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을 겨냥한 ‘버닝’, 이창동이 쓴 이 땅의 ‘젊은이’를 위해 (종합)

입력 2018-05-04 13:58   수정 2018-05-04 18:57


[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버닝’이 프랑스 칸에 간다.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의 기자간담회가 5월4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이창동 감독,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참석했다.

‘버닝’은 ‘제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유일한 한국 영화라는 점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에 기자간담회는 5월16일 ‘칸영화제’에서 열릴 ‘버닝’ 월드 프리미어에 앞서, 24일 제작보고회 때보다 더 심화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로 진행됐다.

‘버닝’은 종수(유아인)가 친구 해미(전종서)에게 정체 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이창동 감독 약 8년 만의 복귀작. ‘칸영화제’의 엠바고 정책 탓에 기자간담회는 시사회 없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취재진은 대감독의 귀환을 반기며 다수의 질문을 쏟아냈다. 먼저 이창동 감독은 8년간의 공백이 그의 작품 세계를 향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묻는 질문에 단어 ‘젊은이’를 언급했다.


그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어떤 영화로 관객을 만나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특히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우선 내 자신도 자식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며 요즘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라며, “젊은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버닝’이 그 결과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버닝’과 현 시대 청춘을 연관시켰다.

이창동 감독은 청춘이 안고 있는 고민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지금 젊은이들은 어쩌면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 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세대일 것 같다. 지금까지 쭉 세상은 발전해오고 앞으로 나아가 왔지만, 이제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라며, “과거에는 자기 현실이 힘들어지는 대상이 분명했다면, 지금은 무엇 때문에 자기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지 찾기 어려운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무력감과 내재된 분노가 있을 것 같다. 젊은이들이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그간 이창동 감독은 영화 ‘밀양’ ‘시’ 등을 통해 윤리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졌던 바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화두가 ‘버닝’ 안에 내재돼 있을까.

이창동 감독은 “이번 영화는 윤리보단 다른 방향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감각, 정서가 떠오른다”라며, “윤리가 머리에 가깝다면 이번 영화는 젊은이들의 영화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좀 더 젊은 감각이나 정서를 통해 소통하고 싶은 영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버닝’의 젊은 색채를 강조했다.

유아인은 ‘버닝’으로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처음 밟는다. 소감을 묻자 배우는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칸영화제’에 가는 것이 내 개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다. 그곳에서 이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영화를 잘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많은 분들께서 우리 ‘버닝’에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버닝’의 원작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다. ‘내한 배우’ 스티븐 연은 “영어 쓰겠다. 미안하다”라며 이창동 감독이 창의적 접근으로 원작을 각색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티븐 연은 “단편을 먼저 읽고 각본을 받아봤다. 아주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라며, “감독님께서 단편의 느낌을 온전히 잘 표현하셨다. 단편이 갖고 있는 느낌에 새로운 색깔을 더하셨다. 에센스는 유지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컬러를 입히셨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가 더 스페셜하고 나름의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라고 했다.


전종서. 아직 영화는 공개 전이다. 하지만 공개 오디션을 통해 충무로 대감독 이창동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만으로도 신인 배우 전종서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이미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다. 앞서 이창동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전종서 씨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모, 감성, 내면 모두에서 속을 알 수 없는 해미가 보였다”라고 그의 캐스팅 이유를 밝혔던 바 있다.

전종서는 대중의 높은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냐는 질문에 “영화 속 내 모습이 관객 여러분께 어떻게 다가갈지에 대한 부담은 사실 없다”면서, “단지 내가 긴장이 되고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지금 소화하고 있는 스케줄이 모두 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대중의 기대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당당하게 보여드릴 것이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버닝’의 관람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다. 이창동 감독은 “‘청불’ 등급을 받았다. 이유를 보면 방화, 살인이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처럼 되어 있더라”라며, “생각하시는 것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별로 없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직접적 자극이 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영화 자체는 다른 의미에서 꽤 자극적이고 재밌다”라고 ‘버닝’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얽매이는 것을 우려했다. 유아인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많이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버닝’이 명쾌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윤리적인 태도의 영화라고 작품의 강점을 설명했다.

세계 유수 영화제의 트로피 하나가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국위선양으로 여겨지는 시대는 분명 지났다. 그럼에도 지난 2007년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시’에 이어 ‘버닝’까지 세 편 연속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신작은 불현듯 그때의 관심을 2018년 현재에 다시금 불러 모은다. 과연 ‘버닝’은 어떤 보따리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올 것인가. 5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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