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GV, 전종서 이전에 문소리 김여진이 있었다 (종합)

입력 2018-05-05 15:00   수정 2018-05-06 15:56


[김영재 기자] 문소리와 김여진이 ‘박하사탕’을 추억했다.

영화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의 관객과의 대화 GV(Guest Visit)가 5월4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CGV 압구정 아트3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문소리, 김여진이 참석했다. 영화 홍보사 필앤플랜 조계영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박하사탕’은 삶의 막장에 다다른 마흔 살 주인공이 첫사랑과 소풍 왔던 곳 철로 위에서 그 시절 순수를 절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드라마. 지난 2000년 ‘제35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던 바 있는, 이창동 감독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설경구가 부정(不正)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20년 세월을 온 몸으로 겪어낸 김영호를, 문소리가 김영호가 평생을 가슴 속에 품어온 첫사랑 윤순임을, 김여진이 남자를 향한 외사랑을 지속하지만 끝내 현실을 깨닫게 된 비운의 낭만파 양홍자를 연기했다.


GV는 영화를 보다 심도 있게 만날 수 있는 자리이자, 관객이 배우를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첫사랑 순임 역 문소리 배우와, 아내 홍자 역 김여진 배우를 자리로 모시겠다”라며 조계영 대표가 소개를 마치자 김여진이 먼저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130분 상영 내내 매료된 감정 모두를 배우에게 쏟아내는 양 우뢰 같은 박수를 김여진에게 전달했다. 이어 쏟아 내린 눈물 탓에 잠시 입장이 늦어졌던 문소리가 등장했고, 역시 그에게도 문자 그대로 뜨거운 박수가 보내졌다.

오랜만에 ‘박하사탕’을 본 소감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샵에 가서 눈썹을 붙였는데 울다가 다 떨어”진 문소리는, “개봉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다. 그 이후엔 제대로 봤던 적이 없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있더라. 엄청난 영화였다”라며 그의 데뷔작에게, 이제는 중견 배우가 된 문소리의 극찬을 안겼다.

이어 그는 “설경구 씨가 잘생겼더라.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웃음을 모은 뒤, “연기를 시작했지만, 저 당시 애티튜드는 아직 배우의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면서 어떻게 달라졌나’란 생각이 들었다”라는 말로 세월을 관객과 공유했다.

김여진의 소감은 어땠을까. 그는 “영호가 20년 세월을 돌아간다. 그런데 정말 당시부터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라며, “약간 소름도 돋고, 가슴 깊은 데가 계속 아팠다. ‘좀 괴롭다. 역시 ‘박하사탕’은 괴롭다’ 이런 느낌이었다”라고 작품을 ‘아프다’로 규정했다.

김여진은 “힘들었던 영화다. 찍으면서도 그랬고, 찍고 나서도 한두 달을 앓았다. 우울증을 의심할 정도로 너무 사무쳤다. 영호가 물망초에서 딴 여자랑 잔 게 그렇게 사무치더라. 홍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면서, “아직 20대 때의 일이다. 젊은 때는 그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왔다면 지금은 이해가 간다”라는 말로 시간이 배우를 이해시켰다고 알렸다.

이어 홍자의 40대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결이 얇고 부족하다는 김여진의 말에 문소리는 “그런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지나면 그것을 겪고 알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그 역할을 못 한다”라며, “좀 알 거 같으면 그 역할이 안 들어오더라. 대학생 엄마처럼 아직 모르는 역할이 들어온다. 배우를 하다 보면 알 거 같은 때는 못 하고, 모를 때는 꼭 알아서 해야 된다”라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그가 연기한 혜원 엄마 역을 떠올리게 했다.


‘박하사탕’은 출연진 모두가 힘듦을 느끼는 작품이다. 문소리는 “팝콘을 드시면서 꺄르르 보시는 관객 분은 없으실 테다”라는 말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 “무겁고, 아프고, 깊은 영화다. 아픈 시대를 담고 있고, 사회를 담고 있고, 인간들을 담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연기를 모를 때였다. 잘하고 싶은데 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헤매느라 어려웠다”라고 운을 뗀 문소리는, ‘박하사탕’을 통해 배우에게 영화 및 삶에 대한 가르침을 안긴 이창동 감독과의 인연을 직접 관객에게 소개했다.

“제가 오디션을 봤어요. 이천 몇 백 대(對) 일 오디션을 봤죠. 저는 아무도 모르는 그냥 연기 경험 없는 사람이었어요. 5차부터는 감독님과 개인 면담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저에게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윤순임 역할을 눈여겨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저 모니터링을 부탁하시는 줄 알았죠. 책을 들고 나오는데 이창동 감독님께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오셔서 저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많은 영화들을 했잖아요. 감독, 제작자, 여러 영화인을 만났지만 신인 배우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어요.”(문소리)

이미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영화 현장을 경험했던 바 있는 김여진. 그에게 ‘박하사탕’ 현장에서 제일 힘든 것은 촬영 순서였다. 김여진은 “순서대로 찍었다. (문소리-나도 죽어가는 것부터 찍고 거꾸로 갔다.) 그 많은 세월을 다 안고 지금을 보여줘야 하는데 감정이 이해가 안 되더라. 감정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라고 했다.

김여진은 이창동 감독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연출자로 소개했다. 배우가 감정에 완전히 몰입할 때까지 찍고 또 찍고 기다려주는 감독이란다. 문소리도 경험담을 보탰다. 그는 극중 김영호가 윤순임과 양홍자 모두를 감정적으로 밀쳐내는 식당 신을 언급했다. 리허설 때와 달리 수십 명 스태프가 가득 찬 현장에서 배우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이에 이창동 감독은 신인 문소리를 공터 옆 미용실로 데려갔단다.

“우리 얘기 좀 하자고 하셨어요. ‘내가 너를 투자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스팅했는데’로 시작해서 한 1시간 반 동안 얘기하셨던 거 같아요. (웃음) 이 영화가 걸어온 길까지 다 설명하시는데, 그러실수록 더 긴장되더라고요. 더 잘해야 되는데 더 안 되는 거예요. 허름한 여관 옥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혼자 울었어요.”(문소리)


이창동 감독,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에게 ‘박하사탕’은 영화 그 이상의 존재다. 아마 ‘박하사탕’은 네 사람이 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근원이자 자양분이 아닐까.

김여진은 “‘박하사탕’은 내 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다. 연기의 기본, 연기를 하는 법을 배웠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 연기 스타일이 굳어졌다. 여기로부터 벗어나서 좀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지경이다”라며, “아마 흥행이 잘 안 됐더라도 연기는 계속 했을 것이다. 다만 조금 다른 연기를 하고 있을 것 같다”라고 그에게 ‘박하사탕’은 전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배우가 길을 걷는 데 빛을 비춰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알렸다.

문소리는 흥행 걱정은 이창동 감독의 후속작 ‘오아시스’ 때 경험했다고 과거의 고민을 관객과 공유했다. 그는 “모두가 ‘오아시스’는 잘 안 될 거라고 했다. 설사 영화가 잘 되더라도 여배우로서 문소리의 생명을 끝날 것이라고 다 이야기했다”라며, “‘영화가 잘 되든 안 되든 배우로서 생명이 여기까지라면 여기까지 하고 끝내자’라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알아봤다. 연극 치료를 공부할 생각도 했다. 헛짓거리 했었다. (웃음)”라는 말로 지금의 문소리로 굳건해지기까지 여러 고민이 스쳐 지나갔음을 전했다.


‘박하사탕’에는 1980년의 어느 날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 김영호는 그날 이후 박하맛 사탕이 필요한 시대의 피해자가 된다.

김여진은 “광주의 그 사건과 홍자의 삶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상관이 있다. 김영호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홍자의 인생 역시 불행 속에 빠져든다”라며, “사회적 이슈는 결국 전파가 된다. 저 죄책감이, 저 위악(僞惡)이 옆에 사람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본인뿐 아니라 주위 사람을 다 불행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이어 아마 양홍자는 김영호와 다르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혼 이후 양홍자의 삶이 기대된다고 했다.

‘삶은 아름답다’. 대학생 박명식(김경익)이 일기에 적었던 말이다.

김영호는 박명식에게 “근데 내가 마지막으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너가 일기에 그렇게 썼더라.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라고 고문도 모자라 그의 삶을 비웃기까지 한다.

김여진은 “김영호가 박명식을 그렇게 비웃은 이유는 그가 그런 아름다운 삶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라며, “후에 박명식이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온 것을 보라. (고문에도 불구) 그분의 삶은 계속된다”라고 했다.

“저는 여러분께서 ‘삶은 아름답다’를 계속 선택해서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가 너무 우울해요. 여러분께서 이 기억으로 여러분의 삶을 하루하루를 더 아름답게 더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만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김여진)

이날 현장에서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을 여러 차례 소환, 그가 대감독을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그 정도를 가늠케 했다. 문소리는 “오늘 이창동 감독님이 너무 보고 싶다. 시대의 아픔, 인간의 고통과 내면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한국 영화계에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존경하는 감독님이라는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라고 했다.

“우리가 이런 아티스트와 한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버닝’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지켜보겠어요.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작업을 하셨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지나간 세대가 지켜보고 있다고 살아있다고 전해주시면 좋겠어요. 독하게 지켜볼 거예요. (농담이고) 너무 응원하고 있어요. 팬으로서 너무 기다리고 있습니다.”(문소리)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을 사람에게 뜨거운 마음을 가진 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고 가는 이라고도 했다. 뜨거운 가슴으로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감독이 전달한 ‘삶은 아름답다’. 약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세상에 메아리치는 감독의 메시지에는 세월의 풍화에도 인간의 본질은 깎이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일깨워준다.

CGV아트하우스가 ‘한국 영화 헌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및 개봉을 지원한 ‘박하사탕’은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4월26일부터 상영 중이다.(사진제공: 필앤플랜,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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