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목격자’, 이성민과 마시는 한여름 얼음물

입력 2018-08-30 08:00  


[김영재 기자] 8월15일 ‘목격자’가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7/5)

배우마다 색이 다르듯 배급사도 저마다 색이 다릅니다. 그리고 영화 ‘목격자(감독 조규장)’는 배급사 NEW의 장기를 목격한 순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NEW의 장기 중 하나겠죠. ‘숨바꼭질’ ‘더 폰’ ‘장산범’. 모두 그간 NEW가 제공하고 배급한 영화들입니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줄거리의 도입이 매력적이란 사실이죠. ‘어느 날 초인종 옆에 가구(家口)를 특징할 수 있는 암호가 적혀 있다면?’ ‘1년 전 사건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누군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면?’ 다른 영화서 봤든 안 봤든 모두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시작입니다. 더불어 진행자 김경식이 좋아할 소재죠.

하지만 영화는 2시간의 예술입니다. 러닝 타임을 한 줄만으로 채울 순 없어요. 더 많은 것이 필요하죠.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감독의 질문 혹은 메시지, 미술, 음악, 촬영 등이 한 데 뭉쳐야 합니다. ‘목격자’의 한 줄은 ‘나는 살인을 봤고 살인자는 나를 봤다’예요. 그리고 관객은 ‘목격자’를 봤고 ‘목격자’는 여러 문제를 맞닥뜨립니다.

주인공 상훈(이성민)은 가장 보통의 시민입니다. 따뜻한 사람이에요. 겉으론 툴툴대지만 속까지 차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얼마 전 그는 새 집을 마련했습니다. “휘파람 불면 까치가” 나오는 산이 보이는 아파트래요. “대출 받아 장만한” 아파트는 그의 보물 2호입니다. 1호는 당연히 가족이죠. 아빠가 오지 않으면 잠에 들지 않겠다는 딸 은지와, 남편에게 “술 먹고 진상 부리지 말”라고 하는 아내는 그가 가진 전부입니다.

퇴근 후 새 집 거실에서 홀로 마시는 맥주 한 캔. 캬. 낙원이죠. 하지만 낙원은 금세 깨집니다. 상훈은 관객에게 스릴을 안겨야 하는 의무가 있는 주인공이니까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밖을 내다본 상훈은 태호(곽시양)의 살인을 목격합니다.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몇 명인데 본 사람이 하나도 없어?” 주민들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경찰-언론 협조 반대 동의서’까지 공유되는 상황. 상훈은 분개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정의의 사도”란 비아냥뿐입니다.

태호와 상훈이 서로를 인식하는 때가 영화 시작 후 10분 내외입니다. 도입이 매력적인 영화가 그 매력을 한참 후에 보여주는 것보다 꼴 보기 싫은 건 없죠. 기다리게 하는 일 없이 범인이 등장하고 주인공과 관객을 긴장케 하는 건 좋은 시작입니다. 매력있는 한 줄이 관심을 끌었으니 이제 남은 100분은 앞서 말한 연기, 연출 등 나머지의 몫입니다.

경쟁작 ‘공작’서도 연기 호평을 받은 배우 이성민의 연기는 일주일 먼저 개봉한 전작만큼 화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연기에 일상성을 부여하는 몇 안 되는 배우예요. 일상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배우는 송강호와 다르게 이성민의 일상성은 정극에 가깝습니다.

배우의 말을 빌리자면 “콘트라스트가 쫙 있는 영화는 많이 안 해봤던” 그예요. ‘목격자’ 역시 대조나 대비가 없는 영화입니다. 평범한 가장이 살인을 목격한 건 충분히 극적입니다. 하지만 가장 보통의 시민 상훈이 겪는 서사죠. 극적인 상황에 휘말렸을 뿐 상훈의 목적은 일상으로의 회귀입니다. 상황이 극적인데 인물마저 극적이라면 아마 상영 내내 부담스러운 영화가 됐을 겁니다. tvN ‘미생’ 오상식 같은 모습도 살짝 보여주는 상훈이기에 ‘목격자’는 무게 중심을 찾아요. 아내 수진 역의 진경도 중심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연기 외의 것은 기준에 못 미칩니다. 먼저 장치입니다. 관객을 놀래키는 장면이 몇몇 나옵니다. 그러나 극에 몰입을 돕는 놀람이 아니라 잠깐 ‘엄마야’를 위치는 데서 끝나는 흔한 도구입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놀래려고 한 게 아닌데 죄송합니다”란 형사 재엽(김상호)의 대사는 마치 감독이 전하고픈 말을 등장인물이 대신 하는 듯하죠.

여기까진 장르의 특성이라고 이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액션 신이 문제예요. ‘상업 영화’란 ‘목격자’의 속성을 새삼 기억하게 하는 이 못된 도구는 한 번도 아니고 약 네 차례나 등장해 한숨을 모읍니다. 차가 부서지고, 머리엔 피가 흐르고. 극장 음향을 확인하게 돕죠. 그런데 액션 신이 들어가야 ‘아 영화 좀 봤다’ 하는 건 옛날 사고 아닌가요. 윤종빈 감독은 작품의 톤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배우 주지훈의 추격 신을 ‘공작’에서 편집했어요. 대단한 액션 신은 아닙니다. 액션 신 때문에 장르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뜬금없어요. 결국 작품이 말하고자 한 ‘이기주의’ 등은 추진력을 얻지 못합니다.

‘목격자’의 중심엔 ‘방관자 효과’가 있어요. 다른 말은 ‘제노비스 신드롬’인데, 목격자가 많을수록 제보율이 떨어진 1964년 실제 사례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나 대신 누가 돕겠지?’란 건 삶에 이기적이지 않은 이도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 사고입니다. 감정 이입을 위해선 선과 악이 명확해야 하는데, 보편성은 관객에게 머뭇거림을 주죠.

그래서 ‘목격자’는 ‘방관자 효과’서 더 나아가 사건 이후에 초점을 맞춥니다. ‘누가 신고하겠지’란 생각에 방치된 피해자가 살해됩니다. 과연 목격자는 목격 사실을 경찰에 진술할까요? ‘이기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상훈은 사건을 목격했으나 신고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죠. “몰라요 그런 거” 하며 차갑게 돌아서는 아이 엄마, 사람이 사라졌는데 “동네 시끄럽게 해서 왜 분위기 흐리냐 그 말이에요” 하는 아파트 주민 등도 ‘목격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지탱합니다. 너무 솔직한 영화입니다. 때문에 관객은 작품이 질문하려는 걸 궁리하는 데 힘을 쏟지 않고 그 이상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상훈은 범인을 신고하지 않을까요. 사실 신고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못하는 겁니다. 검지로 하나하나 층수를 세어가며 상훈의 집을 확인하는 살인마가 버젓이 바깥을 활보 중인데 그걸 어떻게 신고하나요. 상훈이 범인을 신고하려는 낌새가 보이는 순간 태호는 상훈과, 그의 보물 1호에게 위해를 가할 겁니다.

그래서 상훈의 ‘이기주의’는 ‘합리주의’입니다. 살인을 목격하지 않은 이에게 남이 죽은 일은 그저 집값의 문제예요. 그러나 목격자에게 사람의 죽음은 안전의 문제입니다. 절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그에게 ‘이기주의’를 언급하는 일은 ‘이타주의’를 강요하는 또 다른 ‘이기주의’죠. 선(善)을 가장한 ‘이기주의’요. 희생의 거부가 손가락질 받을 ‘이기주의’인지, 으레 그래야 할 ‘합리주의’인지 고민할 겨를을 준다는 게 ‘목격자’의 의의입니다.

허나 영화를 관통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왜냐하면 ‘목격자’는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를 고발하고 싶은 작품이 아니거든요. ‘목격자’는 그저 뉴욕 퀸스 주택가서 살해된 키티 제노비스의 이야기를 한국적으로 풀어냈을 뿐입니다. 결국 ‘이기주의’를 논하되 깊이가 얕습니다. 고민하는 건 관객의 역할이고요. 많은 영화가 재밌는 발상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약?’이 매력적일 수록 영화도 매력적일 거란 착각에 빠집니다.

‘목격자’는 여름에 어울리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덕분에 흥행도 순조로워요. 흥행 분기점인 18일 토요일 박스오피스서 ‘목격자’는 33만 4394명의 관객을 모아 ‘공작’을 제치고 그날 일일 관객수 1위에 등극했습니다. 더불어 16일부터 21일까지 6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습니다. 순제작비 기준 약 4배 차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목격자’입니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한 영화예요. 그래서 영화가 물이라면 ‘목격자’는 얼음물입니다. 여름에 마셔야 가장 맛있는 물인 셈이죠. 물론 한겨울에 마시는 얼음물도 맛있는 물입니다. 하지만 대개 겨울의 얼음물은 추위를 추위로 이기는 이이제이에 불과하죠. 한여름을 물리치게 돕는다는 점에서 고맙지만, 동시에 한계는 명확한 ‘목격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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