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기묘한 가족’, 사투리는 조용하지 않다

입력 2019-02-16 09:00  


[김영재 기자] 2월13일 ‘기묘한 가족’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기묘한 가족’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

주유소집 첫째 아들 준걸(정재영)의 돈벌이는 ‘사고 차량에 바가지 씌우기’다. 둘째 민걸(김남길)은 도시에서 영업 사원으로 뛰는 중이고, 막냇동생 해걸(이수경)은 누구 성질을 닮았는지 채 한 달을 못 참고 애완동물을 죽이곤 한다. “아이 러브 유” 따위를 외우고 다니는 아버지 만덕(박인환)의 소원은 하와이로 여행 가기. 결혼 10년 만에 뱃속에 ‘대박이’를 가진 맏며느리 남주(엄지원)는, 이 각양각색 네 식구를 아우르는 집안의 실세다.

이 가운데 좀비 쫑비(정가람)가 적막을 깨고 ‘풍산 주유소’ 창고에 찾아든다. 쫑비에게서 사업 가능성을 엿본 만덕 등은 그를 벌이에 이용해 주유소 재건을 목표하고, 쫑비의 ‘회춘 바이러스’ 덕에 마을은 활기로 가득 찬다. 허나 젊음의 부작용일까? 사람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 찬바람 앞에 꾸역꾸역 모여든다. 마치 좀비라도 된 것처럼.

영화 ‘기묘한 가족(감독 이민재)’은 느닷없이 나타난 좀비 때문에 온 가족이 전에 없던 사업에 뛰어드는 내용을 다루는 작품. ‘바람난 가족’ ‘고령화 가족’ 심지어 ‘간 큰 가족’까지 그간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다양한 영화가 관객과의 접점을 가져왔으나, ‘가족’ 그리고 ‘사업’이라는 두 요점만 놓고 보면 ‘기묘한 가족’은 ‘조용한 가족’의 배다른 아우다.

“이장 아저씨의 소개로 산장을 싼값에 구입해 생전 해보지도 않던 숙박업을 시작한” 옛 가족과, 이구동성으로 자신도 물리고 싶다고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줄을 서시오” 하는 현재의 가족은 평범하지 않은 코미디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놀랍게도 정재영과 박인환은 각각 제비 역과 아버지 역으로 ‘조용한 가족’에 출연했던 바 있다.

준걸은 말한다. “가족이 뭐 별거야? 그냥 같이 밥 먹고 잠자고 싸고 그러면 다 가족인 거지?” 이처럼 가족은 혈연이 필연돼야 한다는 세간의 편견과 다르게 의식주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누구든 그 울타리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단위다. 그리고 그 느슨한 단위는 해걸이 애완동물로 키우고자 한 좀비 쫑비로 ‘기묘한’을 얻는다. 영화 ‘부산행’에나 나올 법한 좀비가 충청도 어느 시골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건 최근 극장가에 코미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극한직업’의 기발함과 그 어깨를 겨눌만하다.

허나 도입부가 시선을 끌 뿐 ‘기묘한 가족’은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대신 ‘충청도 사람이 등장하는 좀비 영화’에 방점이 찍힌 영화다. 그르렁거리기만 할 뿐 생전의 말하는 법을 잊은 좀비가, 느릿느릿한 말투가 재미를 안기는 충청도 사투리를 만났을 때의 화학 작용은 다행히 ‘기묘한 가족’만의 것이다. 일례로 쫑비와 마주친 행인이 “누구여?”, “몰러여?” 하는 모습은 충청도의 느릿함에 압도된 좀비의 의아함으로 관객을 웃게 한다.

1월30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정재영은 “처음 시도해본 충청도 사투리였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사투리의 미진함에도 불구, 정재영은 형제자매를 아울러야 할 첫째 준걸의 몫을 출연진 가운데에서도 훌륭히 해내 동료 엄지원, 김남길, 이수경의 숨구멍을 틔운다. 난데없는 동창회가 억지로 안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순박한 준걸을 바보 같은 가장으로만 안 그려낸 데 있다. 인정 많은 이와 바보를 한 끗 차이로 표현한 그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연기 전문가다.

엄지원도 열연했다. 그의 시니컬한 대사가 귓가에 닿자마자 웃음이 터지는데, 비장함까지 불러 모으는 남주의 목소리는 마치 폭력배 두목의 말하기를 연상시킨다.

아쉬움은 ‘기묘한 가족’의 코미디가 ‘조용한 가족’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좀비에 의해 세상은 각종 비정상이 판치는 그 민낯을 드러내고 흩어진 가족은 한 데 뭉치지만, 비극이 없기 때문에 블랙 코미디 역시 없다. 그렇다면 관객이 ‘기묘한 가족’에서 마주하는 코미디는 무엇인가. 그가 태어난 고향 충청도를 배경으로 내세운 것 외에도 이 감독은 슬로우 모션 및 자막, 좀비에 대항하는 우스꽝스럽고 다분히 한국적인 무기, 전장의 반전(反轉) 등을 배치시키지만, 그 모든 것은 한 신인 감독의 재기발랄함으로 귀결되고 만다. 게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신선함은 개운치 못한 웃음으로 까끌까끌함마저 남긴다.

산장 손님의 자살을 타살로 오인 받지 않기 위해 시체를 묻기 시작한 가족이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조용한 가족’이 위대한 건 비극과 죽음 등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승화되는 일이 가히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쫑비 때문에 와해된 준걸이네와, 극 중 한 인물의 탄생으로 와해된 준걸이네를 서로 대비시키면 어땠을까. 엔딩 크레디트에서 ‘애써 힘써준 좀비님들’로 소개된 단역 배우들의 노고에는 박수를 보내나, 그들이 애써 힘써줬음에도 ‘좀비도 등장하는 사투리 영화’로 그친 건 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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