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가을처럼 씁쓸하고 소주처럼 쌉쌀하다 (종합)

입력 2017-10-24 19:16   수정 2017-10-25 11:28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최민식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의 언론시사회가 10월24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정지우 감독, 최민식, 박신혜, 류준열, 이하늬, 박해준, 조한철, 이수경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침묵’에서 최민식은 역할의 부정(父情)을 스크린 밖으로 전달했다. 현장에서 정지운 감독은 ‘침묵’을 금칙어가 있기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가 되었다는 것은 추호의 의심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가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열쇠는 최민식의 손에 들려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최민식의 가을이 온다.


‘침묵’ 언론시사회에는 정지우 감독부터 이수경까지 총 여덟 명이 참석해 취재진에게 답변을 전달했다. 영화에서 감독을 제외한 일곱 명의 배우는 기능적으로 역할하는 것 없이 저마다의 색과 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정지우 감독은 “여러 캐릭터가 생생히 움직이길 바랐다”라며, “연출자 입장에서 첫 번째 목표는 재능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을 모으는 것이었다”라는 말과 함께 동석한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씩 열거했다.

이어 그는 배우들의 갈 길을 뒤따라가면서 그 상태를 맘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밝혔다. “열렬하고 강렬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연출이) 재밌었다.”

1999년 개봉작 ‘해피엔드’를 통해 조우했던 최민식과 정지우 감독. 두 사람은 정확히 18년 만에 ‘침묵’으로써 재회했다. 정지우 감독은 “함께 작품을 다시 하면서 아주 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상태가 됐다. 기분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어떤 남자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그 기운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디렉션을 주는 것 아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여러 가지를 정리했다”라고 약 스무 해에 달하는 기다림 후의 재회를 회상했다.


‘침묵’ 언론시사회 현장은 최민식의 말 잔치였다. 그가 재미를 불러 모으는 말을 전달했거나, 선배로서 거창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듯한 그의 언(言)은 현장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석규 주연의 영화 ‘프리즌’ 언론시사회에서도 느꼈던 바 있다. 대배우는 연기뿐 아니라 그의 말로써도 입지를 증명해냈다.

최민식의 말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부터 시작됐다. 최민식은 마이크를 들며 “제목이 일단 60, 70년대 단편 소설 제목 같지 않은가? 답답하면서, 캄캄하면서, 조용하면서. 상투적인 느낌의 제목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솔직히 어떠한 선입견도 드리고 싶지 않다”라고 관전 포인트의 제시를 거부한 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좋은 영화가 더 많았다. 이 가을에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극장 한번 오셔서 ‘침묵’ 관람 후 담소 거리가 많이 생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충무로 신예 배우들은 대배우 최민식과의 연기 호흡을 묻는 질문에 감탄과 칭찬을 늘어놓았다. 박신혜가 최민식과의 연기를 꿈에서만 그리던 상황이라고 표현하자 이하늬를 비롯한 모두는 “나도”라며 자신 역시 최민식과의 연기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민식은 “낯간지러워서 못 듣겠다”라며, “제작발표회나 언론시사회를 하면 서로 각자 덕담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정말 나는 이번에 아우님들의 덕을 많이 봤다”라고 운을 뗐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내 대사 중에 ‘이 세상 절대 혼자는 못 삽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야 말로 서로 돕고, 의지하고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으면 이런 작품이 도저히 어우러질 수가 없다. 똑똑하고, 아주 영리하면서 매력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우리 아우들과 호흡한 것이 나로서는 정말 큰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의 덕이 아주 컸다.” 빈말로 다가오지 않는 대배우의 후배를 향한 감탄이었다.

최민식은 ‘침묵’에서 세상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을 연기했다. 세상을 다 가졌다는 말은 아마 돈이 많다는 것으로 치환될 수 있을 테다. 그는 임태산이 전(錢)에 집착하는 면을 관객이 씁쓸하고 유머러스하게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어필이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임태산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 피눈물 흘리게 하고 그 자리까지 갔을까.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성공을 위해 질주하던 남자가 자기의 소중한 사람을 잃고,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마저 살인범으로 내몰리게 되는 처지의 위기에 비로소 헛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박신혜는 임미라(이수경)의 결백을 믿는 신념 있는 변호사 최희정을 표현했다. 그가 연기하는 변호사는 어딘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큰 예승 역이 떠오른다. “‘7번방의 선물’ 예승이는 정식 변호사가 아니었다. 사법연수생의 모의 법정 상황이었다. ‘7번방의 선물’이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라면, 이번 희정이는 다른 진실인 것 같다.”

류준열은 사건의 키를 쥔 유일한 목격자 김동명을 그려냈다. 사건 당일 CCTV를 갖고 있는 유나(이하늬)의 열혈 팬으로 등장하는 그는 스타에게 집중한 나머지 범법도 서슴지 않는 도가 지나친 인물이다. 류준열은 “뭐든 연기를 준비하면서 배역의 레퍼런스가 있기 마련인데, 나 같은 경우는 작지만 출발을 나에서 하려고 했다. 박지성 선수의 팬을 자처했고, 현재는 손흥민 선수의 팬이다. 그런 감정을 많이 갖고 연기했다.”


‘침묵’은 이하늬를 재발견하는 영화다. 사실 그의 재발견은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전’에서 이뤄졌던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크린에서 그 발견이 이뤄졌다.

그는 임태산의 약혼녀이자 인기 가수 유나 역을 맡았다. 과도한 감정 신에서는 영화 ‘타짜-신의 손’이 떠오르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최민식과의 감정 연기다. 극중 김동명은 임태산에게 유나와의 사랑을 추하다고 표현했다. 정말 노년과 젊음의 사랑은 추한 것일까. 의문을 제치게 하는 한 신이 ‘침묵’에서 나온다. 관객은 그 한 신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민식은 이하늬의 연기를 두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뭐라고 그래야 할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려도 있었고,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국악을 해서 그런지 표피적으로 느끼는 아픔이 아니라 진짜 아픔을 아는 거 같더라. 그런 점이 느껴지는 순간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더불어 그는 “어떤 알량한 잔재주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라며, 이하늬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언론시사회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최민식은 “이렇게 또 영화 한 편 가지고 이 스산한 가을날 만나게 됐다”라고 입을 연 뒤, “가을하고 어울리는 영화 같지 않은가? 이렇게 또 이유가 생긴다.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이라며 ‘침묵’에 가을이 가지고 있는 쓸쓸함과 소주가 가지고 있는 쌉쌀함을 연관시켰다. 기자가 만난 ‘침묵’은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영화였다. 이 가운데 임태산에게 찾아드는 부정과 로맨스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메인 포스터의 문구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알아야겠어’지만, 티저 포스터의 문구는 ‘가장 완벽한 날, 모든 것을 잃었다’이다. ‘침묵’은 범인을 찾는 것만큼,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마음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더 중요한 작품이다.

한편, 영화 ‘침묵’은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다. 11월2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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