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8월8일 개봉작 ‘공작’ 박석영 役
배우 황정민은 들떠 있었다. 프랑스 칸에선 못 느낀 관객과의 일체화를 국내 언론시사회서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만 느끼는 어떤 세포잖아요. 같이 호흡하면서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제71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공작(감독 윤종빈)’은 ‘북풍’에 휘말린 ‘흑금성’ 박석영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박석영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것만이 한반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제안에 대북 공작원으로 거듭나는 인물. 배우는 “국가의 부름”에 생사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요원 박석영과,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서울무역 장사꾼 박석영을 황정민 특유의 뉘앙스로 능히 구분해낸다.
첩보물이란 말만 듣고 처음엔 “아싸” 했다는 황정민이다. 하지만 그는 ‘공작’ 때문에 “바닥”을 경험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극에서 박석영은 그가 왜 공작원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황정민과 박석영에게 ‘공작’은 처음을 돌이켜보게 하는 반추의 턱이다.
2일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그를 “광대”로 소개했다. ‘공작’은 광대 황정민이 그의 의무를 이행한 작품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가 출연 이유였어요. 저는 광대예요. 관객 분들께 재밌는 걸 보여드려야 할 의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재밌는 얘기가 있으면 친구들한테 ‘이거 들어봐. 진짜 재밌어’ 하잖아요. 실화에 바탕한 영화예요. 어떻게 하면 실화를 벗어나지 않고 영화적 요소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박석영의 행적은 실존 인물 박채서로부터 따왔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한미합동공작대 팀서 대북 우회 침투 공작에 참여한 그는, 전역 후 약 5년여 간 ‘안기부’ 대북 공작원 ‘흑금성’으로 활약했다. 임무는 북핵(北核) 정보를 빼오는 것. 그는 북한 수뇌부의 신임을 얻은 것도 모자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까지 했다.
“제일 중요한 건 박석영의 신념이었어요. 궁금했어요. ‘어떤 사고 방식과 신념을 가졌기에 가족을 뒤로 하고 목숨까지 내놓았을까?’ 연기의 출발점이었죠.”
궁금증은 황정민이 그가 걸어온 궤도를 잠시 벗어나게끔 했다. 실화 소재 작품을 찍을 때 “웬만하면” 실제 인물을 잘 안 만나는 황정민에게 박채서는 참 만나고픈 사람이었다. “너무 궁금했어요. 말투보단 얼굴이랑 느낌이 궁금했어요. 사람 눈을 보면 그 사람 성향이 읽히잖아요. 눈을 읽을 수 없더라고요. 읽어낼 수 없는 벽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만 “그 사람의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는 아니다”는 게 황정민의 설명이다. “‘공작’은 남북 두 남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예요. 조금 더 크게 보면 화합에 대한 얘기고요. 사상이 다른 두 나라 남자지만, 하나의 좋은 신념으로 뭉치면 좋은 우정을 이룰 수 있다고 봤어요.”
박채서가 김정일을 만난 것에 관해 윤종빈 감독은 “어떻게 보면 주장이다. 그걸 확인할 데가 없다”고 했다. 북파 공작원이, 북측 ‘최고 존엄’과 만났다는 사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김정일 신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주어진 시간이 단 사흘이었어요. 특히 그 신은 대사가 굉장히 많아요.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근데 제가 봐도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고요.”
연습을 했음에도 “뭔가 안 맞고 틀리고” 했다. 이에 황정민은 같이 김정일을 마주한 리명운 역의 이성민과 함께 매일 ‘면벽 연습’을 거듭했다는 후문. 그는 이성민과 서로를 위로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정도의 압박감을 느낀 건 ‘공작’ 현장이 처음이었어요. 성민이 형과 매일 ‘우린 죽어야 된다. 그만하자. 배우 그만하자’ 했어요. 바닥을 친 거죠.”
그는 “쉽게 생각한 게 있었다.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며, “평소 방식대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가 아주 큰코다쳤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신에서도 불거졌다. ‘구강 액션’을 표방하는 ‘공작’서 감독은 “매 신이 액션 신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배우에게 전한 것. “말이야 쉽죠. 말하는 걸 어떻게 하면 액션 신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늘 퀘스천 마크였어요. 긴장감 있게 연기한다고 해서 그게 신에 묻어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황정민은 과거로 돌아갔다. 명배우는 ‘언제부터 어깨에 힘만 들어갔지?’란 고민과 ‘맞아 이거였지’란 감탄을 ‘공작’서 맛봤다.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연극하듯이 학생 작품 하듯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갔어요. ‘내가 대사하고 이만큼 호흡 줄 테니 너는 이렇게 하고’ 하면서 같이 만들었죠. 그렇게 신에 긴장감을 쌓아갔어요.”
‘공작’서 매너리즘을 “완전 제대로 알게 된” 황정민은 연극 ‘리차드 3세’로 재시작을 다짐했다. “바닥을 보인 거잖아요.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선택했어요. 진짜 어렵거든요. 많이 도움이 됐어요. ‘귀환’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 ‘귀환’은 윤제균 감독 4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자, ‘댄싱퀸’ ‘국제시장’ ‘히말라야’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재회작. 우주 정거장에 남겨진 우주인의 귀환 이야기를 다룬다. 몇몇 할리우드 영화가 생각난다는 비아냥에 관해 황정민은 “나와,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다수”라며, “내가 좋아하는 9백9십만 명을 위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귀환’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처음’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주 정거장) SF를 하는 게 크게 다가왔어요. 욕 많이 먹겠죠. 처음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첫발을 내딛는 게 얼마나 재밌고,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인데요.”
‘공작’서 긴장을 표현하는 데 매진한 배우의 입이었다. 그 입이 어느새 첫발을 딛는 흥분에 휘감겨 있었다. 매너리즘에 무너지지 않은 배우는 다시 한 번 달리고자 한다. 불콰한 그의 얼굴처럼 불그스레한 시작의 기운이 황정민을 감쌌다.
영화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을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모티브 첩보극. 8월8일부터 상영 중이다. 12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480만 명. 순제작비 165억 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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