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처럼 배터리도 재생 시대 온다
전기로 구동하는 자동차는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기준과 통계가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전력 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발전소가 대신 내뿜거나 원자력에 의존한 발전은 폐기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아 친환경이 아니라는 주장을 포함해 에너지 전환 효율을 고려할 때 전기차 효율이 내연기관보다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학자는 꽤 많다. 반면 발전소 집진 시설 등을 감안하면 전기차가 내연기관 대비 월등히 환경친화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그럼에도 양측의 주장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미 발표된 여러 기준 가운데 필요한 것만 모아 논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인류가 전기 구동을 주목한 것은 이른바 전기 에너지의 다양한 공급원(resource) 때문이다. 엔진 연소에 필요한 화학에너지는 땅 속의 한정된(?) 자원이 기반인 반면 전기는 현재도 다양한 방법으로 얻고 있어서다. 그 가운데 석탄을 태우지 않고도, 핵반응을 일으키지 않고도 자연에서 전기를 충분히 얻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비록 현재는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5%에 이르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원가 경쟁력이 확보되고, 낭비 없는 똑똑한(?) 공급(스마트 그리드)이 실현되면 이동 에너지원으로서 전기는 매력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이동 수단에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은 내연기관의 연료탱크에 해당되는 배터리에 전력을 담는 게 유일하다. 차의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바꿔 직접 전력을 얻는 노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배터리에 에너지를 저장, 구동이 필요할 때 꺼내 쓴다. 그런데 내연기관의 연료를 담는 연료탱크와 달리 배터리 또한 지하 자원을 필요로 한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이들 자원 기반의 배터리는 수명도 존재한다. 기름 탱크와 달리 전기차 배터리는 일정 기간 사용하면 저장 공간이 점차 줄어든다. 물론 전력 잔량에 따라 충방전 수명이 다른 만큼 폐차 때까지 문제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폐배터리 처리 문제다.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의 연료탱크는 기름 제거 후 고철로 녹여 다른 철강 제품으로 전환되는 반면 전기차 배터리는 1차적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reuse)되고, 이후 쓸모가 없어지면 내부 소재를 추출하는 폐기 과정을 밟게 된다. 당연히 이 때는 고도의 높은 기술과 까다로운 공정이 전제된다. 따라서 폐기에도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배터리의 수명 연장이다.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를 분해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용도 전환을 하지 않고 그냥 자동차에 다시 쓸 수 있도록 성능을 간단하게 높이는 방법이다. 당연히 배터리 제조사는 반대하겠지만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가 바로 사용 후 배터리의 재생 방안이다. 쉽게 보면 프린터 잉크가 떨어지면 잉크만 다시 넣어 쓰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새 배터리의 성능이 '100'이라고 했을 때 재생 배터리의 성능 수준이 98%에 육박하고, 수명은 다시 10년 이상 늘리는 식이다. 전기차의 다른 부품 내구성에 문제만 없다면 전기차 구매 후 30~40년 동안 배터리 문제 없이 운행이 가능하고, 전력을 나르는 운반의 활용성 또한 높아지게 된다.
물론 재생 배터리의 등장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배터리 제조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고, 전기차 교체 시간을 늘려 자동차회사의 시장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이 전기차로 바뀐다는 전제라면 당장 이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여전히 연간 1억대 내외의 내연기관차가 판매되는 중이며, 이미 땅 위를 오가는 자동차만 13억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배터리 재생 기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미국 내 기술 스타트업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전해지는 중이다. 이들의 목표는 '새 차=새 배터리', '중고차=재생 배터리'다. 처음 생산돼 나오는 새 차에는 새 배터리가 당연하지만 3년 또는 5년 후 중고차로 거래될 때는 사용하던 배터리를 재생해 넣는다는 복안이다. 배터리 수명으로 1회 충전 후 주행 거리가 짧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이동 수단의 '전기화(Electrification)'가 4차 산업 혁명의 대표로 여겨지는 것도 이 같은 새로운 기술 산업의 등장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이동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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