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모기업 금호산업이 22일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올해부터 외부감사 규정이 대폭 강화돼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한층 깐깐해진 잣대를 적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른 시일 내 재감사를 거쳐 적정의견을 받겠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시가총액 8292억원)은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 의견을 받은 감사보고서를 이날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다. 한정은 외부감사인이 기업 감사를 벌이던 중 자료 부족 등의 이유로 감사 범위가 부분적으로 제한된 경우 제시하는 의견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에서 운용 리스 항공기 정비의무 관련 충당부채 등을 비롯해 재무정보와 관련한 충분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금호산업은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따라 한정 의견을 받았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두 회사는 오는 25일 관리종목에 지정된 뒤 26일부터 거래가 재개된다.
이번 한정 의견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추진하는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29일로 예정된 650억원 규모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아시아나항공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올해 강화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아시아나항공 이외에도 감사보고서를 제때 내지 못하거나 ‘비적정 의견’(의견거절, 부적정, 한정)을 받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전년도 감사보고서에 대해 비적정 의견을 받은 상장사는 이미 22곳으로, 작년 같은 기간(15곳)보다 늘었다.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인 다음달 1일까지 더 많은 기업이 비적정 의견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나-삼일 '회계처리' 놓고 이견…재무구조 개선에도 '빨간불'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범위 제한 한정’ 의견을 받은 아시아나항공에 비상이 걸렸다. 회사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약 1조원 규모의 차입금을 갚기 위해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른 시일 내에 재감사를 신청해 삼일회계법인이 제시한 한정 의견 사유를 신속히 해소하고 적정 의견으로 변경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삼일과 이견…결국 감사의견 한정
삼일회계법인은 22일 감사의견을 제시하면서 △운용리스항공기의 정비의무와 관련한 충당부채 △마일리지 이연수익의 인식 및 측정 △손상징후가 발생한 유·무형 자산의 회수가능액 및 2018년 중 취득한 관계기업주식의 공정가치 평가 △에어부산의 연결대상 포함여부 및 연결재무 정보 등과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이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삼일 측이 제시한 이 네 가지 사유는 2018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아시아나 측과 회계처리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들이다.
삼일회계법인은 감사 과정에서 아시아나 측에 예년보다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논란 사태 등을 거치면서 회계업계 전체가 ‘보수적’으로 바뀐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일회계법인 내부적으로 ‘2020년 지정감사인제 도입으로 다른 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 외부감사인이 됐을 때 책잡힐 일을 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형성된 것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이유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외부감사인의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감사의견 한정 ‘쇼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삼일회계법인이 감사의견 한정을 제시한 것은 엄격한 회계기준을 반영한 결과”라며 “이는 회사의 영업능력 및 현금흐름과 무관한 회계처리상의 차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불똥 떨어진 재무구조 개선작업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14일 공시했던 2018년 잠정실적도 이날 수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종전 1783억원에서 887억원으로 축소됐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9578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정보기술(IT) 자회사인 아시아나IDT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지난해 4분기에만 4170억원의 차입금 상환 재원을 확보했다. 올해는 영구채 발행과 금호고속 IPO 등을 통해 추가 재원 마련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장 다음주로 예정돼 있던 65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주요 투자자로 참여할 계획이었던 대신금융그룹은 회계문제에 불안을 느껴 손을 떼기로 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이미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이 상환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동안 항공권 매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ABS를 발행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이라도 ‘BBB-’인 기업 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리면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모두 지급할 때까지 항공권 판매로 벌어들인 잉여현금을 아시아나항공이 가져가지 못한다’는 특약을 걸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이날 아시아나항공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이 특약이 발동되면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권 판매수익을 고스란히 ABS 상환에 써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이른 시간 내에 재감사를 받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처럼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란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삼일회계법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2018년 재무제표에 충당금을 추가로 설정할 경우 2019년 이후에는 회계적 부담과 재무 변동성이 경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오형주/송종현/김진성/박상용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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