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11월21일 ‘뷰티풀 데이즈’가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뷰티풀 데이즈’는? 결말 ‘스포’는 없다.
★★★☆☆(3.3/5)
“사진 뒤에 주소 적어 놨다.” 아빠(오광록)가 입을 뗀다. 그는 지금 아프다. 오래 못 사는 그의, 소원은 “죽기 전”에 아내(이나영)를 만나는 것. 몸이 불편한 아버지는 그 대신 아들 젠첸(장동윤)을 남조선으로 보낸다. 네온 사인 불빛이 젠첸의 얼굴을 감싼다.
집 나간 엄마의 직업은 술집 마담. 손님이 찾는다며 얼른 택시 타고 오라고 직원을 종용하는 모습은 그가 기대한 엄마와 매우 판이하다. “어째 그런 데서 일합니까?” 엄마가 답한다. “왜? 내가 하는 일이 뭐가 어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젠첸에게 엄마 곁 애인(서현우)은 눈엣가시다. 이에 아들은 용서 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른다.
배우 이나영의 복귀작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 도입부 역시 이나영의 몫이다. 클럽 조명에 색색으로 물든 금발과, 짙은 화장은 그가 배우였음을 기억케 한다.
하지만 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감독의 연출이다. 프랑스에서 약 13년간 생활하며 다큐멘터리 ‘마담B’ 등을 만들어온 그는, 15회 차로 촬영을 끝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 최선을 해냈다. 소위 ‘미장센’은 윤재호 감독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 밤거리 조명은 인물의 내면을 대변하듯 그들의 얼굴에 내리쬐고, 슬로 모션은 쉬어갈 수 있는 느낌표를 손에 쥐어준다. 104분 러닝 타임 동안 약 7번의 슬로 모션이 사용됐다.
빈 수레만 요란한 건 아니다. 그간 단편 영화 ‘약속’ ‘히치하이커’, 다큐멘터리 ‘북한인들을 찾아서’를 만들어온 윤재호 감독은, 한반도 분단 문제에 관해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해온 이다. 그의 첫 장편극 ‘뷰티풀 데이즈’에도 분단은 깊게 녹아있다.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이제 배부른 소리하네. 내가 너를 북조선에서 여기까지 오게 하는 데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아?” 황사장(이유진)은 탈북민을 이용해 사업을 벌이는 야비한 중국 조선족. 북에서 중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온 이는 “같은 민족”에 의해 자유를 핍박당한다. 젠첸 엄마(이나영)도 그에게 몸이 묶인 피해자다. 갖은 범죄에 이용되는 그의 과거는, 미래의 일상이 아름다운 날들로 빛날 수 있는 밑바탕이다.
작품의 시작은 치정극스럽다. 엄마 애인(서현우) 시선에서 젠첸의 등장은 ‘낯선 남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우리 집에 들어왔다’에 불과하다.
이를 부드럽게 하는 건 인물과 인물을 향한 감독의 정서적 접근으로, 덕분에 기존 탈북민 영화와 ‘뷰티풀 데이즈’는 다른 궤를 가진다. 그리고 이때 사용된 중복 및 유사점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를 준다. 전구, 강아지는 일상 객체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다. 만류, 폭력, 위로, 노래 등은 재차 등장해 영상 언어의 형태소가 된다.
궤가 다르기에 ‘뷰티풀 데이즈’는 가족의 이야기다. 젠첸 아빠, 젠첸 엄마, 황사장, 젠첸 그리고 엄마 애인은 ‘유전은 오직 피로써 가능한가?’ ‘자발적으로 형성된 가족과 폭력으로 완성된 가족은 무엇이 다른가?’ ‘가족의 완성에 혈육은 필요 조건인가?’ 등의 질문을 건넨다. 끝에 가선 가족의 재탄생과 희망을 동시에 꺼내놓는다. 희망을 손에서 놓지 않았기에 가족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운 가족은 그 자체로 등장인물의 희망이 된다.
그리고 이나영. 사실 대중의 눈에 ‘뷰티풀 데이즈’는 윤재호의 영화가 아닌 이나영의 영화다. ‘6년 만의 복귀작’ ‘노 개런티 출연’ 등의 자극적 문구가 귀를 자극한다.
그의 연기는 ‘뷰티풀 데이즈’가 탈북민을 다루는 방법과 일맥상통한다. 다른 배우와 궤가 다르다. 지난 2006년 배우 오광록은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함께 출연한 이나영에 관해, “그의 연기가 한결같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배우에게 연기의 전형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조금 더 발전하면 세계적인 배우가 될 것이란 덕담도 건넸다.
오광록의 통찰처럼 이나영의 연기는 다르다. 그래서 미묘하다. “무슨 일이 있었니? 누구랑 싸웠어? 말해봐.” 엄마가 젠첸을 걱정하는 신에서 배우의 대사는 물음표를 남긴다. 그리고 그 미묘함은 엄마의 젊은 시절 격정 신과 결합해 훌륭함이 된다.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가 전형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나 개화한 셈. 또한, ‘CF 스타’의 외모는 탈북 여성의 굴곡을 상쇄시키나 그의 팬에게 여전히 빛나는 그 외모는 ‘포상’이기까지 하다.
‘뷰티풀 데이즈’는 “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영화”란 감독의 말처럼 어렵지 않은 영화다. 더불어 탈북민을 소재로 다룬 순제작비 4억 원, 손익분기점 10만 명의 작은 영화임에도 유명 배우가 다수 출연해 거리감 상쇄까지 꾀했다. 영화 ‘죄 많은 소녀’에 이어 또 한 번 얼굴을 비추는 서현우, 황사장을 연기한 이유준도 주목할 만하다.
“어렵지 않고요. 어렵지 않은 새로운 색감의 영화예요.”
주연 배우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를 향한 못 다한 말을 부탁하자 이 같이 말했다. 그의 언급처럼 어려운 영화처럼 보인다는 게 이 영화의 제일 큰 장애물이다. 이나영은 “비대중적이지 않”은 ‘뷰티풀 데이즈’를 흥행으로 이끄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만능 열쇠로 칭하기엔 그의 필모그래피가 쌓아온 성적(‘하울링’ 약 161만 명,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약 17만 명, ‘비몽’ 약 8만 명)이 얄팍하나, 톱 배우가 대형 예산이 투입된 영화 대신 그가 원하는 영화를 좇았다는 의의는 퇴색되지 않는다.
대중성과 작품성의 양립은 충무로의 난제다. 게다가 ‘주52시간 근무제’를 최근 한국 영화 흥행 참패의 원인으로 오인하는 등 갖은 설이 난무하는 현 영화계다. 어쩌면 ‘뷰티풀 데이즈’는 그가 원하는 연기를 하고 싶은 배우와, 달고 짜기만 한 상업 영화에 지친 관객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닐까.(사진제공: 페퍼민트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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