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7년의 밤’ 장동건, 마지막 1990년대 히어로

입력 2018-03-28 11:00   수정 2018-03-29 13:28


[김영재 기자] 3월28일 개봉작 ‘7년의 밤’ 오영제 役

“사슴 같나요 저? (웃음)” 배우 장동건은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살인마 김광일(이종석)의 죄를 감싸주는 국가정보원 박재혁을 연기했다. 박재혁은 체제에 순응할지언정 결국 잔인무도한 소시오패스에게 정의를 실천하는 인물. 칼끝은 약 1년 만에 반대쪽을 향한다. ‘7년의 밤(감독 추창민)’에서 장동건은 복수를 꿈꾸는 지독한 사이코패스를 표현했다.

사이코패스 오영제는 장동건 데뷔 후 첫 악역이다. 3월23일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역할의 첫 등장 신을 언급하며 무표정에 많은 것을 녹여냈다고 밝혔다. 이에 취재진은 평소에는 사슴 같은 눈 아니냐며 그의 눈을 한없이 착해 보이는 사슴 눈망울에 비유했다. “가만히 있어도 무서워 보이게 노력했어요. 표정만으로 되진 않더라고요. 진짜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속으로 ‘나는 나쁜 놈이다’를 되뇌었죠.”

‘7년의 밤’은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7년의 밤’을 스크린 위에 옮긴 작품.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와 그로 인해 딸을 잃은 남자 오영제(장동건)의 7년 전 진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화 추진 전 이미 소설을 읽었어요. 책을 덮으면서 ‘이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영화화 된다면 오영제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나중에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참 신기했어요. 감회가 새로웠죠. ‘운명인가?’라는 생각도 했고요. 다른 작품 제안 받을 때보다 기분이 남달랐어요. 기대와 설렘이 있었습니다.”


장동건은 오영제를 샤프하고, 예민하고, 섬세하고, 섹시하며, 때로는 유머까지 갖춘 사이코패스로 묘사하길 바랐다고. 하지만 추창민 감독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권력자 오영제를 원했다. “괴리감이, 거리감이 많이 있었죠. 결국 제가 설득을 당했고요. 여러 가지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M자 헤어 라인도 그중 하나였죠. 변신을 위한 변신처럼 보이진 않을지 우려했어요. 그런데 거울 앞에 서보니 느낌이 낯설면서 나쁘지 않더라고요.”

대립의 중심에는 소설 ‘7년의 밤’이 있다. ‘7년의 밤’은 책이 출간된 그해 ‘올해의 책’에 선정된 100쇄 돌파 베스트셀러. 그러나 21일 공개된 영화 ‘7년의 밤’은 무리한 각색으로 책의 힘이 바랬다는 걱정을 안겼다. “결국 선택의 문제죠. 방대한 소설 중 어떤 걸 취합해야 할지 고민하는 문제요. 첫 번째 버전을 보면 아예 둘(오영제, 최현수)밖에 안 나와요. 심지어 둘만 나오는 추격자 버전도 있고요. 촬영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개봉 전 편집본이 쿨한 버전이었다면 지금 완성본은 그때보다 조금 더 뜨거워진 버전이에요.”

크랭크 업 날짜는 지난 2016년 5월25일. 개봉까지 약 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늦은 개봉에 관한 심경을 묻자 장동건은 “7년이 안 걸린 것이 다행”이라는 말로 모두를 웃게 했다.

“초조하진 않았어요. 외부에는 문제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론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작품만 생각하는 분이세요. 촬영을 안 하고 있을 때도 오로지 작품 얘기만 하실 정도예요. 감독님께서 더 완성도 있는 영화를 위해 작품을 안 놓고 계셨던 거라고 봤어요. 더 나은 완성도 때문에 시간이 길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기의 결혼 이후 슬하 1남 1녀 자녀를 둔 아빠 장동건은 스스로를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라고 소개했다. 바쁘더라도 하루 중 잠깐은 자녀 얼굴을 보려고 노력한단다. 아이를 통해서 불가항력에 대한 체념을 배운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아빠 장동건 이전에는 블록버스터 배우 장동건이 있었다. 영화 ‘마이 웨이’ ‘워리어스 웨이’ ‘무극’ ‘태풍’ ‘태극기 휘날리며’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이 그 증거다.

“저는 한국 영화가 가장 좋았던 시절 한창 활동한 배우 중 하나예요. 그때는 그런 큰 규모 영화가 많이 제작됐고요. 제안이 왔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배우란 직업은 어쨌든 선택을 받아야 선택권이 생기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배우 장동건 이전에는 TV 스타 장동건이 뭇 여성의 맘을 두드렸다. MBC ‘우리들의 천국’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SBS ‘모델’ 등에 출연하며 그 인기를 공고히 했다. 데뷔 때부터 약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장동건은 만인이 사랑하는 현재 진행형 스타다. “당시 배우 중 정우성 씨나 이정재 씨도 지금 활발히 활동 중이시잖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고요. 부침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면 언젠가 또. 그게 인생 아닐까 싶어요.”

우연히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청년은 1990년대 청춘 스타가 됐다. 혼나지 않기 위해 연기했고, 그래서 그의 20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2000년대에는 한류 스타가 됐다. 그리고 2018년. 분명 과거처럼 블록버스터를 독식하던 절대적 스타는 아니다. 하지만 장동건은 시선으로부터 살짝 비껴난 지금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덤덤히 말했다. 물론 그 바탕에는 ‘7년의 밤’ 외에도 두 편의 주연작 공개를 앞두고 있는 인기 배우의 자신감이 있다.

배우 이정재도, 정우성도 1990년대를 빛낸 현재의 스타다. 그럼에도 장동건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를 부침 없이 걸어온 ‘꾸준한’ 스타다. 더불어 ‘여전히’가 잘 어울리는 이 시대의 스타다. 단어 ‘마지막’에는 시간상이나 순서상의 맨 끝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대개 ‘마지막’이 수식하는 대상은 맨 끝에 위치한 최고 혹은 최후의 하나다.

감히 말하건대 여전히 꾸준한 1990년대 스타라는 점에서 그는 ‘마지막’ 1990년대 히어로가 아닐까. ‘마지막’ 히어로가 생애 첫 악역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3월28일부터 상영 중이다.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90만 명. 순제작비 85억 원.(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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