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9월13일 ‘죄 많은 소녀’가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
죄, 원죄, 본죄. 죄(罪)를 뜻하는 수많은 단어의 존재는 인간이 죄에 얼마나 오랫동안 천착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기독교에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서 소위 ‘원죄’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죄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발생해 나와 주위 사람을 옭아맵니다. 움직일수록 더 세게 조여들죠.
2학년 7반 이경민(전소니)이 사라졌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그의 가방과 구두가 다리서 발견된 것에 관해 어른들은 갖가지 이유를 내놓습니다. “입시 스트레스”, “마음의 병”, “어두운 구석” 등이 그것이죠. CCTV 판독 결과 경찰은 경민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이로 같은 반 친구 이영희(전여빈)를 지목합니다.
“누가 그런 소리 했어? 여기서 아무도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없어. 내가 그런 말 했어?” 영희는 결백합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서현우)도, 김 형사(유재명)도, 함께 공연 보러 간 친구 한솔(고원희)도 모두 영희를 가해자로 지목합니다. 과연 영희는 경민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 세상은 그에게 원인을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아직 관객은 영희가 흘리는 눈물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 그는 필사의 선택을 내려 관객을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영화 ‘죄 많은 소녀(감독 김의석)’는 독립 영화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제공을 맡았습니다. 그럼에도 상업 영화 개봉에 버금가는 스포트라이트를 9월5일 언론시사회에서 받았습니다. 이유는 작품이 갖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죠.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서 공개돼 ‘뉴 커런츠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뉴 커런츠상’은 아시아 영화 경쟁 부문 ‘뉴 커런츠’에 상영된 신인 감독의 장편 영화 중 2편에게만 수여되는 상이고, ‘올해의 배우상’은 ‘뉴 커런츠’ 부문과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상영된 한국 장편 독립 영화 배우를 주목하기 위한 상입니다.
영희는 결백을 몸으로 말했지만, 영화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의석 감독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완성된 ‘죄 많은 소녀’입니다. 물론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세상서 사라졌을 때 필연 발생하는 인간의 상실감, 책임감은 감독이 느낀 실제 감정입니다. 감독은 필사적으로 자신과 가장 먼 답을 도출해내려는 가냘픈 인간성을 탐구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작품을 보는 제일 올바른 눈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라는 이기주의를 내뿜습니다. 학교의 수장은 아이의 실종이 우열반 탓이 아니겠냐고 하는 이에게 “그렇게 말하면 학교는 뭐가 됩니까?”란 말로 핀잔을 주고, 자녀의 실종에 이성이 마비됐을지언정 엄마란 사람은 “네가 경민이 그렇게 만든 거야” 하며 남 탓을 합니다. 사실 주인공 영희도 이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요.” 과연 영희의 말은 경민의 실종과 무관할까요.
“네 위주로만 생각하지 말고”란 영희를 향한 김 형사의 일갈은 죄가 무서운 이유를 명백히 드러냅니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은 죄는 무심결에 발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어.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또 잘 살아가야만 해.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될까? 얼른 잊어버려야 돼. 이럴 땐 좀 뻔뻔해질 필요도 있어.” 제목 ‘죄 많은 소녀’ 속 소녀는 곧 인간이고,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불안정한 인간에 의해 잘못이 발생한다면, 과연 피해자는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요. 그래서 ‘죄 많은 소녀’는 감독이 극에 담은 ‘인간에 관하여’만큼이나 ‘죄에 관하여’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작품은 영화 ‘곡성’ 연출부 출신이란 감독의 이력을 굳이 되짚고 싶을 정도로 참 치열한 영화입니다. 감독과 출연진은 단어 ‘치열(熾烈)’을 수없이 언급했고, 이에 관해 배우 전여빈은 감독이 그가 겪은 부재와 상실을 모두에게 공유한 현장이었다고 배경을 밝혔습니다. “각자가 다 비장”한 현장,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는 것만이 서로를 가장 위하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죄 많은 소녀’입니다. 어떤 기운이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전달되는데, 아마 독립 영화가 가진 날것의 힘이 반, 배우와 감독이 만든 치열한 힘이 반이겠죠.
몇몇 신은 굉장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음악 감독 선우정아가 빚어낸 음악의 활용이 특히 좋습니다. 그가 극 말미 잠시 부르는 ‘왓 아 유 씨잉(What Are You Seeing)’은 화면과 결부돼 강렬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남성 감독임에도 10대 여학생의 심리를 인간의 죄책감과 결부시킨 부분도 훌륭합니다. 전여빈은 2018년의 발견입니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3막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떨친 그는, 관객이 그 사실을 모르고 보는 게 이득일 정도로 정반대 인물을 관객에게 전합니다. 그는 한계를 시험했고, 결과는 성공입니다.
다만 경민이는 왜 구두를 벗어야만 했을까요. 감독은 등장인물의 대사로 경민, 영희, 한솔이 겪은 그날의 기억을 관객이 재조립하게 돕습니다. 하지만 명쾌하지 않습니다. 경민의 죽음은 감독이 겪은 친구와의 이별에서 출발한 극의 구심점이지만, 왜 그가 사라졌는진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죄 많은 소녀’는 경민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없습니다.
영화 ‘독전’에서 관객은 마지막에 누가 총을 쐈는지 열린 결말의 향방을 궁금해 했죠. 상업 영화 관객에게 그건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반면 ‘죄 많은 소녀’에서 경민은 영희와, 영희 친구 그리고 경민 엄마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 문제는 영화 ‘당신의 부탁’ 때에도 느낀 점인데, 작은 영화는 으레 그래야 한다는 논리에 관객은 서사보다 인물에 감정과 감독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완결성의 훼손이고, 이해의 부족입니다.
후반부 급작스러운 전개는 작품이 앞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탑을 훼손합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반을 워낙 공고히 쌓아둔 덕입니다.(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