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에 남북 첫 합작 조립공장 설립, 관광 대신 추진한 것
-평화자동차 북한 진출 과정 및 신차 개발 뒷이야기 풀어내
남북 관계 긴장이 완화되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경제 산업 진출에도 희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부터 철도와 자동차 등 운송수단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상황. 이와 함께 17년 전 북한에 들어가 자동차 공장을 짓고 차를 만들었던 평화자동차가 새삼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중심에는 전기차 개발 회사인 새안 이정용 대표가 있다. 당시 4년간 연구실장으로 지내며 공장 설립과 신차 개발, 기술 교육, 홍보까지 도맡은 평화자동차 실무의 산증인이다. 그는 본지와 만나 북한을 여러 차례 오가며 겪었던 수 많은 일화를 쏟아냈다. 과연 남북 첫 합작공장에서 생산, 판매된 '뻐꾸기'와 '휘파람'은 어떻게 북한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대표가 북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호주에서 자동차 디자인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 관련 일을 하던 터에 대학교 동창의 연락을 받고 평화자동차에 입사한 것. 당시 국내 출시 목표로 소형 전기차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박상권 평화차 사장이 도면을 보여준 후 북한에 공장을 짓는다며 이 대표를 설득했다. 때마침 15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남북 화해모드가 조성되는 시기였다.
장소는 평양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남포였다. 항구가 있어 수출에도 유리한 장소였다. 공장은 해안에서 3㎞ 떨어진 곳에 지었는데, 70만 평 땅에 생산라인 10개동을 짓고 1동에 1만대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물론 공장을 짓기 위한 자재는 모두 한국 인천항에서 배에 실어 남포항으로 실어왔고, 공장 건설은 모두 북한 현지 인부를 동원했다.
공장을 짓고 40명 남짓으로 TFT를 꾸렸다. 엔지니어는 해외 경력자들 위주로 뽑았다. 특히 닛산이나 토요타에서 조기 은퇴한 기술자가 신차 개발에 대거 투입됐다. 한국인은 이 대표를 포함해 10명 내외였다. 이 대표는 당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나서 원활한 사업을 하도록 도와줬고 북한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줬다"며 "북한 보위부가 1:1로 붙어 같이 따라다녔지만 이동 제약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생산 차종은 세 종류였다. 북한에서 아반떼급 세단과 밴을 원했고 검토를 거쳐 피아트 시에나와 이스즈 픽업을 선정했다. 이 대표는 "여러 자동차 회사와 접촉해 플랫폼을 요청했지만 북한과 관계를 우려해 제공을 꺼려했다"며 "연락이 온 두 회사에서 플랫폼을 받아 현지에 맞게 바꿨다"고 말했다. 차명은 각각 '휘파람'과 '뻐꾸기'로 정했다. 상징성을 고려해 북한의 최고 존엄(?)이 직접 작명했다는 게 이정용 대표의 전언이다. 이후 평화자동차는 쌍용차 체어맨을 반제품 상태로 가져와 북한에서 조립한 뒤 '준마(俊馬)'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가장 잘 나간 차는 관공서에서 수요가 많았던 휘파람이다. 준마는 생산 대수가 많지 않았지만 벤츠 대용으로 북한 고위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자동차 공장인 만큼 관심은 뜨거웠다. 북한 고위층은 물론 당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직접 찾아와 시설을 둘러봤다. 이어 북한의 최고 지도자도 밤에 혼자 조용히 왔다 갔다는 게 이 대표의 증언이다. 이 외에 평양에서 처음으로 모터쇼를 열어 북한 시민에게도 공개했다. 이 대표는 "3대혁명 전시관에서 고위 간부한테만 보여주기로 돼 있었지만 완성된 무대와 차를 본 뒤 놀라며 평양 시민들에게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또 "차를 설명할 안내 도우미가 필요했지만 북한 측은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급히 한국에서 화려한 한복을 갖고 왔다"는 모터쇼 뒷이야기도 전했다.
공장 완공 후 평화자동차는 중국과 베트남에 차를 수출하면서 규모를 넓혀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 관계는 차갑게 식었고 분위기 상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회사가 악화되자 이 대표는 2004년 말 평화자동차에서 나와 EV존이라는 사명을 걸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후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레오존을 설립했고 미국 장외시장(OTCQB)에 상장하면서 레오모터스로 이름을 바꾼 뒤 전기차를 만들었다. 레오모터스는 주로 대기업 하청을 맡았다. 로템의 전기 탱크를 비롯해 1.5톤 전기 트럭과 쌍용자동차 코란도 C 전기차 등 20여 종을 만들었다.
하지만 레오모터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대표는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 시점에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회사를 빼앗겼고 순식간에 빚더미를 안은 채 실직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2013년 가을에 새안을 설립했다. 2년간 동종 업계에서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처음에는 전기 기타를 만들어 팔아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2015년 이후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고 미래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회사는 성장 중이다. 새안은 다음 달 OTCQB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대표는 "상장이 되면 미국에서 본격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사업 타당성을 보고 규제 완화와 정치적인 부분이 해결된다면 북한에 안 갈 이유가 없다"며 "북한은 인프라가 열악하기에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인 REEV(Range Extender Eletric Vehicle) 형태로 출시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북한에서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겠다는 관심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북한에는 평화자동차가 유일한 완성차기업이지만 생산은 하지 않고 주로 중국 완성차를 수입해 판매한다"며 "훗날을 대비해 한국차의 CKD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용 대표의 큰 그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새안이 만든 전기차가 북한 땅을 돌아다니는 상황을 기대하는 것.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은 어렵지만 점진적으로 북한 내 완성차의 생산 가능성은 꽤 높은 만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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