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염력’ 연상호의 두 얼굴

입력 2018-02-03 09:00   수정 2018-02-09 23:38


[김영재 기자] 1월31일 ‘염력’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염력’은? 물론, ‘스포’는 없다.

“노숙인 여러분들 조용히 좀 하세요. 네?” 영화 ‘부산행’ 프리퀄로 주목 받은 ‘서울역’. 주인공 혜선(심은경)은 서울역 안내 방송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소란의 이유인 좀비를 맞닥뜨린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혜선의 옆에 놓인 한 광고판은 신도시를 홍보 중이다. ‘꿈의 신도시!!! 용산 아파트 분양 시작!!’ 단순 배경인 줄 알았다. 무의미한 현실 복사인 줄 알았다.

지난 2009년 1월20일 서울시 용산구 한 건물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사건(이하 용산 참사)’. 건물에서는 재개발 사업 보상 문제로 철거민 다수가 농성 중이었다. 경찰의 강제 진압 속에 전국 철거민 연합 회원 3명, 철거민 2명,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24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제 용산4구역에는 고급 주상 복합이 들어선다. 건물 분양은 지난해 7월 끝났다.

‘서울역’의 마지막 공간은 서울역이 아닌 아파트 모델 하우스였다. 세 주인공의 소원, 욕망, 용기가 끝난 곳마저 도시 재개발의 한 갈래인 것. 이를 보면 연상호 감독은 ‘용산 참사’에 큰 끌림을 느낀 듯하다. 하지만 영화 ‘염력’ 언론시사회에서 연상호 감독은 ‘공동정범’을 언급하며 그날과 작품의 연계를 부정했다. 대신 “재개발이란 보편적 시스템의 문제와 인간적 히어로와의 대결을 그렸다”라고 했다.

치킨집 사장 신루미는 방송사도 주목하는 ‘청년천왕’이다. 그의 매운맛 치킨을 맛보기 위해 손님들은 줄 서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지역 재개발 사업권을 따낸 태산 건설은 용역 업체를 동원한다. 협박 및 폭력을 일삼는 회사에 맞서 철거민은 단체 행동에 나선다. 하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홍상무(정유미)와 민사장(김민재). 이때 신루미의 아버지 신석헌(류승룡)이 나타난다. 신석헌은 때마침 얻은 염동력을 무기로 “아빠 노릇”에 도전한다.

2016년 누적 관객수 약 1156만 명을 기록한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연상호 감독은 ‘천만 감독’ 반열에 올랐다. 인기 요인은 그간 한국 상업 영화에서 크게 다뤄졌던 바 없는 좀비의 존재였다. 하지만 ‘부산행’과 좀비는 연상호 감독의 전부가 아니다. 양념으로 소모된 부산행 KTX 안의 적나라한 인간 군상이 그의 장기다.

연상호 감독은 첫 실사 영화 ‘부산행’ 이전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다. ‘돼지의 왕’은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사이비’는 ‘시체스영화제’에서 최고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다. 전자는 학교 폭력 가운데 인간을 돼지와 개에 비유하는 극단성이, 후자는 나쁜 놈 김민철(양익준)만이 사이비 종교의 진실을 좇는 역설이 눈길을 끌었다. 뉴스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부담을 안기는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 가상일지라도 연상호 감독은 그 이면을 집요히 파고들었다.

‘부산행’을 향한 평단의 아쉬움은 그래서 컸다. 타인을 배척하는 천리마 고속 용석(김의성)의 이기주의는 관객의 공분을 모았다. “꼬마야.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된다.” 노숙자(최귀화)를 향한 용석의 질타는 어떤 면의 풍자였다. 그러나 단편적이었다. 조소나 잠깐의 고민을 안길 뿐이었다. 총제작비 115억 원의 상업 영화에서 독립 영화만이 가능한 메시지를 찾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연상호 감독의 사회 비판이 상업성에 매몰되는 일은 안타까움을 모았다.

언론시사회 말미 배우 심은경은 “연상호 월드를 같이 즐기셨으면 좋겠다”라고 감독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말 ‘염력’은 지금껏 공개된 연상호 감독 모든 것의 집약체다. ‘권리금’ ‘화염병’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극중 재개발은 ‘용산 참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거리낌 없던 ‘사이비’ 등을 회상케 한다. 철거민에게 “애들 싸움도 아니고 이게 이길 수 있는 싸움 같냐?”라고 호통 치는 신석헌에게서는 ‘부산행’ 용석이 보인다. 상가 방벽에서는 ‘서울역’을 느낄 수 있다.

배우 정유미가 연기한 홍상무는 말한다. 진짜 능력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의 출신이라고. 대한민국이 능력인 사람 앞에서 그 밖의 다수는 노예일 뿐이라고. ‘돼지의 왕’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김철(김혜나)은 “돼지는 살면서 자기 살을 찌우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살들은 그들(개)의 먹이로서 존재한다”라고 개돼지 론(論)을 펼친다. 개인이 사회의 부속품으로 무시되는 현실을 꼬집는 감독의 시선은 2011년에도, 2018년에도 동일하다.

줄곧 스릴러 장르와 사회 문제를 함께 다뤄온 연상호 감독. 이번작에서는 블랙 코미디에 도전했다. 에디슨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전파상 주인이 됐을 것이란 우스갯소리는 신조어 ‘헬조선(Hell朝鮮)’을 요약하는 한 줄이다. 초능력자 신석헌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란 설정은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다. 박재인 및 전영 안무가의 좀비 동작과, 배우 공유의 신파를 남긴 ‘부산행’보단 더 연상호스럽다.

다만 2018년 연상호 월드는 복싱의 잽을 던질 뿐 과거의 한 방이 없다. 관객을 녹다운시킬 수 있는 카운터 펀치 혹은 어퍼컷이 없는 것. 앞서 언급한 ‘부산행’의 어불성설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순간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 아버지와 딸의 화해, ‘용산 참사’의 비극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이에 관객은 흥미를 느끼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블랙 코미디는 희석된다.

물과 기름을 결속시키는 힘은 배우 정유미에게서 나온다. “홍상무 캐릭터를 정유미 배우가 해줘서 영화가 활력을 가진 것 같다”란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홍상무는 ‘염력’의 신스틸러이자 구심점이다. ‘부산행’ 성경 역부터 연상호 감독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정유미는 최근 한 리얼리티 예능을 통해 ‘윰블리’란 별명을 얻었다. 주로 선역만 맡아온 이가 악역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환호와 아유. 정유미의 악역은 후자를 이끌어냈다. ‘윰블리’가 가식으로 느껴질 정도다.

류승룡의 코미디 연기도 주목이 필요하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7번방의 선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익살스러움이 강조된 다수 광고의 출연으로 심각한 이미지 소비를 겪었던 바 있다. 이와 관련 류승룡은 “15초의 예술이자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지점을 몰랐다”라고 했다. 아마 ‘염력’이 몇 해 일찍 제작된 영화였다면 관객은 배우의 코미디 연기에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비자발적 휴지기는 다시금 류승룡의 연기가 웃음을 머금도록 도왔다.

연상호 월드를 언급한 심은경에게 ‘염력’의 아쉬운 점을 꺼냈다. ‘사이비’ 등과 비교되는 ‘염력’의 덜 사회적인 면을 연상호 감독의 팬이자 배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그는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색깔이 다른 것이 감독님만의 또 다른 작품 세계”라고 답했다. 아마 연상호 감독을 향한 어불성설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다. 이는 왼쪽과 오른쪽 모두가 연상호 감독이기에 생겨날 당연한 결과다. 마침 ‘염력’이 개봉한 1월의 어원이 야누스란다. 연출가로서 야누스의 면모를 갖춘 그가 야누스의 달에 관객과 만난 것. 재밌는 우연이다. 1월31일 개봉. 15세 관람가.(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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