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2월20일 ‘사바하’가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사바하’는?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3/5)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영월 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진다. 동생 금화(이재인)의 우렁찬 울음이다. 금화에겐 그보다 10분 일찍 태어난 쌍둥이 언니 ‘그것’이 있다. 의사는 언니에 대해 오래 못 살 생명이니 괘념치 말라 일렀지만, 죽어야 함에도 죽지 않은 반쪽을 위해 열여섯 금화는 오늘도 양푼에 밥을 비빈다. 한편, 그 자신을 빛과 소금에 비유하는 박 목사(이정재)는, 종교의 구린 구석을 파헤치는 연구소 소장이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사슴동산으로 불리는 불교계 신흥 종교로, 단군도 관웅도 아닌 장군을 신으로 모신다는 점, 게다가 영월 터널에서 발견된 여중생 사체까지 얽히며 의문은 날이 갈수록 증폭된다.
마침내 사슴동산 교주와 금화 언니 ‘그것’의 연결 고리가 밝혀지고, 두려움을 느낀 박 목사는 시편 59장을 매개로 그간 외면해온 신을 애타게 찾는다.
불경 읊는 소리와 쇠로 주물된 듯한 타악기 소리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는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얽히고설킨, 다시 말해 순환되는 작품이다. 전작을 통해 입봉에 성공한 장재현 감독이 성취와 길사를 뜻하는 불교 진언 사바하(娑婆訶)를 제목으로 내세운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검은 사제들’이 가톨릭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사바하’는 이교(二敎)를 아우르며 하나님과 구세주, 여래와 미륵 등을 군데군데 배치시킨다.
열반과 순교에 의한 성인(聖人)의 두광, 항마경과 요한계시록 등 이교(異敎)의 공통점 열거가 무리한 대입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장재현 감독의 내공 덕이다.
‘검은 사제들’에서 김 신부는 불교에선 음력 7월15일을 우란분재라고 부른다며 하늘이 아귀들에게 공덕을 베푸는 이날이 아이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말한다. 감질났던 동서양의 배합이 ‘사바하’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불교의 향은 해안 스님(진선규)과 박 목사가 머리를 맞댈 때 증폭되고, 관객은 법당 탱화를 기점으로 사슴동산이 과연 어디부터 시작됐는가를 기독교인의 시선으로 차분히 따라가 본다.
오컬트 요소에도 불구, ‘사바하’는 영화 ‘곡성’이 아니다. 코미디 없는 ‘탐정’에 가깝다. 만약 이 영화가 오컬트 영화로 오인 받는다면 그 이유는 여러 장르적 장치 때문. 금화는 ‘그것’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상처받은 인물이고, 찬송가 250장은 그 노래가 불리는 배경 탓에 등장부터 공포스럽다. 환영인지 아닌지 구분 안 가는 귀신도 등장한다.
‘그것’은 무엇이고, 이단(異端)의 교주는 누구이며, 터널 사체와 나한(박정민)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추리하는 박 목사와 요셉(이다윗)의 모습은 흡사 홈즈와 왓슨 같다. 단서도 차곡차곡 쌓인다. 밀교, 장군, 실패작, 아버지, 팥, 부적, 뱀, 성불 등. 그리고 한 데 모인 단서는 열쇠가 되어 미스터리가 주는 답답함을 해소시킨다. 만족스러운 추리는 아니다. 과정이 불만족스럽다기보다 결과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덜하다. 황 반장(정진영) 등 몇몇 역할은 스릴러물에 으레 등장하는 캐릭터성으로 아쉬움까지 더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사바하’의 미덕은 종교와 신을 향한 물음에 있다. 흙탕물에서 자람에도 그 아름다움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꽃이 연꽃이라고 하는 보살의 말은 인간은 사바세계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음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또한, 옴진리교의 언급은 종교가 인간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 때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상기시킨다.
신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박 목사의 의문은 감독이 세상과 관객 모두에게 건네는 질문인 듯하다. 세상은 신에게 안녕을 갈구하나, 그럼에도 신은 그 기도를 외면하거나 그의 권세를 극히 일부에게 집중하는 게 현실. 13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장재현 감독은 “나는 유신론자이고 그 절대자가 선하다고 믿는다”며, “믿는데, 가끔 세상을 보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서 슬프더라. 의심이 들기보단 원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속내를 전했다.
종교를 향한 맹목적 믿음도 함께 다뤄진다. 대리자에 의해, 혹은 신을 사칭한 가짜 신에 의해 믿음이 폭력으로 변질되어가는 광경은 앞서 언급한 신의 부재를 일깨울 뿐만 아니라 인간이 종교에 심취하면서 발생하는 반작용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고민하게 한다. 더불어 시편을 읽는 박 목사의 모습에서는 ‘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가 만난 적도 없는 절대자에게 그의 평화를 기대하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극 중 교도소 소장은 말한다. “내가 여기 30년 있었는데 이유 없는 후원은 없습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후원이 없다면, 신은 어떤 이유에서 우리 인간을 보살피는 것일까.
불친절한 미스터리는 갖은 추측과 인기를 부르는 묘책이고, 이에 관객은 개개의 상상력을 발휘, 미처 생각 못한 곳까지 작품을 확장시키곤 한다. 그러나 장재현 감독은 다른 길을 택했다. ‘사바하’는 정답을 얻기까지 큰 노력을 안 들여도 되는 친절한 영화다. 미스터리를 중첩시키기보다 ‘사바하’를 통해 신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고백한 감독의 말처럼 ‘사바하’에는 ‘검은 사제들’에서 보여준 그때의 온기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다. 함께 구마를 치를 최 부제에게 김 신부는 다음을 이야기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동생이 더 작아서 그런 거야.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한테 덤비지 않아. 그리고 악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우리를 절망시키지. 너희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근데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데뷔작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후속작에서는 신에 대한 의문을 전달한 장재현 감독. 과연 다음에는 신에 대한 또 다른 무엇을 소개할지 궁금하다.(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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