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4월19일 ‘당신의 부탁’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9/5)
다음은 영화 ‘소공녀’ 측으로부터 받은 보도 자료다.
‘이로써 ‘소공녀’는 (중략) 3주 연속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다양한 외화들의 공세 속에서 한국 독립 영화의 힘을 확인케 하고 있다.’
박스오피스 앞에 자리한 ‘다양성 영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사용했던 바 있는 용어다.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총칭한다. 소규모 제작비, 소규모 배급 및 상영이 특징인 ‘다양성 영화’의 강점은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는 것에 있다.
영화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은 또 하나의 ‘다양성 영화’다. 그리고 이 ‘다양성 영화’가 집중한 소재는 엄마와 가족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는 작품 전반 대신 국소만을 제목에 반영 중이다. ‘당신의 부탁’ 또한 그렇다. 멋스러운 제목 ‘당신의 부탁’은 효진(임수정)의 남편 경수(김태우)가 아내에게 남긴 종욱(윤찬영)을 지칭한다. 하지만 영제 ‘마더스(Mothers)’에 비하면 직관성이 떨어진다. 영제처럼 극에는 수많은 엄마가 등장한다.
어떤 일이든 “오빠 때문은 아니지?”라고 질문 받는 효진. 그는 불의(不意)의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32살 공부방 선생님이다. 효진의 엄마 명자(오미연)는 효진을 만날 때마다 늘 왜 아이 있는 남자와 결혼했냐고 잔소리를 해댄다. 남편의 그림자를 안고 살던 어느 날 시동생 경택(김민재)에게 연락이 온다. 이제 와서 그간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온 경수의 아들 종욱의 엄마가 되어달란다. 효진은 친구 미란(이상희)에게 말한다. “이제 보니까 오빠를 닮은 거 같기도 해.” 계모 효진은 아들 종욱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다양성 영화’로 규정되는 ‘당신의 부탁’에는 여러 유형의 엄마가 손에 잡힐 듯 존재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의붓 엄마, 갓 아이를 낳은 초보 엄마, 한바탕 싸우더라도 결국 항복하는 현실 엄마, 의도치 않게 엄마가 된 고교 엄마가 바로 그들. 각각 배우 임수정, 이상희, 오미연 등이 연기한 ‘마더스’, 즉 엄마들은 관객이 그들과 기억 속 엄마를 비교하게끔 은연 중 유도한다. 그리고 관객은 지금껏 기억하고 있던 엄마를 파괴 받는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한 형태죠. 좁게는 모성, 넓게는 가족의 정의에 대해 배타성을 줄인다면 살아가는 게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동은 감독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당신의 부탁’ 관객과의 대화에서 혈육과 모성의 상관 관계에 관해 이같이 말했다. 상업 영화라면 으레 등장하는 신파성 가족이 ‘당신의 부탁’에는 없다. 대신 옳음과 그름을 떠나 이동은 감독의 주관적 생각은 ‘다양성 영화’가 의당 지녀야 할 주제가 되어 관객에게 물음을 안긴다.
‘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다’를 이동은 감독은 효진의 친구 미란을 통해 구체화시킨다. 극중 효진은 미란의 집을 자주 방문한다. “아따 지랄한다”라는 대사 한 줄로 요약되는 미란은 색깔로 구분하자면 원색에 가까운 인물. 미란의 “니가 앞으로 걔 인생 다 책임져야 하는 거야. 알아?”라는 일갈은 법적 아들 종욱과의 동거를 고민하는 효진에게 관객이 건네고 싶은 일갈이기도 하다. 모진 말을 하는 친구가 싫을 법도 하다. 하지만 친엄마보다 미란을 자주 찾으며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늘어놓는 효진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효진의 엄마는 명자가 아닌 미란이다. 우울한 주인공 옆 늘 활기 넘치는 친구는 뻔한 인물 구성이다. 그럼에도 그 뻔한 구성이 엄마의 무한 나열 속에 가족으로 재구성되는 점이 꽤 재미나다.
배우 임수정은 생애 첫 엄마 연기에 도전한다. 다양성 영화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한 배우는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더 테이블’을 통해 줄곧 그의 다짐을 지켜오고 있다. ‘소공녀’에 출연한 이솜과 마찬가지로 임수정의 참여는 관객이 눈길을 한 번 더 건네는 미끼 역할을 해낸다. 더불어 배우에게는 성장의 좋은 자양분이 된다.
효진 역 연기를 위해 임수정은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로 촬영에 임했다는 후문. 다크 서클이 올라올 때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할 때도, 뾰루지가 났을 때도, 붓기가 가라앉지 않을 때도 임수정은 스케줄 조정은커녕 효진이 됐다고 좋아했단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배우도 모르는 새로운 임수정을 발굴하게 도왔다면, 그의 열다섯 번째 장편 영화 ‘당신의 부탁’은 여전히 성장하고픈 배우의 연기 열망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엄마 임수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주 잠깐 여자 임수정도 등장한다. 진짜 엄마와, 이동은 감독이 정의한 엄마 사이에서 효진은 그를 좋아하는 예비 심리 상담가 정우(한주완)와 잠시간 로맨스를 나눈다. 엄마 영화로 기억될 ‘당신의 부탁’의 쉼표다. 술기운이 도는 목소리로 “마음이 그냥 얻어지는 줄 알아요?” 하는 임수정에게서 관객은 그 순간은 세상 짐을 내려둔 한 여자를 발견한다. 아픔마저 기꺼이 사랑하고픈 한 여자다.
포스터를 보면 각 어절의 첫 글자 ‘당’과 ‘부’가 더 굵고 더 크다. 그래서 ‘당신의 부탁’은 곧 이동은 감독과 임수정의 ‘당부’다. 가끔은 조용하고, 잠잠하며, 담담한 호흡을 따라가야만 할 때도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 ‘당신의 부탁’. 호흡의 끝에서 관객은 그들의 ‘당부’를 어떻게 이해할까. 4월19일 개봉. 15세 관람가.(사진제공: 명필름,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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