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녀와 소녀 사이’ 27년차 배우 김정난의 연기 인생

입력 2017-07-13 15:09  


[허젬마 기자] 배우에게 작품 속 역할은 마치 하나의 자아와 같을 터.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잘 소화해내냐에 따라 그 자아는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돼 그 배우를 떠올리는 정체성을 이루기도 한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이후 배우 김정난에게는 ‘청담마녀’라는 수식이 종종 따라 붙었다. 세련되고 도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당기가 새어 나오는. 실제 그녀를 만나본 소감이 어떻냐고? 세련미가 있으면서도 털털하고 도도하면서도 천진난만하다. 어느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이 마녀와 소녀 사이를 넘나들던 그녀. 팬카페 연령층이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아우른다던 말이 새삼 이해가 간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어느덧 연기 인생 27년차를 맡은 대한민국 명품 배우 김정난에게 연기자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Q. 화보소감

정말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다. 거의 7년 만인가? 매번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팬카페에서도 왜 이렇게 프로필 관리에 소홀하냐고 성화였는데 오늘 잘 찍은 거 같다(웃음).

Q. 오랜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표정이나 포즈가 너무 좋았다. 원래 사진 찍는 걸 즐겨하나

예전에는 좋아했는데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사진 찍는 걸 좀 기피하게 되더라. 일단 찍어서 마음에 드는 컷이 잘 안 나온다(웃음). 나이를 먹는다는 걸 인정하고 내려놓을 건 내려놔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 같다. 사진 속 내 모습에 세월의 흐름이 느껴져서 적잖이 충격도 받는다. 오늘도 충격 많이 받았다(웃음).

Q. 전혀 제 나이로 안 보인다. 관리 비법이 따로 있나

그냥 너무 깊게 고민 안 하려고 애쓰는 거? 어릴 때는 너무 예민한 성격이어서 사소한 일로도 고민하느라 며칠씩 잠 못자고 그랬다. 그런데 문득 ‘이러다 내가 늙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안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늙는데 노화의 주범이라는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면서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지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떤다든지 잘 치지는 못하지만 피아노를 친다든지 그런 식으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Q. 운동도 좋아하나?

운동은 항상 꾸준히 해왔다. 요세는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한 6개월 정도 했는데 인생 운동을 만난 거 같다.

Q. 운동의 기본기가 없는 사람은 필라테스를 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나는 어릴 때부터 이것 저것 운동을 많이 해왔어서 운동 신경이 좀 있는 편이라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거 같다. 한동안 운동을 좀 게을리해서 초반에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은 근육이 많이 붙었다.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고(웃음).

또 필라테스는 속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이라 몸의 중심도 잘 잡아주고 바른 자세를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직업이 배우이니 자세가 제일 중요하지 않나. 자세가 구부정하거나 흐트러지면 어떤 역할을 맡아도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꼿꼿하고 예쁜 자세를 유지하는 데에는 필라테스만한 게 없는 거 같다.

Q. 여자라면 누구나 세월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이 있겠지만 특히나 배우라는 직업상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 적나라함을 어쩔 거냐(웃음). 또 요즘엔 TV 화질도 너무 선명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집에서 TV 화면 모드를 부드러운 모드로 조정해 놓는다(웃음).

가끔 다른 곳에서 거친 화면 속에 내 모습이 나올 때면 부담스러움을 넘어서 무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이게 관리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어쩌겠나. 일단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여배우가 나이를 먹어가는 건 아름다운 거라고. 내공이 쌓이고 깊이가 묻어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웃음). 이제는 외모보다는 내면을 잘 가꿔서 우아하게 잘 늙어가고 싶다.


Q.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후 정말 오랜 세월이 지났다. 롱런 비결이 있다면?

결혼과 맞바꾼 인생이랄까(웃음). 젊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일찍 결혼을 했더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동기들 중 물론 아주 잘 나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의 활동을 안 하고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시기를 놓치고 기회를 놓치다 보니 자연스레 상황이 그렇게 되는 거 같더라. 대신 그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얻었지만(웃음). 이제는 현재의 내 삶이 운명이라 여겨진다.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몰두할 수 있어 행복하다.

Q.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나

사실은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형편이 안 돼서 엄두를 못 냈다. 레슨비도 없었고. 그랬는데 고등학교에 다닐 때 주변 친구들이 옆에서 자꾸 권유를 해서 얼떨결에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썼었다.

Q. 친구들 사이에서 미모가 출중했나 보다

미모를 떠나 내가 워낙 학교에서 좀 나대고 다닌 스타일이었다(웃음). 학교에서 무슨 행사 같은 게 있으면 나서서 사회도 보고 방송반 활동도 했고.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친구들이 계속 “너는 연영과 가야된다” 부추겼는데 마침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셔서 ‘정말 한번 해볼까’ 하고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했던 거지.

Q. 그 친구들은 지금 TV에 나오는 김정난을 보며 뿌듯해 하겠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연락을 잘 못하고 있는데 가끔 들려오는 소식 들어보면 멀리서도 응원을 해준다고 하더라. 고마운 마음이다.

Q. 그 말괄량이 고등학생이 어느덧 27년차 배우라니 감회가 남다르겠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믿기지가 않는다. 대학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시간이 휘리릭 지나갔다. 심지어 나의 30대는 어디다 뚝 떼어놓고 온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정신 없이 살았던 거 같다.

Q. 오랜 연기생활 동안 비중 있는 조연들을 많이 맡아왔다. 소위 ‘탑스타’가 아닌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나는 아쉬운 게 없는데 팬들이 있는 거 같다(웃음). 나는 애초에 탑스타라는 욕심이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마냥 연기하는 게 재미있고 좋았던 사람이다. 뚜렷하게 어디까지 가야겠다는 목표같은 게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연기라는 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을 들게 한다. 점점 어려운 거지. 팬들과 대중의 기대도 있을 테니 더 깊은 연기를 보이면서도 또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줘야 하니 연기가 정말 어렵다. 그리고 사실 ‘탑스타=대배우’라는 공식은 아니지 않나.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큰 욕심까지는 부리지 않고 그저 시간이 좀 더 지나 사람들이 날 떠올렸을 때 정말 멋진 배우였다고, 감동을 주는 배우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다. 그게 전부다.


Q. 연기를 하면서 슬럼프나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나

물론. 어렸을 땐 종종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건 다 지나갔고 가끔씩 작품에 대한 딜레마가 찾아온다. 가장 두려운 건 나 스스로를 탈피하는 거다. 매 작품마다 완벽하게 새로운 인물로 보여져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관객과 시청자가 가장 두렵다.

Q. ‘신사의 품격’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

비중있는 조연들을 맡아 하다 보면 그렇게 빵 터지는 순간들이 온다. 그걸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의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예상도 전혀 못 했었다. 다만 대본을 읽는데 캐릭터가 바로 그려지더라. 내가 연기하는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는 거지. 그렇게 ‘인연’을 맺는 캐릭터가 가끔씩 찾아오는데 그런 캐릭터를 만나는 건 연기를 몇 십년을 해도 쉽게 찾아오는 일이 아니다. 하늘에 별따기인 거지. ‘신사의 품격’은 내게 정말 고마운 작품이다.

Q. 결혼 생각

아직도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왜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결혼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이 더 두려워진다. 그래서 어른들이 결혼은 그냥 어릴 때 뭣 모를 때 하는 거라는 말이 딱 맞는 거 같다. 지금은 하나하나를 모두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한 집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을가?’, ‘내가 그를 계속 챙겨줄 수 있을까?’, ‘살다가 싸우면 어떻게 풀어야 하지?’ 등등. 그러다보면 점점 더 낯설고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지금 마음은 그냥 반반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는데 뭐 사실 내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웃음). 그저 순리에 맡길 뿐이다.

Q. 그렇다면 이상형은?

일단은 나랑 코드가 맞는 사람. 서로 이야깃거리가 많고 함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예술적인 감성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무래도 내 일이 이렇다 보니 너무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사람과는 좀 힘들지 않겠나. 함께 예술적인 삼성을 공유할 수 있고 항상 그에 대해 토론을 해도 지루하지 않을 사람. 그런 친구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내 팬클럽 회장인 언니가 15년 전에 낳은 아기가 지금 대학생이 됐다. 팬들의 나이가 아주 어린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엄청 다양한데 이거 하나만큼은 자랑하고 싶다. 앞으로도 멋진 역할로 그들의 응원과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 늘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에디터: 허젬마
포토: 김연중
의상: 맘누리, 레미떼
백: 볼드리니 셀레리아
시계: 망고스틴
선글라스: 룩옵티컬
주얼리: 해수엘
헤어: 스틸앤스톤 송화 원장
메이크업: 스틸앤스톤 조지혜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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