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 기자] 방송에서 셰프가 현란한 요리 경연을 선보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쿡방, 먹방 등 그야말로 요리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 콘텐츠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스타 셰프의 원조 격인 에드워드 권이 있었다.
2008년까지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수석총괄주방장을 역임했던 그는 국내로 돌아와 대중에게 셰프라는 인식을 재고시켰다.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준 요리에 대한 신념은 식문화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시각을 깨우치기 충분했다.
어느덧 30년 요리 인생을 살아온 그는 여전히 본연의 자리에서 요리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보여준다. 한평생 요리를 했지만, 아직도 요리가 즐겁다는 에드워드 권. 그가 만들어낸 셰프 에드워드 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셰프뿐 아니라 오너의 역할까지 함께 하다 보니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인테리어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컬러의 매치나 레스토랑의 콘셉트를 나타낼 수 있는 요소를 표현하고자 했다. 레스토랑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하나의 분야로 커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 공간이지만 ‘랩24’와 고품격 한식 레스토랑 ‘엘리멘츠’로 나눠 특성에 걸맞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끔 했다”
Q. 오너셰프로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악마와 천사의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오너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창출하고자 한다면 셰프 입장에서는 양질의 음식을 만드는데 몰두하게 된다. 나는 두 가지 역할 중 셰프의 입장이 더 두드러지는 편이다. 사실 수익성이 좋은 구조의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까운 부분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보다 브랜드 경영을 통해 타인의 레스토랑을 운영해 줄 때 훨씬 더 수익구조가 좋은 편이다”
Q.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타 레스토랑의 차이점 있다면
“프리미엄 레스토랑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곳은 흔치 않다. 대체로 외부에서 경영을 해주는 레스토랑이 많은데, ‘랩24’나 ‘엘리멘츠’의 경우 최상위 프리미엄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Q. 최근 새로운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김해에 내 이름을 건 5개의 레스토랑 론칭을 앞두고 있다. 김해라는 지역에 대해 의아함을 가지는 분들도 많다. 지금까지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는 곳에서 시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프로젝트에 성공함으로써 지역적 특성에 따른 외식업과 음식 문화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기부여를 주고 싶다”
Q. 1세대 스타 셰프로서 현재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 콘텐츠를 개척한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프로서 이러한 발판을 다지게 된 계기가 있나
“29살에 처음 미국을 갔을 때 보고 느낀 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마트보다는 편의점이 더 많고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미국은 주거 밀집 지역마다 5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다. 미국 마트를 갔는데 셰프의 얼굴이 붙어있는 제품이 정말 많더라. 또 TV 방송에서는 셰프가 쿠킹쇼를 하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며 열광하더라.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셰프에 대한 직업을 인정하기보다는 멸시나 괄시를 많이 받던 때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서 일한다는 것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셰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대중적인 셰프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셰프가 식품을 통해 시장에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중에게 전문적이고 올바른 식문화를 제공하고 싶었다”
Q. 해외에서 일하며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해외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언어나 문화적인 장벽이다. 내가 해외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한국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2년 월드컵이 기점이었다. 한국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보니 무시를 당할 때도 많았다. 국가 경쟁력에 따라서 그 나라의 국민도 전 세계에서 등위가 매겨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인식이 좋아진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을 거로 생각한다”
Q.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셰프의 이미지를 인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만나보기 어려운 것 같다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셰프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거의 3년간 방송을 독식했던 것 같다.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가진 않는다는 방송에 대한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 임했다. 셰프가 요리와 상관없는 프로그램에 나가는 순간 그것은 방송인이 되는 것이다. 셰프라는 직업이 대중 친화적인 직업이 되어야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의 기질보다는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방송을 통해 실질적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셰프와 음식 문화에 대한 시장성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 내가 연예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을 줄이고 직업적인 부분에 대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Q. 요리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심이 가는 요리 프로그램이 있다면
“백종원 씨가 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특히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돈 들이지 않고 출연료를 받으며 음식에 대한 어마어마한 지식을 얻고 경험할 수 있지 않나. (웃음) JTBC의 ‘팀셰프’도 인상적이더라. 그동안 셰프가 개인으로 조명됐다면 음식을 만들고 그것이 식당에 나오기까지 팀의 조화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Q. 최근 전문 셰프는 아니지만 1인 방송이나 SNS를 통해 새로운 요리 문화를 선도하는 이들이 늘어난 추세다
“처음에는 미디어를 통해 셰프가 등장하면서 셰프라는 단어가 대중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미디어에 노출됐다고 해서 스타 셰프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스타 셰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전문 셰프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음식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들이 음식 문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Q. 현재 한국 음식 문화에 대해 셰프로서의 견해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직 한국이 외식이나 요식업,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는 후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손님은 왕이라는 지배적인 견해나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 등 이런 후진국적인 행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의식적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는 음식 문화 자체가 발전하지 못하면 문화적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음식에 대한 문화를 개척하고 인식에 대한 변화를 주기 위한 셰프들이 노력이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Q. 에드워드 권에게 요리란 무엇인가
“예전에는 요리에 대해 상당한 미사여구를 붙여 표현했다. (웃음) 예를 들면 ‘요리는 사랑이다’, 혹은 ‘요리는 어머니다’ 라던가.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요리한 지 30년이 되어가면서 느낀 것은 요리는 특별한 것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삶 자체라는 거다. 흔히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지 않나. 우리네 인생에서 특히 인간의 존재 자체를 가장 흔들 수 있는 게 바로 식사 활동이다. 인간의 의식주 활동 중에서도 집이나 옷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지 않나”
Q. 30년 가까이 요리를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많을 것 같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나
“어디를 가나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셰프라는 직업이 천직이라는 거다. 한평생 요리를 했지만, 아직도 요리가 정말 재미있다. 슬럼프가 없었기 때문에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이 난감하더라. 한편으로 포기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삶 자체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던 시기가 있다. 처음 미국 갔을 때, 주방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조롱과 인종 차별을 겪으며 혼자 속으로 삭이던 때가 있었다. 그들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고 백인 셰프들 속에서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겪으며 육체적 고통보다 큰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Q.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한 남녀 커플이 왔는데 여자분이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나오더라. 그걸 보고 지배인에게 여성분 테이블에 두통약과 미지근한 물을 드리라고 했다. 그때 여성분이 깜짝 놀라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 후로 단골이 돼서 지금까지 찾아와주신다. 고객에게 관심을 가지고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 9년 동안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었던 큰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Q. 가정에서도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
“안타깝게도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다. 이른 새벽에 나와 늦은 저녁에 들어가기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다. 아마 나뿐 아니라 대부분 셰프들이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또 항상 식자재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다 보니 냄새에 질리곤 한다. 아마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셰프는 거의 없을걸. 셰프는 가장 배고픈 직업이다. (웃음)”
Q.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 김말이, 쫄면 같은 분식 종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도 좋아한다. (웃음) 분식이나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지만 직업적 특성도 있다. 단시간에 빨리 먹고 일을 할 수 있는 음식을 주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Q. 대체로 남자 셰프들이 많은 편이다. 비교적 여자 셰프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능력 있고 좋은 자질을 갖춘 여자 셰프가 많다. 그러나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셰프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다. 또 남성보다 근력이나 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성들이 육체적인 감내를 이겨내기 어려워한다. 특히 육체적인 요소뿐 아니라 중요한 것이 바로 정신력인데, 남자들로 구성된 직장에서 이겨내기 힘든 점도 많다. 우리 레스토랑에는 여자 셰프가 꽤 많은 편이다. 항상 그들에게 운동 열심히 하라는 말과 남자 셰프들에게 기죽지 않고 동등한 태도를 갖추라는 조언을 한다. ‘여자라서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이러한 인식이 바뀐다면 충분히 능력 있는 여자 셰프들이 우위에 올라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Q. 셰프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준다면
“방송에 노출된 셰프의 직업적 관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주방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엄격한 곳이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상하 서열 간 강력한 지배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 것들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거다. 부정적인 부분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감내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방송에 나오는 셰프의 이미지를 보고 스타 셰프의 꿈을 가졌다면 일찌감치 그 꿈을 접는 게 낫다. 우리나라에 이 업계 종사자가 200만 명 정도 된다. 그중 미디어에 노출되고 대중들이 인지한 셰프는 열 명 남짓이다. 극소수인 그들을 보고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채 셰프가 되고 싶어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미디어가 아닌 음식으로 인정받는 셰프가 진정 스타 셰프다.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내리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어떤 메시지를 주는 셰프가 되길 바라나
“개인적으로 백종원 씨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외식업의 CEO로서 셰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대한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백종원 씨가 외식 산업 전문가로서 음식에 대한 넓은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면 셰프는 깊이 있는 지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외식 문화의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식자재를 대하는 태도, 음식을 접하는 문화 등 이러한 부분에 대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 WFP에서 한국 대표 셰프를 역임하고 있다. 전 세계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3분의 1만 줄여도 전 세계 누구 하나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엄청난 양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고 환경 오염의 주범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셰프가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면 그 영향을 더 강력할 것으로 생각한다. 셰프라면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에디터: 황소희
포토: 박지나
영상 촬영, 편집: 정인석
의상: 포튼가먼트
슈즈: 에이레네
프라이팬: 쿡셀
메이크업: 살롱드뮤사이 수지 실장
장소: 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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