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12월26일 개봉작 ‘PMC’ 윤지의 役
배우 이선균(43)은 두 아이의 아빠다. 여느 40대처럼 게임과 친하지 않은 그이지만, 같이 게임 하자며 떼쓰는 아이들 탓에 ‘배그(배틀그라운드)’는 안다. 오늘도 아빠는 아이들 성화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할 줄도 모르면서 함께 전장에 뛰어든다.
아이들에게 ‘배그’가 있다면 아빠에겐 ‘걷기’가 있다. 성북동과 평창동이 종로에 사는 그가 보통 걷는 코스. 성탄절에는 과식을 이유로 4만 보(步), 32km나 걸었다.
룩이와 룬이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아빠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의 환기다. 걸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부작용에도 불구, 그가 혼자 걸으면서 내린 결론은 “시대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잘 늙어가고 싶”다는 것.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선균과의 인터뷰를 총 일곱 개의 문답으로 전한다.
―영화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이하 PMC)’로 돌아왔다.
2018년 두 작품을 선보였다. ‘나의 아저씨’와 이번 ‘PMC’. 두 작품 모두 남에게 당당히 권유할 수 있기에 마음이 뿌듯하다. 지난해엔 ‘미옥’으로 관객 분들을 만났다. 누아르 장르 첫 도전작이었다. ‘PMC’도 그간 안 해본 것에 도전한 작품이다. 이렇게 버짓(Budget) 큰 영화를 했던 적이 없다. (하)정우 씨랑 가까워지고 싶은 것도 출연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팬덤 두꺼운 배우 아닌가. 배우는 작품을 통해 친해지는 법이다.
―게임 같은 연출이 눈에 띈다. 호불호가 크게 나뉜다.
우리 영화 관람 후에 게임하고 싶다는 분들께서 더러 계시더라. 관객 분들이나 시청자 분들께서 작품이 끝나고 뭔가 하고 싶다고 느끼신다면, 그 이유는 작품이 어떤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말씀이 되게 반갑더라. ‘마약왕’도 그렇고, ‘스윙키즈’도 그렇고, 지금 한국 영화 파이가 많이 줄었다. 난 그 이유를 극장에서 볼 영화와 아닌 영화를 구분 짓는 거에서 찾고 싶다. ‘아쿠아맨’이나 ‘범블비’는 아직 안 봤다. 하지만 연말 할리우드 영화의 강점은 시각적 강렬함이다. 그걸 체험하고 싶은 욕구가 극장 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영화도 그들과 비슷한 장점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게임에 익숙한 젊은 층이 받아들이는 문법은 좀 다른 듯하다.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북측 엘리트 의사 윤지의 역을 맡았다. 남에서 온 에이헵과, 윤지의가 벙커를 탈출하기 위해 함께 힘을 뭉치는 게 ‘PMC’의 주요 골자다.
윤지의 대표 대사가 있다. “야, 사람 살리는 데 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네?” 한국 영화 속 북한 사람은, 보통 직업이 군인이다. 그리고 정치적 이념이 굉장히 강하다. 이념에 틈이 생긴 그가 남한 사람과 우정을 쌓아가는 게 주요 패턴이다. ‘공작’도 그렇고, ‘강철비’도 그렇다. 근데 윤지의는 정치적 이념보다 직업 가치관과 이타적 마음이 강한 친구다. ‘PMC’는 에이헵의 갈등과 선택이 반복되는 영화다. 윤지의로서 그 선택에 영향을 줘야 했다.
의사 역을 또 맡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가운 입는 의학 드라마가 아니지 않나. 다만 그건 있다. ‘하얀거탑’이나 ‘골든 타임’에서 보여드린 의사 비주얼보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내가 윤지의 역을 맡게 된 듯하다. 어떤 이는 윤지의에게서 ‘하얀거탑’ 최도영이 보였다고 하더라. 표현은 완전히 다르지만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 이타적 마음이 보인다고 했다. 그 이미지를 갖고 오고 싶은 의도가 캐스팅에 투영됐다고 본다.
―김병우 감독과의 작업 소감이 궁금한데.
정말 꼼꼼한 분이시다. (하)정우가 농담으로 이과 성향 감독님이라고 얘기했는데, 나는 거기에 건축가를 덧붙이고 싶다. 모든 게 머릿속에 있다. 밑그림에, 어느 포인트에 감정을 넣을지 알려주는 그래프에. 표준 계약이 업계에 들어온 후 제 시간에 빨리 구축해야 하는 부담이 감독님들 사이에 퍼졌다. 즉흥적으로 “이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게 요즘엔 많이 없다. 김병우 감독님은 그런 면에서 가장 꼼꼼하고 지금 현장에 최적화된 감독님이시다.
―번외로 묻겠다. 불필요한 노동력을 쓰지 않고 제 시간 안에 찍는 게 맞다. 그러나 예술은 즉흥성이 필요한 분야다. 배우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감독님에게도 배우에게도 지금은 과도기다. 옛날엔 촬영분을 모니터 한 후에 감독님들께서 의견 제시 등을 하시곤 했다. 근데 이제는 “아휴 후반 때 어떻게 한번 바로잡아보자” 하신다.(웃음) 테이블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의 아저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방영 중간 열린 기자간담회는 문자 그대로 ‘열띤’ 현장이었다. 작품을 향해 쏟아진 부정적 의사에 관해 한번 피력해 달라.
국정감사 받는 기분이었다.(웃음) 몇몇 기자 분들께서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계시더라. 물론 예민한 시기였다. 미투 운동에 젠더 간의 갈등까지.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불량 식품 취급을 받았고, 그것에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 근데 그때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아이유도 그렇고, 모든 배우들이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 했다.
―‘PMC’ 출연진 중 나이가 제일 많다고 들었다. 로맨틱 코미디, 멜로 장르에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이선균도 나이를 먹는다.
“로코(로맨틱 코미디)나 멜로에 자주 출연하셨잖아요?”란 질문을 받곤 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 할 때의 나는 청춘을 경험했고 또 대변했다. 지금 ‘나의 아저씨’ 찍을 때의 나는 40대 중반의 가장을 대변한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건 배우로서 당연한 목표다. 더불어 난 시대에 맞게, 내 나이에 맞게 잘 늙어가고 싶다. 시대에 어울리는 배우, 시대를 공감케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잘 살아야 될 거 같다.
한편, 영화 ‘PMC: 더 벙커’는 글로벌 군사 기업(PMC)의 캡틴 에이헵(하정우)이 CIA로부터 거액의 프로젝트를 의뢰 받아 DMZ 지하 30m 비밀 벙커에 투입돼 작전의 키를 쥔 닥터 윤지의(이선균)와 함께 펼치는 리얼 타임 전투 액션. 12월26일부터 상영 중이다.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410만 명. 순제작비 120억 원.(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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