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기자의 사만모①] 바리스타 한지안, 가슴에 태극기를 달기 위해

입력 2018-12-18 20:49   수정 2018-12-21 14:08


[김강유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사.만.모. 서울패션위크 취재 9년 차 기자가 ‘사심으로 만난 모델’들을 소개한다.

새로운 한 해가 열흘 남짓 남았다. 2018년의 마지막 [사만모]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모델을 만나기로 했다. 어쩌면, 기자가 ‘사심으로’ 알고 지내는 모델들 중에는 가장 특별할 수 있는 친구를 소개한다. 패션모델로는 산전수전 다 겪은 11년 차의 베테랑이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국가대표를 목표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 준비를 하고 있는, 아마도 기자 주변의 모델들 중 가장 바쁘게 살고 있는 모델 한지안이 이번 [사만모]의 주인공이다.

대중적으로 한지안을 소개하려면 이 시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4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때는 2014년. 가슴 아픈 사건들로 다사다난했던 그 해에,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선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이하 도수코)’의 다섯 번째 시즌 ‘가이즈앤걸즈(GUYS & GIRLS)’가 색다른 모델들의 도전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모았다.

해당 시즌은 숱한 화제를 모았던 만큼 출연했던 모델들의 면면도 화려했지만 또 하나, 소위 말하는 ‘역대급’ 클립영상을 하나 남겼다. 아직까지도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역대급 메이크오버 실패’ 혹은 ‘최악의 메이크오버’ 식의 제목으로 올라오는 그것. 시즌 영상 중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모델 한지안의 메이크오버 영상이다.

가슴 밑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서 파격적인 숏헤어로 변신했지만 심한 곱슬머리였던 그는 메이크오버 후 본인의 모습을 보며 울음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아직까지도 그를 만나면 ‘머리 잘렸던 모델’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도수코’ 방송 이후 한지안은 함께 출연했던 모델들과 조금은 다른 행보를 시작했다. 머리를 다시 기르고 모델 활동도 다시 활발해졌지만, 그는 이제 패션모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원치 않았던 공백기를 지나며 그의 아이덴티티는 세 갈래로 나뉘었고 놀랍게도 모두 정착에 성공했다.

평소 기자가 본 한지안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초긍정’의 아이콘이었으며, 어느 곳에서나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핵인싸’의 표본이었다. 만날 때 마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맞이해줬던 그를, 새해를 앞두고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인터뷰이로 마주했다. 이번 인터뷰이는 패션모델이면서, 바텐더이고, 바리스타다.


처음 만날 한지안은 공식 국가대표에 도전하고 있는 ‘바리스타 한지안’이다. 올해 큰 대회를 마친 그의 근황부터 물었다.
 
“얼마 전에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 나갔어요. ‘월드 커피 인 굿스피릿 챔피언십(World Coffee in Good Spirits Championship/이하 굿스피릿)’이라고, 세계에서 권위 있는 6가지 대회 중 하나예요. 이 세계대회에 진출할 한국 대표를 뽑는 대회에 나갔죠. 커피를 이용해서 칵테일을 만드는 대회구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5위를 했어요. 최종 1명만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대회라서 이번엔 세계대회까진 가지 못했습니다. 이 대회 후에 바텐더 대회 4개를 더 나갔어요. 대회하면서 중간 중간에 촬영하고 패션쇼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커피 국가대표 선발전에 제대로 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2년 전에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라는 세계 대회의 한국 대표를 뽑는 ‘KNBC(Korea National Barista Championship)’를 준비 하다가 나가지 않았어요. 사정 상 준비하던 대회를 안 나가게 됐는데, 마침 ‘굿스피릿’ 대회는 제가 바텐더를 같이 하고 있다 보니까 저한테 굉장히 큰 의미였죠.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내년 3월에 열리는 ‘2019 굿스피릿’을 다시 준비하고 있어요.”

가슴에 국기를 달고 세계에 나간다는 것.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개인의 영광이자 국민의 자부심이다. 공식적으로 태극기가 달리는 국가대표를 떠올린다면 일반적으로는 스포츠 분야의 그들일 테다. 스포츠 국가대표가 아닌 바리스타 국가대표. 아직은 낯 선 분들이 많은 분야일 듯싶다.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은 커피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대회예요. 바텐더 대회는 그냥 특정 브랜드들이 진행하는 건데, 바리스타는 정말 말 그대로 국가대표로 인정이 돼요. 인터넷 검색을 해도 그 해의 국가대표는 프로필에 태극기가 같이 뜨죠.”

“바리스타 대회는 파트가 여섯 가지가 있거든요. 제가 나간 ‘굿스피릿’ 대회는 그 중에서 칵테일이 들어가는 유일한 파트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WBC 같은 경우는 바리스타로서 내가 얼마나 시그니처 커피를 잘 뽑고, 스킬이 얼마나 좋고, 커피에 대한 가능성을 많이 뽑아내는지에 대한 경합이고요. 그 외에도 라떼아트, 브루잉, 로스터 등등 종류가 되게 많아요.”


스포츠 국가대표들은 대회 한 번을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바리스타 국가대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떨까.

“보통 대회 준비하게 되면 퇴근하고 첫 차 뜰 때까지 연습해요. 한 아침 7시까지 연습하고 집에 가서 씻고 잠을 조금 자요. 그리고 2~3시 정도에 출근을 해서 또 그때부터 연습하고. 준비할게 생각보다 되게 많아요. 7~8분 정도의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해야 되고, 레시피 창작하는 것도 준비하고, 먹어보러 많이 다니기도 하고, 재료 구하러 다니고. 작게는 잔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준비를 하게 되는 거죠.”

“일단 원두를 선택합니다. 커핑 테스트라고 해서 여러 가지 원두를 다 맛을 봐요. 그것들 중에 제가 하고 싶은 콘셉트와 잘 맞거나 마음이 맞는 원두가 있어요. 끌리는 친구가. 그걸 선택해서 그것과 맞는 칵테일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추출 비율을 고민하죠. 원두를 몇 그람을 넣어서 몇 미리를 추출할지에 대한 것들. 보통 한 번 대회에 나가면 원두를 한 100kg 씩 쓰거든요. 22그람 넣어서 35미리 추출해보고, 그런 식으로 계속 경우의 수를 바꿔가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원두가 로스팅이 된 시점부터 계속해서 맛이 바뀌어요. 그러면 일주일 간격으로 로스팅을 다시 해오거나, 아니면 처음에 아예 로스팅 할 때 대회 날짜에 맞춰서 로스팅을 해 와요. 저 같은 경우는 호주에서 공수를 해오는 편이에요. 호주에서 로스팅을 해서 원두를 가지고 들어오면 그 때부터 테스트를 하는 거죠. 제가 사용할 원두가 대회 당일에 최적의 맛을 낼 수 있게. 그래서 그걸 기반으로 칵테일을 만들어요.”

“칵테일뿐만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것들도 준비해요. 음악 선곡은 어떻게 할 건지, 칵테일의 어떠한 기법을 사용할 건지, 잔은 어떤 걸 쓸 건지, 시각적인 요소로 재미있는 건 뭘 할 건지, 그리고 내가 진행을 얼마나 매끄럽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습을 루틴을 짜서 계속 하는 거죠. 저는 8분 정도에 끊어요. 전체가 다 짜이고 나면 계속 그 8분짜리 루틴을 연습하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청 많은 것을 혼자 준비하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부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리스타 한지안의 소속에 대해 물었다.

“그렇죠. 그래서 소속 회사가 있어야 서포트가 들어오죠. 내가 마셔보고 싶은 원두를 구해주거나, 대회에 사용할 기물은 어떻게 제작할 건지에 대한 것들, 연습할 공간이나 시간에 대한 것도 조율해주고. 회사가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코치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현재 저는 에크미커피솔루션이라는 회사에 소속 바리스타로 함께 하고 있어요. 대표님이 아카데미를 준비하고 계셔서 낮엔 그쪽에 강사로 나갈 예정이에요.”

“소속 바리스타로 하는 일은, 회사에서 새로 들여온 원두나 머신이나 템퍼 같은 게 있으면 테스트 해보고 어떤지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기도 해요. 카페쇼 같은 행사가 있으면 가서 마스코트 같은 역할도 하고. 11월에 ‘2018 카페쇼’에도 회사 소속으로 참석했어요. 사실 저는 지금은 거의 대회 준비만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대회 나가는 것과, 차후에 있을 아카데미에 대해서 어떻게 커리큘럼을 짤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죠.”


모델과 바리스타. 어울리는듯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다. 전문적인 바리스타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듯하다.

“제가 스무 살이 되면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처음 하게 됐어요. 근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같이 근무하던 점장님이 새로 오픈하는 곳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트레이닝을 하면서 오픈을 도와드리게 됐는데, 그 때 거래처에 계셨던 분이 지금 제 커피회사 대표님이세요.(웃음)”

“하다보니까 또 잘 맞고. 모델 일이 항상 고정적인 건 아니잖아요. 그 와중에 내가 힘든 거나 자괴감이 든 다거나 왜 일이 없지 라거나 그런 것에 대한 탈출구였던 거죠, 저한테는.”

사실 많은 모델들이 소위 ‘부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국가대표로의 도전은 단순히 겸업의 수준이 아니다. 대회는 언제부터 준비하게 됐을까?

“대회는 스물한 살 때부터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도 있고, 해외도 나갔다오고. 조금 시간 지나서 ‘도수코’도 나가고 이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그 후에 제가 머리가 잘리고 나서 3년 정도 일을 못했어요. 머리가 너무 상해서 일이 다 잘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그 때 ‘대회를 목표로 도전해봐야겠다’ 했는데, 대회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가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올해에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져서 나가게 됐죠.”


내년 3월에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을 뽑는 대회가 열린다. 바리스타 국가대표는 1년에 단 한 명. 그 한명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1년간 활동하며, 11월에 열리는 세계대회에 나가게 된다. 올해에는 주최하는 협회의 사정상 준비가 늦어져 9월에 선발전을 치렀다. 9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한지안은 첫 출전에 5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5위는 별 건 없는데, 커피 업계가 워낙에 좁다보니까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 걸 굉장히 신기해해요. 그동안 첫 선발전에서 랭킹이 된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예선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갔어요. 그래서 (업계 쪽) 관심을 좀 많이 받고 있어요. 예선 성적이 워낙 좋아서 사람들이 ‘잘하면 쟤가 우승하는 거 아니냐’ 이랬는데, 제가 말아먹었죠(웃음)”

“참가는 50명 정도 나오세요. 제가 나가는 대회는 사실 커피와 칵테일 두 가지를 다 할 줄 알아야 나올 수 있잖아요. 다른 대회 같은 경우에는 하시는 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참가 제한을 둬서 150명 정도 출전하죠.”

모두가 공감하듯이 한국은 커피숍의 천국이기도 하다. 큰 골목 작은 골목 할 것 없이 커피숍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바리스타만 따진다면 어마어마한 인원이 그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 그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선발되면 공식적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게 된다. 국가대표 한지안, 과연 어떤 느낌일까.

“울 것 같아요. 울어야 될 것 같아서. 안 울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웃음) 사실 굉장히 책임감과 부담감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동안 ‘굿스피릿’ 세계 대회에서 한국 분이 파이널에 랭크된 게 두 번이고 최종 순위권에 든 건 아무도 없었거든요.”

“이게 사실, 한국에서는 바리스타 분들이 더 많이 나오는데, 세계 대회는 바텐더들이 더 많이 나와요. 아무래도 맛 표현이라던가, 좀 다른 면들이 있다 보니까. 그래서 더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아니지만, 조용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고자 하는 그를 여기서도 조용하고 뜨겁게 응원하고자 한다. 얼어있는 몸을 녹여주는, 어느 겨울의 휴일에 맞이하는 따스한 커피 한 잔처럼.

이어지는 인터뷰는 바텐더와 패션모델에 대한 이야기.

[G기자의 사만모①] 바리스타 한지안, 가슴에 태극기를 달기 위해 (기사링크)
[G기자의 사만모②] 바텐더 한지안, 멈출 줄 모르는 대회요정 (기사링크)
[G기자의 사만모③] 패션모델 한지안, 굳건하게 한 걸음 더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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