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3월 극장가의 덫 ‘치즈인더트랩’

입력 2018-03-17 09:00  


[김영재 기자] 3월14일 ‘치즈인더트랩’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치즈인더트랩’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1.9/5)

영화는 영화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장훈 감독은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기자는 문제의 한 줄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영화는 영화다. 그렇기에 영화는 영화로 완성되어야 한다.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은 약 2시간여의 러닝 타임이 전부다. 다른 매체가 영화에 침투하는 순간 그것은 영화이되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 외의 답은 부정 행위다.

지난해 한국 영화계에는 웹툰 혹은 소설이 원작이라고 밝힌 다수작이 개봉해 극장가를 장식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남한산성’ ‘신과함께-죄와 벌’ 등이 그 주인공. 각각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함께’를 각색한 세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거나 흥행 실패에도 불구 비평 면에서 고평가를 받으며 원작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다.

영화 ‘치즈인더트랩(감독 김제영)’ 역시 원작이 바탕에 있는 작품이다. 순끼 작가가 지난 2010년부터 연재한 동명 웹툰을 은막 위에 옮겼다.

기자는 원작을 읽지 않은 채 ‘치즈인더트랩’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다. ‘남한산성’ ‘신과함께-죄와 벌’ 모두 원작 완독이 줄거리 예측이 가능하다는 실(失)로 다가왔기 때문. 배우 박기웅을 비롯한 출연진 역시 원작에 갇히는 것이 염려되어 웹툰을 안 읽었다고 밝혔으니 원작과 거리를 둔 선택은 어쩌면 반은 맞은 셈이다.

하지만 기자는 영화관을 나서며 혼란에 빠졌다. 혹자의 ‘오연서 화보집’이란 표현처럼 배우 오연서, 박해진의 외양은 빛나다 못해 눈이 부셨다. 그러나 이야기가 흠이었다. 배우 김주혁은 지난해 개봉한 또 하나의 소설 원작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에 관해 “원작이 있어서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따로 쓴 시나리오보다 탄탄한 느낌”이라고 했던 바 있다. 원작이 있으면 줄거리가 탄탄한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럼에도 ‘치즈인더트랩’은 그 상식을 어겼다.

유정(박해진)은 어디를 가나 주목 받는 사람이다. 그의 미소, 말투, 친절함은 모두를 웃게 만든다. 하지만 홍설(오연서)에게 유정은 수상쩍은 선배다. 1년 전 유정과 현재 유정 사이의 괴리는 홍설이 골머리를 앓는 최대 이유다. 갑자기 밥 먹자고, 공부하자고, 영화 보자고 말 거는 유정이 홍설은 두렵기만 하다. 그런 유정이 홍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수상쩍은 선배가 수상쩍은 행동을 시작했다.”

유정과 홍설의 사랑이 작품의 골자라면 관객이 기대하는 바는 사랑이 시작되는 배경, 이뤄지는 순간, 피치 못할 오해, 안타까운 이별, 안도를 부르는 화해 등이다. 인물의 상세한 설명은 덤이다. 설명은 주변 인물의 대사 몇 줄이 될 수도 있고 역할의 본새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어우러져야 로맨스 영화는 완성된다.

그렇지만 스릴러와 로맨스가 결합된 ‘스릴로맨스’를 표방하는 ‘치즈인더트랩’에는 사랑은 이뤄지는데 배경이 없다. 인물 설명도 없다. 대사 “1년 전과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진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메아리의 이유는 별것 없다. 배경도 설명도 없으니 뇌가 무엇을 놓쳤는지 지금껏 눈으로 포착한 정보를 되뇌는 과정이 곧 메아리다.

도대체 1년 전 유정과 홍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유정은 소시오패스처럼 행동하는지 도무지 영화 내에서는 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답을 몰라도 영화는 완성된다. 세상만사 남녀의 결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갈등을 봉합한다. 그래도 궁금했다. 원작에는 답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각색 범위인 시즌2까지 원작을 완독했다. 시즌1은 총 46화, 시즌2는 총 67화로 구성된 웹툰 ‘치즈인더트랩’. 그 안에는 순끼 작가가 몇 년간 쌓아온 서사와 답이 있었다.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황동혁 감독은 각색상 대신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는 ‘청룡영화상’에는 각색상이 없기 때문이다. 약 40년을 이어온 영화계 축제가 ‘남한산성’에게 각본상을 수여한 사실은 각색이 얼마나 부가적인 면으로 치부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증거다. 그리고 ‘치즈인더트랩’은 각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다. 순끼 작가가 웹툰 특별편에서 언급한, 소위 ‘19금 버전’의 ‘치즈인더트랩’을 김제영 감독은 각색으로 완성시켰다. 자극은 세졌고 관객이 2시간여를 따라갈 수 있는 힘도 생겼다. 그러나 구멍이 숭숭 난 치즈를 먹는 기분이다.

박해진은 인터뷰에서 “원작의 서사를 풀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허윤섭, 공주용, 강아영, 남주연 등이 삭제된 이유다. 주인공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남녀 관계, 인간 관계를 등장인물에 투영한 원작의 장점도 그래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스릴러에 집중한 ‘로맨스릴러’의 바탕은 로맨스다. 유정과 홍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는 순간 박해진과 오연서는 관객의 치즈가 된다. 그리고 영화 ‘치즈인더트랩’은 덫을 뜻하는 트랩이 되어 극장 내 신음 소리에 일조할 테다.

‘굿즈(Goods)’라는 단어가 있다. 아이돌 산업에서 팬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재화를 가리키는 단어다. 사실 기자가 이해하지 못한 ‘치즈인더트랩’의 구멍은 웹툰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미 결말과 전체 구성을 꿰뚫고 있는 팬에게 기자의 의문은 전혀 문제될 수 없는 구멍이다.

영화 ‘치즈인더트랩’은 웹툰 팬을 위한 ‘굿즈’다. 영화 팬을 위한 ‘굿즈’가 아닌 기존 팬을 위한 ‘굿즈’.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로 완성되어야 한다. 총 113화의 웹툰을 읽는 데 약 9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러닝 타임을 포함해 총 11시간을 강요하는 ‘치즈인더트랩’은 3월 극장가의 덫이다.(사진제공: 마운틴무브먼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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