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물음표] ‘사바하’ 이정재, 목사가 된 젊은 남자 (인터뷰)

입력 2019-02-26 08:00   수정 2019-03-05 21:37


[김영재 기자] 2월20일 개봉작 ‘사바하’ 박 목사 役

세월이 야속하다. 시간이 나에게만 억하심정을 가질 리 없는데, 덧없음은 ‘세월’과 ‘야속하다’를 합치게 한다. 긴 한숨은 그 야속함과 어울리는 좋은 장식이다.

배우 이정재(46)에게도 세월은 야속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데뷔 20주년을 맞이해 개최한 특별전의 제목은 ‘영원한, 젊은 남자’. 마침 스크린 데뷔작 ‘젊은 남자’에서 그는 욕망의 청춘을 은막 위에 그려냈다. 청춘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자 이정재. 하지만 어느새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불안감이 엄습하는 소위 ‘아재’의 나이가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주위에서 나이 때문에 웃어주는 거 같아요. 예의상 웃어주는 거 같기도 하고요.”

허나, 호탕한 웃음에 수반되는 그의 눈가 주름이 감탄을 모으는 것처럼, 이정재의 나이는 노화에 국한되기보다 성장에 축이 기운다. 때문에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에서 그가 연기한 박 목사에 더 눈길이 간다. 신을 섬기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셔?” 하며 웃는 박 목사의 흔들리는 신앙을, 이 마흔의 배우는 감독의 연출에 따라 고삐를 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세게 쥐기도 한다. 신에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는 내레이션이 백미. 여기서 이정재는 신을 갈구하는 박 목사의 음성으로 극의 처연함을 한층 배가한다.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이정재를 만나 그가 과거 선보인 명대사를 직접 듣는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이정재는 나이 대신 코미디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혼자서는 코미디에 재능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영원한, 젊은 남자에게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늘 연기를 궁리하는 그와의 인터뷰를 총 일곱 개의 문답으로 전한다.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이 궁금합니다.

“‘하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믿음 이야기를 마지막에 짧고 단순하게 요약하시는 걸 보고 ‘머리가 좋은 감독님’이란 생각도 했어요.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훨씬 더 슬프던데요. 참 먹먹하고 쓸쓸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데, 보면서 ‘슬픈 감정을 어떻게 저렇게 잘 표현하셨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영화 일 하는 사람들이 쓰는 표현 중에 ‘질감을 만들어낸다’가 있어요. 영화의 스산한 질감을 표현하시면서 마지막엔 인물의 감정까지 잘 다루시는 것을 보고 연출을 굉장히 잘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언론시사회에서 장재현 감독이 눈물을 보였어요. “피를 토하면서 적고 뼈를 깎으면서 찍었다”고 했죠. 배우로서 그 고통을 분담하기도 했나요?

“정말 피를 토한 게 아니라 그런 심정으로요.(웃음) 내색을 안 하셔서 그 정도로 감정적 심리적 부담을 앓고 계신 줄 미처 몰랐어요. 그만큼 호흡이 좋은 현장이었죠. 촬영이 즐거울 정도로 찍었는데, 감독님의 진심 어린 눈물을 보고 나서야 ‘아 부담이 많으셨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감독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이해하고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었어요. 미스터리 스릴러는 제가 처음 도전하는 장르고, 또 장재현 감독님께서 잘 찍으시는 분야라는 것을 전작을 통해 벌써 느꼈기 때문에 감독님 의도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초반부 등장하는 박 목사의 유머러스한 표현도 감독님 의도 중 하나였고요. 돋보이기보다 이야기를 수반하는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아주 오랜만에, 언제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해서 참 재밌게 촬영했어요.”

―박 목사는 신을 의심하고, 또 신을 갈망하죠.

“박 목사는 기본적으로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에요. 그렇기에 목사란 직함을 유지하는 거고요. 동시에 신에 대한 반항기가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아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 하는 때가 간혹 생기잖아요. 저 역시 그랬기에 자연히 박 목사 캐릭터에 공감대가 생기더라고요. 인물에 동화돼 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었어요. 다만 박 목사가 쫓는 사람들 있잖아요. 종교를 매개로 신자로부터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 전 그들을 범죄자라고 봐요. 정말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이고 개체죠.”

일곱 살배기도 따라하는 특유의 대사 톤을 언급하자, 이정재는 ‘거 중구형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란 영화 ‘신세계’ 명대사를 직접 실연(實演)했다. 이제는 그의 목소리나 연기를 따라 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하다며 웃은 그는, 촬영 뒷이야기도 전했다. 해당 대사를 처음 맞닥뜨린 이정재의 심정은 ‘요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였다고. 국어를 배우기 위해 그냥 써놓은 글처럼 너무 부자연스러운 대사라고 느꼈음에도 대사를 말 같이 해야 하는 연기자로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고 이정재는 회상했다.

그는 ‘요렇게 톤을 만들면 좀 독특해보이지 않을까?’ 같은 생각 아래 대사를 읽은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이 원하는 바를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 자신도 모르게 특유의 톤이 나오는 것 같다고 나름의 해답을 안겼다. “제 연기를 1차 효과로 보면 관객의 모사는 그걸 2차, 3차로 확장하는 거잖아요. 즐거운 일이죠.”

―데뷔 26년 차 배우 이정재예요.

“현장에 가면 후배들 눈치를 보곤 해요. 눈치가 조~금 보이죠.(웃음) 선배 대접 해주려고 하는 그들의 불필요한 노력이 같이 작업을 하는 저로서는 방해로 느껴지기 때문에 생기는 눈치예요. 함께 출연한 박정민 씨에게 후배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게 길을 닦는 게 선배들의 역할이라고 했어요. 선배님들의 노력이 한국 영화를 사업에서 산업으로 만들었어요.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유산은 다시 후배들에게 전달돼야 하는 유산이고요. 더 잘 키우고 만들어서 전달해야죠. 덕만 보고 전달할 순 없으니까요.(웃음)”

―극 중 티벳 대승은 “사바세계에서는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1993년 SBS ‘공룡선생’으로 데뷔했어요. 이제 곧 30주년이 되는데, 주로 어떤 기억이 머리를 스치나요?

“곧? (기자-곧이 아니긴 하죠.) 아니에요. 곧 그렇게 되겠네요. 20주년 상영회를 가진 게 엊그제 같은데 참. 아무래도 슬럼프도 있었고, 연기가 욕심만큼 표현이 안 된 시절도 있었고, 그로 인해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건가?’ 같은 고민도 가졌고, 그랬죠.”

―슬럼프 하니까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이요. 코믹 사극에 도전했지만 결과가 아쉬웠죠. 한때 ‘배우 이정재가 나오는 영화는 흥행성이 덜하다’는 이야기가 나돈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 분위기가 ‘도둑들’ 이후 꾸준히 상승세예요.

“하.(한숨) 근데 슬럼프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 파트를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는 흥행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분야예요. 어느 한 해를 기점으로 한 3년 동안 흥행이 잘 될 수도 있고 또 흥행이 3년 동안 안 될 수도 있죠. 이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 시간을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말한 슬럼프는 제 마음의 자세를 말한 거였어요.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무척 까다롭게 고르곤 했어요. 그때가 제 개인적으로는 배우 이정재의 슬럼프였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배우는 제안을 받는 입장이잖아요. 어느 순간 시나리오를 까다롭게 고르는 것에 관해 ‘이거는 잘못된 생각이구나’를 느끼게 됐고, 그때부터 혹 시나리오상 프로젝트상 조금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걸 같이 채워나가는 것에 참 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박 목사가 프레젠테이션 하는 신을 보고 언뜻 MBC ‘트리플’이 생각났어요. 당시 ‘트리플’에서 광고대행사 AE 신활 역으로 꼬꼬마주스를 프레젠테이션 했었죠. 마지막 TV 드라마 출연작이 딱 10년 전 작품 ‘트리플’이에요.

“드라마 제의가 1년에 한두 개씩은 들어와요. 그렇게 많이 들어오진 않아요, 드라마 제안이.(웃음) 근데 보통 스케줄이 잘 안 맞아요. 왜냐하면 방송은 편성을 픽스 해놓고 제안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 끝난 다음에 들어가야 해서 그 스케줄이면 맞추기 힘들 것 같아요’ 하는 게 다반사예요. 드라마 하긴 해야죠. 왜냐하면 요즘 2시간이 훨씬 넘어가는 이야기도 재밌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6부작이든 16부작이든 그게 몇 부작이든 간에. 제안을 기대하는 중이에요. (기자-소재나 캐릭터 둘 다 신선해야 참여할 건가요?) 웬만하면 그랬으면 하죠.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뽑아서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해주시는 분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기자-목사 역할은 이번에 해봤으니까 진선규 씨가 연기한 해안 스님처럼 스님 역할은 어때요?) 빡빡 밀고요? 그거 재밌겠는데요?”

한편, 영화 ‘사바하’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 목사(이정재)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2월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50만 명.(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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