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신과함께’, ‘쉬리’가 되지 못한 ‘신밧드의 모험’

입력 2017-12-23 09:00   수정 2018-01-28 18:18


[김영재 기자] 20일 ‘신과함께-죄와 벌’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신과함께-죄와 벌’은? 물론, ‘스포’는 없다.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을 보면 지난 1999년 겨울 개봉한 ‘쉬리’가 생각난다. 총제작비 30억 원으로 순수익만 110억 원을 벌어들인 ‘쉬리’는 흥행과 거리가 먼 방화(邦畫)인 한국 영화를 대중성 갖춘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일궈냈다. ‘쉬리 에라(Era)’. 과거 기자는 ‘시간위의 집’으로 스크린 컴백한 배우 김윤진에게 현재의 영화계는 ‘쉬리 에라’라고 강조했던 바 있다. ‘쉬리’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는 여전히 방화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꽃피운 자신감은 이후 100억이 넘게 투입됐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후 꺾이는 듯했다. 그러나 충무로는 전진했다. 제작비 150억 원의 ‘태풍’, 170억 원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80억 원의 ‘마이웨이’, 438억 원의 ‘설국열차’ 등 규모를 갖춘 영화가 계속 제작됐다. 이에 관객도 응답했다. 한국 영화 연간 관객수는 2012년부터 5년 연속 1억 명을 돌파했다. 2017년 역시 달성이 확실해 보인다.

‘신과함께-죄와 벌’의 홍보사에 제작비와 손익분기점(BEP)을 물었다. ‘제작비-2편을 합쳐서 총제작비 400억 원, 손익분기점-1편 600만 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한 나열이지만 동시에 ‘신과함께-죄와 벌’의 명쾌한 요약이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신과함께’를 은막으로 옮긴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투자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승부수를 띄웠다. ‘설국열차’의 경우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한 다수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해 해외 판매가 용이했던 것이 사실. 이 가운데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하정우, 주지훈 등 국내 배우 일색에도 불구 엇비슷한 규모의 4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두 편을 동시에 촬영했다. 두 편을 동시에 제작하는 것은 한국 영화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주연을 맡은 하정우는 언론시사회 이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영화 한 편당 제작비는 “엄밀히 말하면 175억 원”이라고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1편 흥행에 따라서 2편 흥행이 가늠되는 것이 현실이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175억 원의 영화가 아닌 400억 원의 영화다. 이런 숫자는 그 당시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자한 ‘쉬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아이를 안고 수십 층 아래 구조 매트로 뛰어내린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앞에 나타난 월직차사 덕춘(김향기)은 김자홍을 귀인(貴人)이라고 추켜세우지만, 김자홍은 귀인이 아니라며 명예로운 호칭을 거부한다. 덕춘 외에도 리더이자 변호사 강림(하정우), 일직차사 해원맥(주지훈)이 김자홍이 저승에서 성공적으로 재판을 치룰 수 있도록 돕는다. 과연 귀인 김자홍은 환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종으로, 또 횡으로 활보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놀이 기구를 눈으로 타는 듯한 기분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옥도와 궁서체가 가득한 오프닝의 고루한 분위기가 금세 전환된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자면 ‘가성비’가 좋은 VFX(시각적 특수 효과)는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신과함께-죄와 벌’의 제작에 앞서 가장 큰 우려가 웹툰의 현실화를 돕는 VFX였던 것을 돌이켜보면 우선 절반의 성공이다.

놀이 기구에 초점을 맞추자면 ‘신과함께-죄와 벌’은 마치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과 유사한 작품이다. ‘신밧드의 모험’은 총 일곱 번의 항해를 떠난 ‘천일야화’의 선원 신밧드처럼 배에 몸을 실고 가상의 모험을 떠나는 놀이기구다. 탑승객은 머리가 세 개 달린 불을 뿜는 용과, 사나운 해적 등 각종 위기를 지나 공주를 구한다.

‘신밧드의 모험’의 승객처럼 관객 역시 김자홍 및 삼차사와 함께 저승으로의 모험을 떠난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판타지의 탈을 쓴 법정물이다. 살인지옥, 나태지옥, 거짓지옥, 불의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천륜지옥. 총 일곱 개의 지옥은 동시에 일곱 개의 법정이기도 하다. 신밧드가 되어 난관을 뚫고 지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다수처럼 스크린 앞의 관객은 변호사 강림에게 몰입해 김자홍이 무죄를 선고받는 데 집중한다. 거짓지옥 태산대왕(김수안) 앞에서 강림과 덕춘이 김자홍을 변호하는 장면은 놓치지 말아야 할 나름의 명장면이다.

이 밖에도 씨줄과 날줄을 엮은 것처럼 원작 저승 편의 두 이야기를 하나로 합친 김용화 감독의 각색은 ‘신과함께-죄와 벌’이 흥행한다면 필히 주목받아야 할 첫째 요소다.

그러나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을 보면 ‘굳이 웹툰 ‘신과함께’를 스크린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신과함께-죄와 벌’에는 원작의 향(香)이 없다. 회사원 김자홍과 유성연 병장은 김용화의 마술로 피를 나누었고, 변호사 진기한과 강림은 하나가 됐지만, 인물간의 소통과 소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정우는 “감독의 방향이 거대한 스펙터클 어드벤처 무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원작이든 영화든 저승의 존재로 현재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둘의 감정은 다르다.

그 증거가 언론시사회 이후 다수 쏟아지고 있는 신파에 대한 지적이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제작사 대표와 배우 모두가 “연말에 가족과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말로 작품을 소개 중이다. 더불어 중장년층의 선호 요소인 신파까지. 영화의 신파는 분명 원작의 한 부분이지만 김용화 감독은 그것의 부피를 한껏 키웠다. 기자 옆자리 관객 또한 해당 신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김용화 감독만의 감정적 연출은 인정한다. 하지만 도식적이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세련된 영화다. 모 난 구석이 없다. 그렇기에 신파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호민 작가의 그림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족할 수도 있는 그의 그림 속 인물 및 배경 묘사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극에 진정성을 더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하정우의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생활 연기의 선두 주자인 그가 판타지물인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활약한 면은 크게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무언가 보여줄 것이란 무게감은 이 400억 대작의 중심을 바로잡는다. 원작의 덕춘이 환생한 듯한 김향기는 그의 발랄한 매력으로 상큼함을 보탠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감춰온 연기력까지 뽐낸다. 한 토크쇼에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처럼 연기하는 것이 연기 방식이었다고 밝힌 차태현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견우를 표현한다. 아픈 가족사를 지닌 소방관 견우다.

‘신밧드의 모험’의 끝에서 탑승객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잠깐의 몰입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신과함께-죄와 벌’의 끝에서 아마 관객은 저승 대신 어드벤처와 용서를 느낄 것이다. 더불어 저승을 향한 후회와 반성은 미약할 테다. 그러나 중요하진 않다. ‘신과함께-죄와 벌’은 가족과 함께 연말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니까. ‘신과함께 에라(Era)’는 아득히 멀어 보인다. 그때부터 18년이 지났지만 2017년 겨울은 여전히 ‘쉬리 에라’다. 20일 개봉. 12세 관람가.(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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