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화려하지 않기에 더 화려한 역설 여기 피어나다 (종합)

입력 2017-07-04 18:38   수정 2017-08-20 12:50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이효리가 돌아왔다.

가수 이효리(李孝利)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블랙(Black)’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가 7월4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개최됐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또한, ‘블랙’이다. ‘블랙’은 화려한 컬러의 메이크업과 카메라 렌즈 뒤로 가려졌던 그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곡. 이번 신곡은 거친 듯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와, 힘 있게 받쳐주는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가 시원하고 큰 스케일을 청자에게 전달한다. 더불어 뮤직비디오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촬영돼 노래를 풍만하게 확장시키며, 이효리를 검게 빛나게 한다.

그의 시원시원한 성격처럼 행사 시작과 동시에 무대에 올라온 이효리는 “이렇게 취재진을 마주하는 것은 몇 년 만이다”라며, “그동안 그냥 제주도에서 주부 생활 열심히 하고, 요가도 열심히 하고, 또 앨범을 준비하면서 편안하게 지냈다. 이번에 앨범이 나와서 서울에서 2주 정도 지내고 있다. 복잡한 생활을 안 하다가 이번에 바쁘게 활동하다 보니 재밌기도 하지만, 정신이 없다. 오랜만에 번쩍번쩍하니까 기분이 좋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블랙’은 다섯 번째 정규 앨범 ‘모노크롬(MONOCHROME)’ 이후 약 4년 2개월 만의 새 앨범. 이효리의 이번 신보는 지난 앨범의 선공개곡 ‘미스코리아’의 작사 및 작곡에 참여했던 그의 음악적 역량이 앨범 전체로 뻗어나간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트랙 ‘서울’부터 이적이 참여한 마지막 트랙 ‘다이아몬드’까지 모두에 이효리의 손길이 닿은 것. 특히 ‘서울’은 선공개 엿새 만에 조회수 약 140만 회를 기록 중이다. 아이돌, 솔로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과연 20년 차 가수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50개월 만의 앨범


‘블랙’은 약 4년 2개월 만의 이효리 신보다. 그리고 4년 2개월은 50개월로 치환 가능하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38주인 것을 떠올려보면, 그의 음악이 탄생하까지 얼마나 큰 진통이 있었을지 가늠케 하는 시간이다.

먼저 이효리는 “내가 언제 컴백할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긴 기다림 같은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나 자신도 궁금했다. 뭔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사실 앨범이 나오는 거니까”라며, “내 자신에 대해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누가 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던 것들이 생기더라. 여러분 앞에서 노래도 해보고 싶고, 후배들과 경쟁도 해보고 싶고, 그런 마음이 생길 때가지 기다렸다. 멀리뛰기 하기 전에 뒤로 가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가사 전달에서 고심을 많이 했다.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러운 세상인데, 영원히 남는 곡 아닌가. 그래서 가사를 쓸 때 누구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을 배제했다.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앨범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라며, “(김)도현이라는 친구가 ‘텐 미닛(10 Minutes)’부터 같이 앨범 작업한 친구인데, 8년 넘게 교류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인연이 돼서 다시 만났고, 멜로디와 가사는 내가 쓰지만 트렌디한 리듬이나 악기 구성은 약하기 때문에 도현이란 친구가 그런 부분을 채워줬다. 제주에서 혼자 곡을 썼기 때문에 올드할 수 있는 곡도 세련된 사운드로 도움 줬다”라고 앨범을 소개했다.

4년 만의 컴백인데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을까. 그는 “이제 나이도 많고, 시집도 갔을 텐데 얼마나 팬들이 있을지”라고 털어놨다. “공개 방송 사전 녹화를 하면 팬들만 데리고 한다. 그동안 팬 미팅도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팬들에게 무심했다. 시골에 확 내려가서 활동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점이 조금 걱정된다. 그리고 아무래도 여자 연예인이다 보니까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괜찮을까? 예쁜 후배들 많은데 화면에 나가도 될까?’ 같은 사소한 걱정을 했다.”

또한, ‘블랙’의 일주일 활동 이유로 아이유와의 대화를 배경으로 언급했다. “아이유한테 물어봤는데 음악 방송을 2주 했다고 하더라. 인기 많은 친구도 2주 밖에 못 했는데, 길게 끄는 것은 구차한 것 같았다. 깔끔하게 일주일 하게 됐다”라며, “솔로가 아니고 주부다 보니까 집을 떠나 있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음악 방송 일주일 하고, 제주도 내려갔다가,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가 뒤에 있다. 그때 다시 올라올 예정이다.”

#’서울’ 그리고 ‘블랙’


이효리는 이번 앨범은 그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돋보인다. 총 10곡 중 8곡의 작곡에 참여했으며, 9곡의 작사에 참여한 것. 5집 ‘모노크롬’ 때만 하더라도 ‘미스코리아’의 작곡에만 참여했던 그의 변화는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이와 관련 그는 “그때는 아무래도 곡을 받아서 앨범을 만들다 보니까 ‘미스코리아’ 한 곡만 내가 썼다. 실험이었다. ‘이게 될까? 별로 화려하지 않지만 될까?’라는 실험”이라며, “거기에서 조금 발전해서 내 곡을 늘려본 것이 이번 앨범이다”라고 말했다.

미리 듣기 시간에서 그는 첫 번째 트랙 ‘서울’에 대해 “작년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하던 당시에 이 곡을 쓰게 됐다. 서울이 화려하고 예쁜 모습일 때는 잘 몰랐는데, 막 요동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살던 고향이 안쓰럽다는 느낌이었다. 아련하기도 했다”라며, “그래서 반짝 반짝 빛나는 멀리 있는 별에 서울을 비유해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사실은 도시를 찬양하는 곡들이 외국에는 많다. 뉴욕부터 시작해서. 도시를 찬양하는 곡도 좋지만, 어떤 도시의 어려운 단면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마음도 담아낼 수 있는 곡이 있으면 어떨까 싶어 곡을 만들었다”라고 소개했다.

타이틀곡 ‘블랙’에 대해서는 “나도 내 마음에 어두운 면과 슬픈 마음이 있는데”라며 그의 본질(本質)을 이야기했다.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를 보면 컬러감이 많다. 정열적인 빨간색도 있고, 상큼한 오렌지색도 있고. 앨범 홍보할 때도 색깔을 많이 사용했다, 컬러 렌즈에, 헤어도 그렇고, 메이크업도 그렇고. 어느 순간 ‘다 걷어냈을 때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봐줄까?’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나의 모든 것을 용기 있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의 좋은 면만 부각시키는 것보다 진짜 한번 나를 내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사람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다 어두운 단면이 있다. 음악에 녹여내고 싶었다.”

#화려하지 않은_1


‘블랙’은 이효리의 향후 10년을 가늠할 수 있는 앨범이다. 마치 이전 앨범의 ‘미스코리아’가 앨범 전체로 확장된 듯한 분위기는 취재진 눈 앞의 이효리가 ‘텐 미닛’ ‘유고걸(U-Go-Girl)’을 부른 그가 맞는지 의심케 만들었다.

이에 이효리는 “이제는 화려한 모습을 걸쳤을 때 그때처럼 예쁘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여자의 직감이 있지 않은가”라며, “그때처럼 화사하지 못할 것이라면 깊이 있는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내가 곡과 가사를 쓰기 때문에 화려한 앨범이 되지 않더라도, 나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부분에 신경을 썼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던 것은 나의 섹시한 비주얼이다. (웃음) 편안하게 입은 모습이 나는 편하지만, 타인에게는 심심할 수 있다. 음악이 심심한데 비주얼까지 심심하면 조화가 깨질 것 같아서, 조금 더 카리스마 있고 깊이 있는 섹시한 모습을 준비했다. 무대에서 인사드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효리는 이번 앨범에서 느껴지는 비대중성에 관해 “대중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잡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잘 될 줄 알았다. 대중이 좋아할 줄 알았다”라고 항변했다. “‘서울’도 대중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더 밝고 빠른 곡을 대중이 원했던 것 같다.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끝까지 해야 스스로 살아남는 아티스트가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과도기가 있다. 바로 갈 순 없으니까. 지금은 중간인 것 같다. 중간 정도 음악, 너무 대중적이지 않고 마니아적이지 않은 음악을 타이틀곡으로 했는데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고 관여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화려하지 않은_2


이효리는 20년 차의 가수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핑클의 이효리와 지금의 이효리 사이의 큰 이미지 간극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것이 사실. 연예인의 화려함과 개인의 친숙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와 관련 이효리는 “원래의 나와 지금의 내가 비슷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난 구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라며, “데뷔하면서 연예인이 아닌 분은 나랑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독보적인 위치에서 구분을 지으니까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제주도 생활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요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 예전에는 이야기 나누는 것도 어색했다면 지금은 어깨도 눌러주고 발도 눌러준다. ‘아,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직업이 연예인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화려하고 바쁘게 생활하다가 다시 조금씩 돌아가는 기분이다. 핑클 때 팬들은 우리가 화장실도 안 간다고 믿었다. 그런 환상이 깨지면서 원래의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똑같다”라고 덧붙였다.

만약 제주도가 아닌 서울이 거주지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런 모른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나에게 생각의 변화를 준 요인이 제주도인지, 요가인지, 남편인지 콕 집어서 하나를 말하진 못할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이끈 것 같다.”


보통 새 앨범을 소개하는 자리는 가수의 무대가 수반된다. 그러나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이효리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블랙’에 담긴 총 10곡의 음악을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아주 정성들여 소개했다. 마치 그만이 알고 있는 노래마다의 결과 색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취재진에게 전달하고 싶은 듯 많은 시간을 미리 듣기에 할애했다. 생소했다. 그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이토록 뜨거웠는지 미처 몰랐고, 또박또박한 발음에서는 설렘과 떨림마저 전달됐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 중간 이효리는 여성 뮤지션으로서 고민하는 지점을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우라나라에서 여자 가수, 여자 뮤지션은 젊고 예쁠 때 활발히 활동하다가 뒤에 묻히는 느낌이 있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라며, “원래 뮤지션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고, 폭도 넓어지기 마련이다. 겉모습이 사그라진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애정도나 관심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현상을 받아들이고, 내면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질량이 똑같아 지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예쁜 얼굴로 사랑 받았다면 이제는 깊이 있는 음악으로, 울림으로 점차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가 ‘서울’을 언급하며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효리의 과도기다. 대중은 댄스곡을 바라고, 그는 자신의 노래를 원한다. 간극은 메워질 수 있을까. 그의 또박또박한 발음이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맴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이효리의 설렘과 떨림은 아마 그가 바라는 일의 완성, 곧 울림을 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은 바람의 외적 증거일 것이다. 설렘과 떨림 그리고 울림. 여기 화려하지 않기에 더 화려한 역설이 피어났다.

한편, 이효리는 4일 오후 6시 정규 앨범 ‘블랙(Black)’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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