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사람과 화물 구분이 없는 세상

입력 2018-09-25 11:30  


 -하나의 이동 수단에 탑승과 탑재만 구분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가 흥미로운 모빌리티 컨셉트를 하나 내놨다. 하나의 구동 모듈에 사람 탑승 및 화물 탑재 공간을 선택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물론 이런 '하이브리드 공간(Hybrid Space)'의 개념은 이미 등장한 지 오래다. 앞서 폭스바겐은 자율주행 컨셉트 '세드릭(SEDRIC)'을 선보였고, 토요타 또한 팔레트 컨셉트를 2018 CES에 공개한 바 있다. 스위스 자동차 기술 기업인 린스피드는 모빌리티를 이동하는 사무실 및 거주용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내기도 했다. 

 벤츠가 공개한 '어바네틱(Urbanetic)' 컨셉트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벤츠는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명칭 구분을 규정했다. 이동 수단의 실내를 차지한 대상이 사람일 때와 사물일 때를 구분하자는 의미다. 본질적 관점에선 사람 또한 사물과 마찬가지로 이동하는 물체에 실려 가는 것이지만 인간의 가치를 고려해 사람이 탑승했을 때는 '피플 무버(People Mover)', 사물이 탑재됐을 때는 '상품 운송(Goods transport)' 모빌리티로 부르자고 말이다. 물론 피플 무버 기능일 때는 12명이 승차 공유를 할 수 있는 만큼 '공유 모빌리티(Sharing Mobility)'가능성도 소개했다. 

 이처럼 모빌리티의 확장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부 전문가는 미래에 각광 받을 사업으로 '차체 공유 서비스'를 꼽는 사람도 있다. 이동 수단의 공유를 넘어 이동 수단의 형식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파워 플랫폼을 구매하거나 임대한 후 이용 목적에 따라 차체를 빌리는 사업이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차체를 용도에 따라 바꿀 수 없지만 내연기관 대신 전동화가 완성되면 얼마든지 차체 형태를 선별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어서다. 주말에 스포츠카를 타고 싶으면 구동 플랫폼에 스포츠카 차체를 빌려 얹고, 이사할 때는 박스 형태를 골라 적재 공간을 넓히는 식이다. 물론 모든 이동 수단의 기반은 전동화 된 자율주행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저장된 구동 플랫폼은 이동하는 배터리 기능도 수행해 지금처럼 고정된 가정에 외부 전력이 공급되는 전력망을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먼 미래 같지만 시도는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자율주행 이동 수단 '세드릭'을 소형 물류 사업에 투입하며, 혼다 또한 RD-X 프로젝트를 활용해 사무 공간에서 사용 가능한 이동 수단 개발에 활발하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이동 수단에 공유 프린터를 올려 두면 프린터를 작동시킨 사람에게 이동해 종이를 픽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여전히 '인쇄'를 누른 후 직접 인쇄물을 가지러 프린터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자율주행 이동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물류에 대한 혁신도 적극 활용된다. 볼보트럭은 최근 자율주행 전기트럭 '베라(VVERA)'를 공개했다. 아직은 배터리 용량이 부족해 짧은 거리를 오가지만 주행거리 확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대신 플래투닝(Platooning)을 활용해 수송 물량은 지금보다 월등히 늘릴 수 있다. '플래툰(Platoon)'은 원래 군대의 조직 단위인 소대를 의미하는데 자동차에선 여러 대가 군집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수학여행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일렬 주행하는 것도 일종의 플래투닝이다. 그러나 자율주행 시대에서 플래투닝은 운전자 없이 앞 차와 정밀한 간격을 유지하며 여러 대가 뒤따르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 경우 가장 앞 차에만 운전자가 필요할 뿐이어서 한 사람이 옮길 수 있는 화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이처럼 전동화 된 자율주행이 만들어 낼 세상은 한 마디로 과거에 없었던 모습이다. 이들이 도로를 활보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지만 모빌리티의 변화는 단순한 이동 수단 혁신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를 재구축하는 작업과 병행될 수밖에 없어 주목 받는다. 예를 들어 모빌리티를 이동하는 거주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부동산은 지금처럼 고정된 '집'이 아니라 마치 캠핑 사이트처럼 운영될 수도 있다. 이동 거주민(?)이 필요한 상점 또한 이동하고, 아이들의 학교도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가 부족하면 한 달 동안 영어 집중 학교가 찾아올 수도, 찾아갈 수도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고정될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물론 아직 멀리 있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변해갈 것이란 믿음 하에 개발되는 기술은 그런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목표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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