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미숙 “끊임없이 일하며 시청자와 함께 하는 배우 되고파”

입력 2018-08-23 14:22  


[신연경 기자] 슬픈 가사의 발라드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시작된 촬영,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감정에 몰입한 것. 당황한 기색을 내비칠 새도 없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모두가 숨죽여 그의 감정에 집중했다. 단숨에 촬영장이 아닌 무대로 만드는 배우 박미숙의 17년 연기 내공은 참으로 놀라웠다.

배우 박미숙, 대중들에게 각인된 이름은 아닐지 몰라도 그의 연기를 이야기하면 달라진다. 영화 ‘말아톤’에서 ‘얼룩무늬 가방’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골든 타임’, ‘슈츠’ 등 다수의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그의 연기다.

화려하고 주목받는 역할이 아닌 억척스러운 아줌마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과 호탕한 웃음소리에 익숙한 사람 냄새가 나던 그. 앞으로 그의 연기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지 기대해보는 만남이었다.

Q. 화보 촬영 소감 부탁한다. 이번 촬영을 위해 다이어트를 감행했다고

“예전에는 잡지 화보를 많이 찍었었다. 그러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화보의 기회가 많이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화보 촬영을 진행하게 되어 긴장되는 마음에 준비를 많이 하게 된 것 같다(웃음). 4개월 정도 다이어트에 돌입해 8kg 정도 감량했다. 기대만큼 잘 마무리하고 재밌게 촬영해서 기쁘다”

Q. 배우가 되기 전 모델 이력이 있었나보다

“배우를 시작하기 전에 잡지 모델 활동을 했었다. 아주 예전에 유행통신 매거진 표지 모델을 했었지(웃음)”

Q. 촬영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눈물이 흘렀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감정을 잡았나

“예전에 헤어진 남자친구를 생각하면서 감정을 잡는다(웃음). 이별의 아픔 등 이런저런 슬픈 생각을 하면서 그 감정에 맞는 호흡을 하면 감정이 빨리 잡히더라. 기쁘거나 슬프거나 모든 감정에 따라 호흡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 때 호흡은 어떻게 하는 지 생각하고 기억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슬플 때 나오는 호흡법으로 감정을 잡기 시작하면 몸이 기억해 슬픈 감정이 금방 차오른다. 그리고 평소에 연습을 정말 많이 해 익숙해져서 감정을 잡는 속도가 빨라졌다”

Q. 근황

“영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국회의원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열심히 캐릭터에 대해서 공부 중이다. 내가 사실주의 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캐릭터가 정해지면 그에 알맞은 직업이나 상황들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해야 한다. 이번 역할을 위해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국회의원을 만나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웃음). 생각보다 국회의원이 가까이에 있더라. 그리고 청문회 영상을 찾아보면서 국회의원의 행동이나 말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Q. 연기를 향한 열정이다.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배우가 드물 텐데

“사실 재능이 있고 노련한 배우들은 나처럼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연기를 정말 잘한다. 반면 나는 긴장을 많이 하고 예민한 스타일이라 스스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대사 한 마디 말하기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 전에 이혼녀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결혼 후 그때 했던 연기를 생각해보면 느낌이 너무 다른 거지. 내가 연기할 때는 상상해서 하는 연기와 직접 느끼고 경험한 후 보여주는 연기는 다르더라”

Q. 결혼을 기점으로 연기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겠다

“그렇다. 무엇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니까 관점이 달라지고 연기의 폭이 넓어졌다. 또 오디션을 볼 때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지더라(웃음). 예전에는 말도 못 하고 눈도 못 마주치고 대본을 읽기 바빴다면 지금은 불안한 마음은 줄어들고 당당해졌다. 여유가 생긴 거지. 신인 배우들은 촬영이 시작되면 숨을 들이마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베테랑들은 반대로 호흡을 내뱉어 몸에 긴장이 풀린다고 하더라. 사실 긴장이 될 때도 있지만 좀 더 여유를 가지고자 호흡을 내뱉는다. 틀리면 다시 하면 되니까 부담 없이 한 번 해보는 거다(웃음)”

Q. 배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잡지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대학 시절에 보조 출연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장진 감독님을 만나게 되었고 줄곧 장진 사단으로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보조 출연의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거다. 그러다가 장진 감독님의 연극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보조로 일을 하다가 다음 연극 ‘택시 드리벌’에서 배우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 작품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진정한 뜨거운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 작품을 해오다가 결혼과 출산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Q. 뜨거운 열정을 가지게 해준 연기의 매력은?

“무엇보다 다른 인물이 되는 게 신기했다. 연극 ‘택시 드리벌’ 무대에 오르면서 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해 스태프로 일할 때보다 더 섬세하게 볼 수 있었다. 함께 출연했던 정재영, 류승룡, 이철민 오빠들이 여리면서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정재영 오빠는 과묵한 모습과 달리 수다스러운 사람이다(웃음). 그러다가 연기할 때만큼은 눈빛이 달라지면서 캐릭터의 진심을 그려내는 데 정말 놀랍더라. 또 가까이에서 그들이 캐릭터를 점점 쌓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니 그동안 나는 연기가 아닌 흉내를 내고 척을 했던 거더라. 이 작품을 통해 연기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 캐릭터를 진심으로 그려내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Q. 주로 단역을 맡았다. 이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은 많지 않고 재미있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과 역할에 대한 욕심이 있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욕심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내가 그 욕심을 내려놓은 거지. 내가 역할을 선택하기보다 감독님이 나를 선택해 주는 게 크지 않나. 때문에 작은 역할이라도 제의가 들어온다면 오디션을 본다는 마음으로 출연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긴 호흡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면 육아를 못 한다(웃음). 임팩트 있는 역할이 더 재밌기도 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나 직장 동료와 같이 항상 비슷한 대사와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그러면서 재미가 사라지고 오히려 힘이 들더라. 한 회 출연하고 죽는 역할이더라도 재밌고 격렬한 연기를 할 수 있는 감초 역할을 해내고 싶다”

Q. 오디션 경험도 많지 않나.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소감은?

“광고를 제외하고 영화만 200~300번 정도의 오디션에 도전했던 것 같다. 조감독님의 눈도 못 마주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어떤 배우나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임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티가 안 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 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Q. 그간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영화 ‘말아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 그런지 ‘얼룩무늬 가방’하면 많이 기억하고 알아주셔서 신기하다. 작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한테 주는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또 MBC 드라마 ‘골든 타임’을 통해서는 사투리 연기나 엄마 역할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스스로 많은 성장을 이룬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Q. 얼마 전 KBS 드라마 ‘슈츠’에도 출연을 했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

“모든 게 기억에 남는다. 잘생긴 사람도 많았고(웃음). 박형식 배우가 내 사건을 담당한 변호가 역할로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형식이가 전문용어가 섞인 많은 양의 대사를 하고 나는 눈물을 계속 흘려야 했다. 힘들게 촬영했는데 본방송에서는 편집돼 아쉬웠다”

Q. 함께 출연했던 배우 중 인상 깊었던 사람은?

“얼마 전 김병옥 선배님과 SBS 드라마 ‘시크릿 마더’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선배님과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는데 오랜만에 작품에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여전히 선배님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배려가 많으시더라. 항상 더 좋은 연기를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분이다”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은?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이 탐난다. 전에 부산 사투리 연기를 했을 때 감독님께 부산사람인 줄 알았다며 칭찬을 받았다. 사투리를 위해 시댁인 부산에 기거하면서 매일 남포동 시장을 방문했었다. 부산 사투리는 관용구가 있더라(웃음). 표준어에 억양만 넣어서는 안 되고 그 관용구를 배워야 사실감 있게 사투리를 연기할 수 있는 거다. 사투리 연기에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

Q. 본인 연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매력이라니 부끄럽다. 잘 모르겠다. 아직 더 노력할 때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오래됐다고 해서 편하게 연기하려 하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며 창조적인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평소 성격을 말하자면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조용한 성격이다. 낯을 풀려고 노력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런 성격인 줄 잘 모른다. 개그 욕심이 많고 진지한 분위기를 못 견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잘 웃겨서 그런 것 같다”

Q. 다양한 취미가 있다던데

“요즘에는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인형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 중국어, 일본어 등 언어 공부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퀼트다. 퀼트 강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데 관련 서적을 참고하려고 보니 일본과 중국에 책이 많더라. 그래서 언어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취미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게 쉬는 거다.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 괴리감을 느끼고 산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조금씩 일을 시작하니 회복이 되더라”

Q.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목표

“예전에 정재영 오빠가 해준 말이 있다. 배우의 삶과 박미숙이라는 인간의 삶이 함께 가야 한다고. 배우의 삶을 위해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미루고 포기하게 된다면 후에 나이가 들어 그에 맞는 엄마, 할머니 역할을 했을 때 그 차이를 어떻게 메꾸며 공감을 할 수 있겠냐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 보니 맞는 말이다. 덕분에 연기의 폭도 넓어지고 현실의 삶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배우의 삶과 나의 삶이 균형을 이루며 함께 가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서 끊이지 않고 일을 하며 시청자와 관객과 함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에디터: 신연경
포토: 윤호준
의상: 오앨
슈즈: 바이비엘
주얼리: 아르뉴
헤어: 아우라뷰티 김진환 원장
메이크업: 아우라뷰티 정보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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