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물음표] ‘기묘한 가족’ 이수경, 평범한데 묘하다 (인터뷰)

입력 2019-02-23 09:00   수정 2019-02-23 12:24


[김영재 기자] 2월13일 개봉작 ‘기묘한 가족’ 해걸 役

배우를 가늠하는 잣대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출연한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주위의 평가다. “놀라는 순간이 많았죠. ‘어떻게 저렇게 솔직하게 연기를 하지?’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소엔 굉장히 순둥이라서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데 어떻게 저렇게 카메라 앞에만 가면 돌변할 수 있는지 궁금했죠.”

영화 ‘침묵’ 홍보차 만난 배우 박신혜는 함께 출연한 이수경(22)을 두고 귀여운 동생이지만 카메라 앞 눈빛은 그가 배워야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묘한 가족(감독 이민재)’에서 관객은 ‘침묵’이나 ‘차이나타운’과는 조금 다른 이수경을 만날 수 있다.

첫째 오빠 준걸(정재영)과 충청도 사투리로 말다툼하는 해걸(이수경)의 모습은 독하기보다 순하다. 그들의 대화는 만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양 갈래 머리에 멜빵바지를 입고 쫑비(정가람)에게 “아 사람이 말하면 대꾸를 해야 될 거 아녀?” 하는 해걸은, 결국 좀비와 사랑에 빠진다. 좀비를 아픈 사람쯤으로 여기는 충청 소녀의 순박함은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가 과거에 연기한 용순(龍順)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이수경에 대해 ‘묘한 배우’라고 수식한 것이 잊히지 않아 그를 만났는데, 낯을 가리는 탓에 나오는 그 어눌한 말투가 딱 해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와 닮은 캐릭터에 끌린다고 고백한 이수경을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묘한 가족’은 기존 좀비물과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맞다. 그 독특함에 끌려 출연하게 됐다. 좀비물은 ‘워킹 데드’ ‘월드워Z’ ‘웜 바디스’ ‘부산행’ ‘창궐’ 정도 봤는데, 흔히 좀비 영화에 기대하는 스토리보다 신선한 점이 있었다. 항상 예상을 빗나가더라.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다. 그런 지점이 실제 영화에도 잘 나온 듯해서 만족 중이다. 대체로 촬영이 야외에서 이뤄졌는데, 사실 나는 다른 배우 분들에 비해 너무 편하게 촬영했다. (김)남길 선배님은 슈트에 구두에 보호 장비뿐이었고, 가람 오빠는 티셔츠 한 장에 게다가 맨발이었다. 좀비 군단 분들은 더 춥게 입고 계셨다. 난 오히려 옷을 껴입고 연기한 탓에 덥더라. 그래서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좀비들과 연기한 소감은?

가람 오빠가 쫑비의 여러 가지 버전을 분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또 좀비 군단 분들과 밥차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다 봐왔는데도, 좀비들이 몰려오는 신을 찍을 때는 솔직히 너무 무섭더라. 그래서 (엄)지원 언니랑 소리를 막 질렀다. 재영 선배님께서 “너 왜 연기 안 하고 소리만 질러?” 하시더라.(웃음) 좀비 연기를 못한 것에 아쉬움은 없다. ‘좀비도 연기하면 재밌겠다’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가람 오빠가 항상 두세 시간 일찍 와서 분장하고, 촬영 끝나면 분장 지우는 데 또 한 시간 걸리고 하는 걸 보니까 함부로 도전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진짜 고생이 많았다.

―영화 ‘용순’에 이어 또 한 번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 그때는 서울말과 전라도말 사이에서 감을 잡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엔 소위 ‘네이티브’ 사투리를 쓰더라.

이번엔 좀 더 진득한 사투리에 도전해봤다. 이민재 감독님께서 ‘용순’ 때보다 더 진한 사투리를 원하시더라. 마침 감독님이 충청도 분이시라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재영 선배님께서 거의 충청도 사람처럼 대사를 하셔서 선배님을 따라 하기도 했다.

―충청도 소녀 해걸을 연기했다. 후에 해걸은 좀비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한다.

해걸은 그가 지닌 배경에도 불구, 그 배경과 상반된 캐릭터다. 그게 좋았다. 게다가 해걸이라면 쫑비를 대하는 것처럼 좀비에게도 의연히 대처할 거 같지만 나중에 보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나지 않나. 그런 변화점도 좋았다. 덕분에 연기를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좀비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웜 바디스’란 영화가 떠오르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웜 바디스’를 다시 찾아봐야 하냐고 여쭤봤는데, ‘기묘한 가족’에는 해걸과 쫑비와의 관계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들 얘기도 있고 다른 얘기도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영화라고 하시더라. 나 역시 다시 보면 그 연기를 따라할 듯해서 일부러 찾아서 보진 않았다.

―좀비와의 사랑에 빠지는 인물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난 좀비가 무엇인지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상태니까 실제 이수경에게 좀비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 같다. 근데 해걸이 가족은 민걸을 제외하고 모두 좀비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래서 해걸이 쫑비에게 사랑을 느낀 거 같다. 다친 사람 혹은 아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실 가람 오빠랑 연기하는 게 쉽진 않았다. 오빠가 좀비라서 리액션을 못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난 혼잣말 하듯 연기해야 했다. 쫑비 대사 없이 혼잣말하는 신은 연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난 독백 연기에 약한 사람이다. 오디션도 그렇고 입시도 그렇고 ‘아 어떡하지’ 하며 독백 연기에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근데 이젠 그 생각을 바꿨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 동물 말을 주인이 알아서 해석하지 않나. 나도 쫑비한테 그렇게 하면 되겠더라. 주인이 반려동물 다루듯 쫑비 말을 해석하며 연기했다.

◇해걸이 올케 남주(엄지원)와 돈독함을 유지하듯, 이수경 역시 선배 엄지원에게 현장을 알면 알수록 연기하기 더 어려워지는 거 같다는 고민을 건넸다고. 정재영에게는 작품마다 성격을 변화시키는 가변성을, 엄지원에게는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김남길에게는 후배를 생각해주는 이해심을 현장에서 배운 이수경. 그는 그 자신이 보이는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중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에도 매력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후에 나이가 들면 JTBC ‘스카이 캐슬’ 노승혜 같은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훗날을 기약했다.

―‘용순’과 ‘침묵’ 이후 충무로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충무로 샛별’이다.

그 두 작품 덕에 외적 내적 모두 많은 성장을 이룩했다. ‘침묵’은 (최)민식 선배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 작품이다. 그 작품 하면서 사실 배운 게 진짜 많았다. 그리고 민식 선배님과는 두 작품(‘특별시민’ ‘침묵’)에서 함께 연기를 해왔는데, 자존감을 높여주는 나만의 자랑거리가 생긴 거 같아서 전보다 자신감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충무로 샛별’ 같은 수식어는 뭐라고 해야 하는데 뭐가 없으니까 붙여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모르겠다.(웃음) 기분은 좋다. 사실 그에 대해 아무도 부담을 안 주기 때문에 부담보다는 기쁜 게 크다. 하지만 내가 마냥 기뻐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이수경의 강점은 뭔가?

누가 콕 집어서 얘기해준 적이 없어서 정답인지 모르겠지만, 생김새가 아닐까 싶다. 악역이라든지, 해걸이 같은 순박한 역이라든지 관객이 자연스레 이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내 평범한 생김새가 배우 이수경의 장점이 아닐까.

한편, 영화 ‘기묘한 가족’은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멍 때리는 좀비와 골 때리는 가족의 상상초월 패밀리 비즈니스를 그린 코믹 좀비 블록버스터. 2월13일 개봉. 12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00만 명. 순제작비 55억 원.(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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