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와 제품 브랜드 시너지 협업에 집중
-스팅어, 모하비, K9 프리미엄 제품으로 묶어
맹금류를 이용한 사냥의 시작은 대략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 중앙아시아 및 몽골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새를 이용한 사냥은 지구 곳곳으로 전파돼 한국에서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매를 이용한 사냥이 횡행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에서 매 사냥의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매 사냥에 있어선 우리도 수준급인 셈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매를 띄우다보니 간혹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매의 꽁무니에 주인 이름표를 달았는데, 이를 '시치미'라 한다. 하지만 이름표를 떼어 버리면 임자 없는 매가 되기 일쑤였다. 이른바 알면서도 모른 척할 때 흔히 사용하는 '시치미를 떼다'의 유래다.
뜬금없이 시치미 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일부 학자들이 시치미를 브랜드(Brand)의 기원으로 삼고 있어서다. 매를 훔쳤을 때 시치미를 보고 사냥의 역량을 판단했는데, 유명한 조련사의 시치미라면 떼어 내고 몰래 자기의 시치미를 달았고, 그렇지 않으면 돌려주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도둑에게도 시치미의 브랜드는 중요했다는 역설이다.
이 같은 시치미(?) 브랜드의 영향력이 전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자동차다. 같은 이동수단이라도 제조사 시치미에 따라 구매 만족도가 달라져서다. 그리고 브랜드는 곧 수익 증대의 기반이 된다. 일례로 같은 원가가 들어간 제품일 경우 시치미는 가격 차이를 결정짓는 무형의 가치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똑같은 모양의 동일 구조와 성능의 자동차를 제조할 때 5,000만원의 원가가 소요된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렉서스, 제네시스 등이 있다면 소비자 선택은 어디로 움직일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짐작은 가능하다. 따라서 제조 브랜드가 약한 쪽은 제품 브랜드 확장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과감한(?) 도전을 끊임없이 전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가격 결정의 폭을 넓히면 그만큼 수익도 증대한다.
하지만 위험도 적지 않다. 자칫 실패가 일어난다면 일으켜 세우려는 제조 브랜드는 물론 제품 개발에 따른 손실마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브랜드 개발에는 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 준비 작업을 거치게 된다.
최근 기아차가 압구정 사옥에 '비트365'라는 브랜드 공간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 스포츠세단 '스팅어'를 발표했다. 제조 브랜드 영향력을 높임과 동시에 '스팅어'라는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며 제조와 제품의 브랜드 시너지를 노리는 작전이다. '기아(KIA)'라는 시치미를 떼면 제품으로서 프리미엄에 밀리지 않는다는 판단이지만 기아 시치미를 뗄 수 없는 만큼 '제조 브랜드'도 함께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물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또한 다양한 제품군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기아차는 먼저 프리미엄 제품군을 묶는데 집중키로 했다. 스팅어를 비롯해 모하비와 곧 내놓을 K9 후속 제품을 '프리미엄'으로 엮는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가 과거 i30와 벨로스터, i40 왜건 등을 'PYL(Premium Younique Lifestyle)'로 구분한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우려도 있다. 프리미엄 제품을 엮어도 제조 브랜드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항공기 좌석으로 비유하면 우선적으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으로 이동시킨 후 별도 브랜드로 독립시켜 '비즈니스' 석에 안착시키는 전략인데, 여전히 소비자에게 '프리미엄 이코노미'와 '비즈니스'의 인식 차이는 매우 확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제네시스 띄우기가 우선인 마당에 기아차도 첫 발부터 프리미엄 브랜드를 가져가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비트 365에선 주말마다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시간의 틈새를 제조 브랜드 향상으로 맞추는 형국이다. 그 사이 프리미엄 제품군을 완성시켜 소비자에게 '기아차가 달라졌네'라는 인식을 심는 게 목표다. 제품도 제품이지만 무엇보다 제조 시치미만 보고서도 생각이 달라져야 하니 말이다. 시치미를 뗄레야 뗄 수 없으니 시치미를 일부 바꿔보자는 기아차의 작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 [하이빔]사는 것보다 타는 것으로 바뀌는 자동차
▶ [하이빔]PHEV 없이 전기차 시대가 올까
▶ [하이빔]졸음운전 막을 대안, 돈보다 사람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