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여섯 배우가 병자호란을 이야기한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의 제작보고회가 8월23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CGV 압구정에서 개최됐다. 황동혁 감독,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이 참석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그간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연출을 맡으며 대중의 기호를 파악한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손에 쥐었다.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는 각각 누적 관객수 466만 2천914명, 865만 9천581명을 기록했다.
이병헌이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김윤석이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역을, 뱍해일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 역을, 고수가 격서 운반의 중책을 맡은 대장장이 서날쇠 역을, 박희순이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 역을 맡았다. 이 밖에 조우진이 조선 천민 출신의 청나라 역관 정명수를 연기했다.
현장의 주인공은 단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였다. 티저 예고편 종반부 주연진의 이름이 화면에 아로새겨질 때 기자를 포함한 모두는 배우 개개인의 히트작이 머릿속을 스쳤을 테다. 보통의 상업 영화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진, 이른바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의 포진은 두 명이 평균이다. 하지만 ‘남한산성’에서는 무려 네 명 이상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특히, 이병헌은 ‘남한산성’과 사극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천만’ 기록을 이뤄냈던 바 있다. 김윤석, 박해일, 고수도 저마다의 유명작을 갖고 있는 영화계의 중견 배우다. 모두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이병헌의 변(辯)
앞서 소개했듯 이병헌은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을 연기했다.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물. 조정 내 반대 세력들의 비난 속에서도 홀로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며 조선의 앞길을 모색한다.
먼저 이병헌은 특유의 유머로 현장의 긴장감을 잠재웠다. 사회자 박경림이 “‘광해’ 이후 오랜만의 사극이다”라며 ‘남한산성’ 출연 소감을 묻자 “중간에 ‘협녀’도 있었다”라는 말로 모두를 웃게 한 것.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2015년 개봉작으로, 약 4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여기에서 이병헌은 유백 역을 연기했다.
이어 그는 “‘광해’나 ‘협녀’는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부분이 있었다. ‘남한산성’은 역사 그대로를 고증하고, 하나 하나 그 당시 실제 역사와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서 다들 노력했다. 최명길이라는 실존 인물이 행한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심각하게 영화를 접했다. 정통 사극의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청과의 평화를 바라는 주화(主和)파 최명길의 반대편에는 척화(斥和)파 김상헌이 있다. 극중에서는 김윤석이 연기했다. 이병헌과 김윤석. 두 배우는 ‘남한산성’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연기 호흡을 안 물어볼 수 없다.
이병헌은 “보통 대사가 많은 중요한 신은 리허설을 몇 번 한다. 상대 배우가 어떻게 이 신을 해석했고, 호흡이 어떨지 대충은 감이 온다. 그런데 리허설 하고 매 테이크 가는데도 김윤석 선배는 종잡을 수 없는, 정말 매번 다른 연기를 하더라.” 이어 그는 탁구를 예로 들었다. “디펜스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뛰어가서 받아냈다가, 저 뒤에서 받아내고.”
또한, 그는 “굉장히 뜨거운 배우다”라며, “매 테이크마다 ‘아, 정말 감정의 모든 것을 다 실어서 저렇게 내뱉기 때문에 매 테이크마다 달라지는구나. 이성적으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감성에 맡겨서 온전히 연기를 하기 때문에 다른, 나오는 대로 다 쏟아내는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좌측에 앉은 김윤석을 칭찬했다.
#김윤석의 변(辯)
김윤석은 김상헌을 연기했다.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옳다고 믿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기개의 예조판서다. 척화를 주장하며 최명길과 팽팽히 대립한다.
그가 ‘남한산성’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굴욕적 역사이기 때문이란다. “사실 사극은 영화 ‘전우치’ 때 잠깐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제대로 건드리는 작품에는 처음 출연한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고전이었다면 재밌게 찍을 수 있었지만, ‘남한산성’은 방송에서 한 회차로 넘어가거나 피해가는 당연히 굴욕적 역사고 피하고 싶은 기억이다.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건드려서 알아야 하는 것들이, 원작도 그렇지만 감독님 생각이 와닿았다.”
또한, 김윤석은 “두 인물이 충심은 같은데 다른 의견을 내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도, 실존 인물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라고 출연 배경을 덧붙였다.
이병헌과 마찬가지로 김윤석에게도 이병헌과의 연기 호흡을 물었다. 둘 모두 선이 굵은 배우다. 굳이 나누자면 김윤석의 연기는 마초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한국 사회 중년 남성이 지닌 무덤덤함이 배어 있다면, 이병헌의 연기는 날카로움이 짙게 빛을 발하는. 그러나 이병헌은 어느 순간 날카로움 대신 순두부처럼 몰캉한 여린 면을 비추기도 한다.
김윤석은 “이번 작품에서 여기 계신 모든 배우 분들을 다 처음 만났다. 희한하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왜 우리가 못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신선한 즐거운 경험이었다”라며, “이병헌 씨랑 작품을 처음하게 됐다. ‘정통파구나. 이 사람은 정통파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왜냐하면 굉장히 정제된 상태에서 여러 가지 비틀어진 뭔가를 실지 않고 굉장히 정석대로 놓치지 않고 한다. 그 이외에 화려한 무언가가 있지만, 맡은 배역에 있어서는 정제된 상태에서 대사를 친다. 이병헌 씨가 현대극 할 때의 느낌과, ‘광해’랑은 또 다르기 때문에 신선하게 다가왔다”라고 이병헌의 연기를 소개했다.
#박해일과 고수의 변(辯)
박해일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의 16대 왕 인조를, 고수는 전쟁 중 가족을 잃고 산성의 한 마을에서 생계를 이어온 대장장이 서날쇠를 연기했다. 한 명은 조선 시대의 꼭대기, 다른 한 명은 꼭대기의 대척점이다.
박해일은 병자호란과 묘한 인연을 맺고 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그는 누이를 구하기 위해 병자호란 가운데에서 활시위를 당긴 신궁(神弓) 남이 역을 맡았던 바 있다. 또한, 그는 ‘남한산성’을 통해 왕 역할을 처음 맡았다.
“왕 역할은 처음이다. 우선 배우로서, 옆에 계신 이병헌 선배님도 최근에 광해라는 역할로 연기를 하셨는데, 쉽지 않은 역할이다. 많지 않은 기회를 이번에 얻게 돼서, 아무튼 왕이다 보니까 감개무량하다.” 더불어 그는 인조라는 왕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캐릭터 자체가 인조다. 아시다시피 많은 박한 시선들이 있더라.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왕 역할이 인조이기에 상당히 고심이 많았다.”
극중 서날쇠는 예조판서 김상헌에게 근왕병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격서 전달 중책을 부탁 받는다. 청의 포위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다. 이 가운데 고수는 격서 전달 과정에서 고생이 많았단다. “힘들고 불안한 시기를 살고 있는 민초로서, 근왕병에게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왕병을 모으기 위해 임금의 친서가 적혀 있는 격서를 가지고 성 밖으로 나간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빙벽에도 3박 4일을 매달렸다. 고생 많았다.”
끝인사로 고수는 “‘남한산성’ 9월27일 개봉한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곧 있으면 추석 명절이다. 명절에 우리 사극 많이 보신다고 알고 있다. ‘남한산성’과 함께 하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2017년 추석 연휴의 겨냥을 취재진에게 알렸다.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의 정치적인, 국제적인 위치나 상황과 너무나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주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남한산성’의 시의성을 언급했다.
한 사람은 영화의 흥행을 희망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영화의 공감을 소원했다. 이 가운데 기자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떠올렸다. 1980년 5월의 사건을 대중에게 이야기의 힘으로 공감시켰고, 22일 기준 누적 관객수 1063만 5천508명을 기록 중인 ‘택시운전사’. ‘남한산성’ 또한 같은 흥행과 공감을 기록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경쟁작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박열’로 흥행 배우 반열에 오른 이제훈 주연의 ‘아이 캔 스피크’, 안대를 착용하고 돌아온 콜린 퍼스 주연의 ‘킹스맨: 골든 서클’이 ‘남한산성’과의 경쟁을 준비 중이다. 추석이 기다려진다.
한편 영화 ‘남한산성’은 9월27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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