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채림 기자]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 이후 해마다 두 작품을 선보였다는 그. 인생에 쉬운 길은 없다지만, 설령 쉬운 길이 있더라도 연기를 위해서라면 어려운 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배우 박희정을 만났다.
다양한 연극 무대 경험으로 묵묵히 연기력을 쌓아온 그는 영화 ‘써니’에서 천우희의 오른팔 역할을 맡으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어 2013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주연 윤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남다른 연기 열정을 보여줬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는 듯했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정인 삭발까지 감행했던 그는 작품에 필요한 장면이라면 어떤 연기든 선보일 자신이 있다고 전하며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찬찬히 읊조렸다.
Q. 화보 촬영 소감
화보 촬영을 한 번도 안 해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재미있었다. 분위기가 참 좋았고 스타일링과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 좋았다.
Q. 근황
현재 국립극단 ‘젊은 연출가전’에 올라가는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 막바지 연습 단계며 공연은 11월부터.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하고 있다.
Q. 지난해 인터뷰에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기본을 다시 배우고 싶다고 했었는데, 올 한해 어떻게 보내왔는지 궁금하다.
서른을 맞이하게 된 올해 초 ‘기본으로 돌아가 공연 세 작품을 하는 것’을 목표로 뒀었다. 이번 작품이 세 번째 작품이라 어느 정도 목표는 이룬 것 같다.
Q. 장르 중 연극을 가장 좋아한다고
학교를 다녔던 시간, 영화 작업을 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참여했다. 한 해에 두 작품씩은 했던 것 같다.
Q. 자신의 성격과 가장 비슷했던 캐릭터
아직은 만나본 적 없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지만, 잘 해낼 수 있는 배역을 만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나야’라는 작품은 없었다. 평소 성격이 밝은 편인데 대부분 어둡고 무거운 역할을 맡아왔다.
예를 들면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 씨가 했던 역할. 발랄하면서도 강단이 있지 않나. 그런 분위기의 성격인 것 같다. 가장 하고 싶은 캐릭터다.
Q. 영화 ‘아가씨’처럼 노출 연기도 필요한 캐릭터라면?
영화 속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라면 당연히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주로 연기 조언은 누구에게 듣는 편?
두 분이 있다. 연기 조언이라기보다는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나누는 사람은 배우 천우희. 한 살 연상이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운 언니다. 생각이 좁아질 때 언니에게 의견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또 한 분은 연극계 선배님 중에 계신다. 서른 살을 앞두며 계획을 세울 때도 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Q.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배경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 순으로 나열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사물놀이를 오래 했었고, 축제 사회나 응원단장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연기 학원 한 번 안 다녀보고 담임 선생님과 드라마 대사를 연습한 뒤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치른 게 전부였다.
Q.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고. 그 끼는 누구를 닮았나
아빠가 굉장히 유쾌하고 코믹하시다.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실 정도로. (웃음)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Q. 박희정에게 가족이란
점점 책임감이 많이 생기는 나이인 것 같다. 내 삶의 전부면서도 때로는 가족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나의 행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그런 것들이 힘들 때도 있지만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평소 드라마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가족들이 드라마 출연을 바라더라. 그래서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이번 연극을 마치면 매체 쪽으로 눈을 돌려 다양하게 도전해볼 생각이다.
Q. 최근 타임슬립, 타임리프 관련 작품이 많은데, 실제 가능하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두 가지의 시점이 있다. 예술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전,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배움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 한 시점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찍기 전. 준비가 되기 전에 만난 작품이라 아쉬움이 크다.
Q. 취미
주로 영화를 본다. 독립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해 골고루 챙겨보는 편.
Q. 가장 자신 있는 것
장구. (웃음)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걸 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교 때부터 6년 정도 사물놀이를 했다. 학교 사물 놀이반이 유명했고, 집 근처에 유명한 분의 국악원이 있어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중학교 때도 사물 놀이반에 들어가 대회 출전도 많이 했다.
Q. 기억에 남는 배우
전전 작품에서 공연을 함께 했었던 하성광 선배님. 연극계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다. 같이 호흡을 맞춰 연기하진 않았지만 선배님이 연극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랜 경력에도 극장에 가장 먼저 오셔서 현장은 물론 배우들의 스케줄까지 꼼꼼히 체크한다. 독일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발음만 외우시지 않더라.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확인하며 연습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존경스러운 분이다.
Q. 롤모델
김해숙 선생님. 나이가 조금 있으시지만 보통의 여배우는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적든 많든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고, 대우를 받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데 선배님께서는 역할을 위해서라면 민낯 공개도 서슴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시는데, 그 열정과 탄탄한 연기력이 너무 멋지다.
선배님의 연기는 진짜 같다. 또 여배우 중에 영화와 드라마를 자연스레 오가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선배님은 어느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선배님처럼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Q. 호흡을 맞추고 싶은 남녀 배우
영화 데뷔작인 ‘써니’에서 천우희 언니의 오른팔로 출연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니와 정식으로 파트너가 돼서 여자 영화, 여자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Q. 지금도 천우희 씨와 연락하는지
‘써니’에 라디오 DJ로 출연했던 은수라는 친구, 우희 언니와 셋이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낸다.
Q. 꼭 출연해보고 싶은 장르물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누군가의 딸, 학생 역을 많이 해왔는데 이제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또 오해영’ 속 오해영 역할이랄까.
Q. 연애관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려서 편한 사람이 좋다. 외적인 부분이나 성격 면에서 남자다운 사람, 다정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적으로 혼자 서있는 느낌이라 연애에 있어서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댈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았으면 좋겠다.
Q. 결혼은 언제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서른다섯 안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참 좋아하지만 아직도 사랑보다는 일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연애만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망설여진다.
Q.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분과의 연애는 어떤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잘 못 느낀다.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것도 별로고 평소 질투가 많아 내 남자가 매력을 파는 직업인 배우를 한다는 것도 싫을 것 같다. 같은 예술 계통에 있는 분은 좋다. 새로운 것,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능한 분들에게 끌리는 것 같다.
Q. 연말 계획
‘앓이’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스물아홉부터 서른까지의 2년이 조금 힘들었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서른춘기’도 다 앓았고 내년부터는 한 살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 두 달 간 생각을 비워내고 싶다.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 마음이 지칠 때가 많다.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싶다. 이번에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인데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기로 그런 부분을 극복하고 싶다. 얼마 전 처음으로 ‘혼밥’을 하게 됐는데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웃음)
Q. 꼭 이루고 싶은 꿈
배우로서는 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아보는 것. 모든 사람들의 꿈이지 않을까. 내 이름만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것이 포괄적인 꿈이다. 말과 행동 모두 잘 들어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그런 부분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요즘 인생의 좌우명이 바뀌었다. 올해 어떠한 영향을 받아 바뀌었는데 기존 좌우명은 ‘후회 없는 삶을 살자’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후회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 바뀐 좌우명은 ‘중심은 박희정’이다. 막내 생활, 사람들의 시선들로 인해 상대방과 환경에 맞추며 살았는데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나를 흔들리게 하더라.
평소 조언을 구한다는 연극계 선배님께서 얼마 전 ‘중심은 너야’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마음에 콱 박히더라.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주고 싶다. 언제든 중심은 여러분들이라고. 중심을 나에게 두고 생각하면 많은 일들이 편안해지는 것 같더라.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내가 주변에 조언을 들으며 좋은 영향을 받는 만큼,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게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칸에서의 여우주연상보다 더 값진 거라 생각한다.
우희 언니가 지금처럼 잘 되기 전부터 참 멋있는 언니라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인기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우희 언니와의 친분을 이야기하는 게 쑥스러울 때가 있다. 언니가 유명하다는 이유로 언니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에디터: 마채림
포토: 김병찬
아이웨어: 프론트(Front)
슈즈: 섀도우무브(SHADOWMOVE)
헤어: VT101 미림 실장
메이크업: VT101 서울 실장
스타일리스트: 구본영 실장, 나나 어시스턴트
장소: 파티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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