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서 기름도 팔고, 전기도 팔고
-수송 에너지 모두 파는 쪽으로 선회할까
자동차용 휘발유와 경유를 판매하는 기름 유통사가 같은 공간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하고, 수송용 전력 유통 사업에 나서 화제다. 물론 전기를 구입하는 사람은 현대차 아이오닉 EV 보유자에 한정되지만 수송용 석유제품만을 유통하던 것에서 벗어나 경쟁 에너지로 여겨지는 전력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수송 에너지도 이른바 '복합유통' 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발단은 SK네트웍스와 현대자동차의 제휴다. 주유소 사업이 주력인 SK네트웍스는 최근 서울 2곳 및 대구 지역 1곳의 복합주유소에 전기차 급속 충전기 부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유소 인프라를 외부에 개방, 모빌리티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지만 업계에선 주유소도 이제 여러 수송 에너지 제품을 동시에 취급하는 '양판(mass retailer)'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아직은 현대차에 충전기 설치 부지를 임대해주는 방식이지만 향후 충전기 이용자가 늘어날 경우 다양한 전기차도 이용 가능한 수송용 전력 판매에 SK네트웍스가 직접 나서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셈이다.
사실 수송용 에너지 가운데 화석연료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여러 국가에서 탄소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다. 게다가 자동차 보유대수 증가율이 떨어지고, 연간 주행거리도 해마다 짧아진다는 점은 그만큼 휘발유와 경유 사용량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대중교통의 발달로 자동차를 보유하려는 욕구도 저하된다. 그러자 먼저 생존 위기를 느낀 자동차회사가 앞 다퉈 카셰어링과 제휴하거나 인수에 나서는 중이다. 미래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제조 수익 감소 보전을 위한 운행 사업 기반을 미리 확보하는 차원이다. 그래야 제조 부문의 이익이 떨어질 때 운행에서 보전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 경우 유지비가 적게 들고, 에너지 사용료가 저렴한(?) 전기차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같은 현상을 에너지에 대입하면 점차 수송 부문 화석연료의 사용량 감소는 물론 주유소 이용자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연간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것도 모자라 배출가스 규제로 효율을 높이려는 자동차회사의 기술 개발 노력이 ℓ당 주행 거리를 늘리는 마당에 수송 부문의 전기 에너지 등장이 주유소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실제 최근 주유소 폐업이 늘어나는 것도 배출 규제와 효율 향상, 그리고 자동차 이용율의 저하를 이유로 꼽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유사 또는 주유소의 고민은 줄어드는 기름 사용을 대체할 만한 사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회사는 제조를 넘어 운행 사업, 즉 전기 기반의 이동을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지만 그럴수록 주유소 입지는 자꾸 좁아진다. 그래서 정비 사업도 하고, 편의점도 마련했지만 기본적으로 주유소 이용자가 많아야 유지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정유사 직영이라도 에너지 종류와 관계없이 자동차 이용자를 주유소로 끌어들여야 하는 절박함(?)이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부지를 제공하게 만든 배경이 됐다.
또 하나 이번 제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주유소가 전기를 직접 생산, 판매할 수도 있어서다. 예를 들어 옥상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한 뒤 여기서 얻은 전기를 전기차에 판매하는 것도 에너지 유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직접 생산한 전기를 팔다가 부족하면 한전에서 구입, 전기차에 되팔면 된다. 현재 EV 충전사업자 대부분이 한국전력에서 전기를 사다가 마진 붙여 재판매하는 방식이니 주유소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결국 화석 연료만 판매하는 주유소가 아니라 화석 연료는 물론 전기, 나아가 수소도 판매하는 복합 수송에너지 스테이션으로 바뀌어 간다는 뜻이다. 실제 독일의 일부 수송 에너지 스테이션은 휘발유, 경유, 천연가스, LPG 등을 모두 판매한다. 이 곳에 주유기처럼 새로운 수송 에너지인 전기 충전기만 설치하는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서 이번 양 사의 협업은 의미가 간단치 않다. 외형만 보면 전통적 개념의 주유소가 전기차용 급속 충전기 부지를 임대해 주는 또 다른 사업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를 포함한 거대 이동 시장의 사회적 변화에 대처하려는 기름 회사의 큰 고민이 담겨 있어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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