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여곡성’, 귀신보다 현실이 무섭다

입력 2018-11-10 08:00  


[김영재 기자] 11월8일 ‘여곡성’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여곡성’은? 결말 ‘스포’는 없다.

★★☆☆☆(2.1/5)

이명규(김호창)는 이경진(최홍일) 대감의 셋째 아들이자 마지막 혈육이다. “이제 입신도 해야 하고 가문도 일으켜야” 하는 그가 제마법도(制魔法刀)를 쥐고 절에서 내려온다. 첫째, 둘째 형 모두 혼례 첫날밤 유명을 달리한 상황. 이명규는 그의 칼로 “악귀를 멸하겠”다고 어머니 신씨(서영희) 앞에 굳게 다짐한다. 천출 옥분(손나은)과의 합방을 미끼로 사용한 이명규 앞에 악귀가 등장한다. 음양의 합일을 알아채고 ‘귀신같이’ 달려든 것.

다음날 신씨 부인은 옥분에게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이른다. 하나, 허락 없이 집밖을 나서지 말 것. 둘, 사람이 죽었다는 걸 발설하지 말 것. 셋, 곳간 근처에 얼씬하지 말 것. 그러나 신씨 부인의 명과 별개로 옥분에겐 집에 남아야 할 남모를 이유가 있다.

영화 ‘여곡성(감독 유영선)’의 원작은 일명 ‘지렁이 국수’를 먹는 신으로 유명한 1986년작 ‘여곡성’이다. 20세기 공포 영화 ‘여곡성’이 인기를 모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무섭거나 엽기적인 장면의 공이 컸다. 그릇에 한가득 담긴 지렁이뿐만 아니라 목이 180도 돌아간 시아버지, 송곳니로 사람을 흡혈하는 귀신 등은 다시 봐도 무서운 충격 묘사.

메시지도 좋았다. “천한 집안에서 데려온 애” 옥분이 사대부 집안도 해결 못한 악귀 절멸의 선봉에 선다는 건 머슴과 양반이 공존하는 조선 시대 속 작은 반란이었다.

혹자는 ‘여곡성’(1986)을 한국 공포 영화의 쌍두마차로 소개 중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재밌으나 부족한 면도 다수 있다. 우선 주인공의 행동과 사고가 수동적이다. 게다가 현대 관객이라면 분명 지탄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등장한다.

21세기 ‘여곡성’을 연출한 유영선 감독은, 인간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다. 등장인물 개개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데서 오는 재미를 의도했다는 후문. 더불어 ‘전설의 고향’에서 다룸 직한 원작 귀신 이야기는 나라의 존폐까지 언급되는 대규모로 확장됐다.

물괴나 야귀 따위는 없다. 그러나 “천애 고아에 갈 곳도 없는” 며느리 옥분은 그에 못지않은 악역을 자처한다.

옥분의 머리에는 두 가지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원작 옥분이 가지고 있는 일부종사의 자세다. 원작에서 옥분은 “수절하는 것이 여자의 본분 아닐까요?” 등의 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 둘째 며느리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나머지 하나는 1020 세대의 기호를 겨냥한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옥분이다. 2018년 옥분은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남편의 유산은 힘이라고 강조한다.

일부종사가 수동이라면 운명 선택론은 능동이다. 일관성이 부족한 인물에게 관객은 감정 이입을 쉬이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가 택한 운명은 이타성보다 개인의 사리사욕에 가깝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인 것. “그리 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하는 옥분의 필사즉생 필생즉사 각오는 어째 속 빈 강정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옥분의 공감 능력 결여도 문제다. 앵무새처럼 “수절”만 외우는 옥분은 더는 없지만, 2018년 ‘여곡성’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엔 옥분과 놀랍도록 흡사한 처지의 한 여성이 등장한다.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욕망을 씨실과 날실로 엮는 건 어땠을까. 누구든 그의 유산을 건들면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겠다고 하는 옥분은, 제 목소리 낼 줄 아는 21세기형 여성이다. 더불어 유산을 지키는 것에 급급한 구(舊)시대 관찰자다.

불만은 ‘여곡성’이 시아버지 이경진 대감을 다루는 것에도 있다. 무릇 이경진 대감은 비정해야 한다. 그의 비정함이 곧 ‘여곡성’의 중심이다. 하지만 신작은 이경진 대감의 비정함에 여러 사족을 달아 놓는 것으로 이유 있는 비정함을 꾸며낸다. 이유 없는 악행이 그 이유를 가지는 순간 반작용으로 비정함은 사라진다.

물론 ‘여곡성’은 안일한 리메이크작이 아니다. 새 인물을 등장시키는 등 노력이 가상하기 때문이다. 해천비는 2018년작에만 등장하는 “한양에서 제일 신통한 무당”이다. 그의 등장은 ‘여곡성’을 퇴마극으로 변주시킨다. 제마법도나 만(卍)이 원작 퇴마의 전부였다면, 신작은 긴 머리를 찰랑이는 해천비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퇴마를 조명한다.

예를 들어 해천비가 언급한 악귀 대처법은 초반과 종반이 다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악귀와 주인공의 관계가 현재 얼마나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바로미터 보듯 알게 된다. 액션 신도 있다. “영계의 법도”, “구천을 떠도는 심정” 등의 대사가 어우러진 액션 신은 여인의 한(恨)이 곧 종착역에 다다름을 알리는 일종의 안내 방송이다.

혹자는 해천비의 등장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해천비 행동거지 중 일부가 배우 이계인이 원작에서 열연한 떡쇠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작에서 떡쇠는 연두(김희상)로 이름이 바뀌고 비중마저 축소됐다. 등장인물의 가교 역할과, 극의 감초를 담당한 떡쇠가 삭제되면서 ‘여곡성’은 하우스 호러를 벗고 의도대로 퇴마극을 입는다. 떡쇠는 옥분과 시어머니 신씨 못지않은 중요 인물이다. 각색 덕에 이번 ‘여곡성’은 마치 새 집에 들어서는 느낌을 안긴다. 그러나 과거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깔끔함이다.
 
배우 서영희의 신씨는 원작 신씨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나름 맛이 있다. 배우의 고운 외양에서 묻어나는 고급스러움 등이 표독스러움으로 표출될 때의 반전이 있다.

반면 옥분 역의 손나은은 아이돌 배우에게 걱정하는 바를 그대로 답습한다. 사극은 전업 배우도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장르. 그래서 배우가 사극서 호(好)연기를 선보일 때 대중은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손나은은 박수 못 받을 연기를 선보였다. “야망이든 욕망이든 뭐라 하셔도 좋습니다”고 옥분이 얘기할 때 실소가 터진 건 기자뿐만이 아닐 터.

공포 영화는 신인 배우 및 감독이 저예산 제작을 통해 그 활로를 찾는 데 의의가 있다. 힘겹게 제작되는 이상 그 무대는 재능 있는 이의 길이 되어야 하는 게 맞다.

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에서 절대 아이돌 배우가 나쁜 게 아니라고 했다. 더불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현장에 내몰리는 시스템을 탓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자각과 반성이 있어야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언젠가 땅은 뒤집힐 테나 공감대가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진 무릇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쌓이기까지 그들의 시행착오는 반복된다.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여곡성’은 배우 손나은의 좋은 밑거름이 될 테다. 하지만 결과물이 안 좋은 것 역시 사실. ‘제2의 옥분’ ‘제3의 옥분’을 언제든 마주할 수 있다는 게 공포 영화 ‘여곡성’이 주는 가장 큰 공포다.(사진제공: 스마일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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