년 앨범인 ‘비 오디너리’. 성대한 축하 대신 평범한 일상을 노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현실에 집중했다. 과거에는 일상 속에서 혼자 음악을 했다면 이제는 많은 분들과 일상에서 음악을 공유하게 됐다. 잘 되고 있으니까 ‘뭔가 보여주겠어’라고 다짐하는 것보다 공감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는 타이틀곡 ‘매일 듣는 노래(A Daily Song)’에 대해 “매일 들어주십사 지었다”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넨 후, “일상에서 음악을 안 듣고 살 수는 없다. 어떤 노래든 매일 음악을 듣는 것이 삶이다. 클래식 음악이 될 수도, 라디오가 될 수도, 심지어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 항상 주변에는 음악이 있기에 제목을 ‘매일 듣는 노래’로 정했다”라고 소개했다. “가사를 보면 ‘매일 듣는 이 노래가 널 떠올리게 만들어’라는 부분이 있다. 첫사랑을 표현했다. 물론 내 첫사랑의 이야기는 아니다.(웃음)”
황치열은 팬들과 소통하는 가수다. 선 주문 이야기도 팬 카페에서 소식을 접했을 정도. 댓글 놀이도 즐겨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그는 친필 트랙 리스트를 공개했던 바 있다. 첫째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밑줄을 긋고 부연 설명을 덧붙인 리스트를 보면 가수 황치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동네 형, 옆집 오빠 같은 친근감이 전달된다. 특히, 자작곡 ‘사랑 그 한마디’에는 ‘이 곡 쓸 때 힘두러써 TT’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 궁금증을 불러 모은다.
“자작곡이기에 힘들었다. 팬 분들께 들려드리는 것이니까 굉장히 신경 쓰이더라. 피아노 라인으로 멜로디 작업하면서 고민했다. 정통 발라드로 쓸지, 요새 발라드처럼 트렌디하게 쓸지. 또, 갈피를 잡고, 라인을 잡으면서 가사도 힘들었다. 요즘 가사를 보면 ‘네 볼에 뽀뽀하고 싶어’처럼 직설적이다. 반면 옛날 정통 발라드는 그렇지 않다.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다. 단어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하다보니 그 점이 어려웠다.”
지난해 황치열은 ‘대륙의 남자’로 등극했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인 ‘아시가수(我是歌手)’의 네 번째 시즌에 참가한 것. 여기서 그는 네 번째 경연에서 빅뱅 ‘뱅 뱅 뱅(Bang Bang Bang)’을 불러 1위를 차지했으며, 가왕전 최종 3등이라는 성적으로 방송을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 그는 “가수로서의 자존감이 올라갔던 때는 작년이다”라며, “사실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를 하면서도 스스로 실력의 부족함을 느꼈다”라고 입을 열었다.
“지난해 중국판 ‘나는 가수다’를 하면서 그런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퍼포먼스, 가창 등. 그로 인해서 시청률, 대중의 관심도가 올라가니 자존감도 올라가더라. 언어도 원래 하나도 몰랐다. 1월4일에 가서 1월7일에 시작했는데, 나흘 만에 중국어를 외워서 올라갔다. 심지어 중국어 선생님도 없어서 듣고 달달 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난 할 수 있어!’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악바리 기질을 언급하자 그는 “나는 이상하다고 평가 받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털어놨다. “내가 만든 커피는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 부끄럽지 않고 싶다. 내 스스로 창피하기 싫은 셈이다. 남들은 완벽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 손에서 나온 것은 믿음직하고 믿을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나 운명은 야속하다. 사드 배치 문제 이후 촉발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은 많은 중화권 한류 스타들의 발을 묶어 놓았다. 면세점 팬 미팅에서 김수현, 이민호, 지창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황치열에게 피부에 와 닿는 현 상황을 듣고 싶었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사실 나는 팬 분들께 죄송스럽다. 나는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나를 안 챙겼는데, 이제 날 봐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번 앨범 ‘비 오디너리’에 투영하는 황치열의 목표는 무엇일까. 더불어 황치열의 활동에 꾸준히 지적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만의 히트곡이다. 누군가의 음악을 커버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의 목소리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인기곡이 황치열에게는 없다. 우선 그는 “앨범은 가수들의 꿈이다. 앨범을 내면서 내 색깔을 조금씩 잡아가는 것이 목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걸음마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황치열이라는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10년이 걸렸듯이 히트곡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니 무언가 따라왔던 것처럼 노력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히트곡 잡으려고 뛰면 오히려 못 잡는다. 지친다. 쓰러지고.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준비한 말인지 묻자 그는 진심이라고 대답했다. 진심을 이야기하면 몇 백 번 이야기해도 똑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심의 힘. 목소리만큼이나 황치열을 돋보이게 만드는 강점이었다.
구미 청년 황치열이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얻은 집은 홍대 반지하 방이었다. 옛 소속사의 20만 원 용돈으로 한 달을 버티던 그는 난방비가 5천 원 나오던 시절을 몸으로 기억하며 지금도 보일러를 잘 안 켠다고. 계약 해지 이후는 더 심각했다. 용돈이 끊기고, 무릎이 나가고, 잔고는 바닥나고. “‘아버지 힘들어서 그런데 용돈 좀 주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 자수성가하겠다고 나왔는데, 게다가 부모님 걱정을 생각하니 더더욱.”
지금은 ‘대륙의 남자’로 우뚝 선 황치열에게 “지난 10년을 돌이켜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라고 질문했다. 가수의 10년은 초기곡, 히트곡 등의 음악적 성과로 대화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터뷰 중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생담을 들으니 그 시간들을 아우르는 황치열의 생각이 궁금했다. 회포를 푸는 와중에 눈물이 비칠 것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끝까지 낙천적이었다. 그리고 고생했던 시절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처음에는 일어나면 다시 원상 복귀되었을까 봐 걱정됐다. 다음날 되면 리셋(Reset) 돼서 ‘헛된 꿈이었구나?’ 같은 생각이 들까봐 조바심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날 지나면서 걱정이 행복으로,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더라. 물론 처음에도 감사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행복보다 더 커졌다. 10년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힘든 기억이었다면, 이제는 감사한 시절로 다가온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나한테 소중했던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확장하고, 또 수축한다. 처음에는 가슴을 감싸던 고마움이 나중에는 흔하디흔한 일상이 되는 것. 그러나 긴 무명 시절의 반작용인지, 황치열은 여전히 감사를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은 전진하는 동물이다. 전진에 있어서 후퇴는 없다. 과거의 회상 또한 익숙한 것이 아니다. 이 가운데 감사한 시절이라고 그때를 회상하는 ‘황쯔리에’를 보면 평범함을 노래하는 가수에게서 비범함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노래도 연기처럼 혼이 실린다. 그래서 황치열의 음악이 특별했나 보다. 아마 ‘비 오디너리’도 그럴 것이다.
한편 황치열은 13일 오후 6시 타이틀곡 ‘매일 듣는 노래(A Daily Song)’가 포함된 첫 번째 미니 앨범 ‘비 오디너리(Be Ordinary)’를 발표하며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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