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리정원’ 문근영, 마음을 터치하기까지

입력 2017-11-01 17:05   수정 2017-11-01 18:08


[임현주 기자] “치유, 위안, 온기, 힐링”

시사회에 이어 인터뷰 장에서 만난 배우 문근영의 코끝은 여전히 빨갰고, 눈가 역시 촉촉했다. 이번 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 속 재연이를 연기하면서 치유와 위안이 됐다는 문근영. 촬영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내내 울컥하면서도 부끄러운 웃음을 지었다가 행복해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재연이는 치유를 받는 것도 아니었고 받지도 못했어요. 다만 유리정원에 있었던 게 치유의 한 과정이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감히 치유라는 단어를 썼던 건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 위안이 됐기 때문이에요. 촬영했을 때 좋았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그때가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또 원래 자연을 좋아했는데 촬영지가 숲이라서 더 좋았어요. 나무 냄새랑 숲에서 나는 소리랑 분위기가 정말 힐링됐었죠.”

어떤 장면이 문근영의 마음을 울렸을까. 이에 문근영은 “영화 속 지훈이(김태훈)가 재연이 손을 잡더니 ‘손이 참 따뜻하네요’라고 말해요.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재연이는 계속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었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와서 온기라고? 하면서 원망도 들고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재연이가 숲으로 들어가잖아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나는 순간 정말 슬프겠지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좋은 순간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저에게도 위로가 됐던 장면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유리정원’의 배경이자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곳인 숲. 이 공간이 내뿜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참 매력적이다. 그 속에서 순수했던 재연이가 현실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좌절을 맛보고 겪는 슬픔과 분노, 열망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다 토해낸다. 대사보다 눈빛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와 관련해 문근영은 “다른 배우들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매번 연기를 하다보면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어요. 이런 점에서 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재연이를 눈으로만 표현하려 할까봐 적당히 주고 싶었어요”라며 과함에서 나오는 부자연스러움을 경계했다.

더불어 문근영은 “재연이를 순수와 광기로 구분 짓지 않았어요. 이 친구가 어떤 상처를 가졌고 어떻게 치유해가려고 했는지 그 감정만 생각했죠. 고민이 많이 됐어요. 재연이의 감정을 잘 표현해내고 싶은데 뭐가 맞는지 모르니까 힘들었죠”라며 그럴 때마다 신수원 감독과의 대화가 고민해결의 방법이었다고 전했다.


영화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넘은 지금, 문근영은 아직 재연이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이에 문근영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재연이와 자신을 아직은 구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데뷔한 지 18년차가 된 배우에게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네가 그 캐릭터라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연기하면서 항상 곱씹으며 의식하려고 해요. 연기한 인물에 이입되는 순간 배우로서 인생과 삶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에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방해였을 터. 이 같은 고정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애썼을 것 같은데 이에 문근영은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게 싫었던 적도 있고 좋았던 적도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 타이틀이 저에게 많은 고민들을 불러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을 인정하면서부터 편해졌어요. 그전까지는 그 이미지를 바꾸고 벗어나려고만 했었거든요. 건강하지 못한 에너지였죠. 그걸로 제가 배우로서 가고 싶은 길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니까 좋은 것은 좋은 거라 생각하면서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죠.”


이번 작품 속 재연이에게 위안이 됐던 유리정원. 문근영에게도 유리정원 같은 공간이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를 믿어주는 분들과 함께 시간 보낼 때 정말 행복해요. 드라이브하고 수다도 떨고 엄마랑 여행도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가끔 술도 먹고 그런 소소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다보면 많이 치유가 되더라고요. 예전엔 몰랐던 일들이죠.”

인터뷰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기자는 ‘유리정원’이 배우 문근영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물었다. 이에 그는 꼭 말하고 싶었던 질문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유리정원’은 저에게 되게 특별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역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길들 중 지나갔던 하나의 작품으로 특별하지 않게 존재했으면 좋겠어요”라 전했다.

요새 나날이 고민이 늘어가는 게 고민이라는 문근영. 그 고민의 근원은 언제나 연기다. 좋아서 시작한 연기로 사람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 이번 영화 ‘유리정원’이 문근영의 바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고대한다.(사진제공: 올댓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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