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장주연 작가의 Driving in Movie-3 '본 슈프리머시'

입력 2019-03-27 08:00  


 -정체성을 찾아가는 첩보영화의 흥미로움

  전직 CIA 요원인 제이슨 본. 1편 '본 아이덴티티'에서 총상을 입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지만 2편 '본 슈프리머시'에 등장하는 그는 아직 기억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쫓기는 삶이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CIA를 피해 연인 마리와 함께 은둔 생활을 해나가는데 매일 밤 똑같은 악몽을 꾸면서 과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 하루하루가 괴롭다. 결국 어느날 찾아온 암살자와 추격전을 벌이던 끝에 연인 마리가 살해되고, 본은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연루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는 적을 찾아 복수에 나서고 악몽 속의 일들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사건과 액션에 치중하는 여느 첩보 영화와 달리 본 시리즈는 1편에서부터 정체성을 고민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가장 큰 이야기의 핵심 줄기다. 어느 날 사라진 자신을 찾아야만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화려한 볼 거리를 주는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보다 지능적이고 펜이나 잡지를 들고 벌이는 아날로그적인 액션의 맛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1편에 이어 2편에서는 대체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고 어떤 인물인지, 왜 연인과 조용히 살아가는 그를 CIA는 죽이지 못해 끝까지 추격하는지 궁금증이 절정에 달한다.
 
 결국 본은 과거를 찾아내고 진실에 다가서지만 차라리 잊고 사는 게 나을 뻔했을 지 모를 어두운 과거 때문에 더 자책하고 고통받게 됐다. 그 또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수행으로 피해를 입게 된 가족을 찾아가 어떻게든 사과하려 애쓰는 모습은 관객들이 만나고 싶었던 본의 정체성에 가깝다. 

 자신의 책임과 임무에 성실한 유능한 사람들이 조직에 희생되고 버려지는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본이 쫓기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신을 위협하는 온갖 적들과 경쟁 구도 속에 자신을 지키고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정체성을 깨우치고 회복시켜나가는 일은 무척 중요해 보인다.

 행여 우리가 잊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진실, 잘못된 과거의 실수와 책임이 있다면 우리는 본처럼 사과하고 다시 설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정체성이 없거나 의도적인 기억상실증에 빠진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어떤 위협이 다가올 지 모를 세상에서 언제 처참한 일을 겪게 될지 모를 불안한 운명을 뜻한다. 자신이 누군지 몰랐던 제이슨 본처럼... 이 영화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그 '정체성'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 '영차'와 함께 보는 영화 속 자동차

 이 첩보영화에는 뜻 밖에 차가 등장한다. 추격전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자동차 '쏘나타', 그 중 4세대 부분변경인 '뉴 EF 쏘나타'가 "실버 현대(silver hyundai)"라는 대사와 함께 숨 막히는 추격 장면에 비중 있게 등장한다. 이쯤되면 마치 현대차가 협찬했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당시 영화 촬영을 진행하던 인도에 '쏘나타'가 있다는 이유로 차만 빌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차는 본을 살해하기 위해 인도까지 쫓아온 암살자 커릴이 타고 질주한다. 당시 '뉴 EF 쏘나타'는 다소 파격적이었던 날카로운 사이드 캐릭터 라인과 볼륨감이 돋보이는 클래식한 리어 디자인으로 큰 관심을 받았는데, 스크린 속의 쏘나타는 중산층 가정의 국민차 이미지를 지우기에 충분했다. 

 1985년 처음 출시된 '쏘나타'는 국내 세단의 역사이자 최장수 브랜드다. 198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중형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현대차는 1983년 포니에 이은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스텔라'를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큰 인기를 끌던 대우차의 '로얄살롱'에 대적할만한 수준이 못되자 스텔라의 기본 차체에 1,800㏄와 2,000㏄급 시리우스 엔진을 탑재해 쏘나타를 출시했다.

 1세대 광고 카피는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로 당시 영화배우 신성일 씨가 첫 번째 계약자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차명으로 곤혹도 치렀다. '소나타'가 '소나 타는 차'라는 놀림거리로 전락한 것. 그러자 현대차는 이듬해 정식 차명의 한글 표기를 '쏘나타'로 바꾸고 판매 열기를 끌어 올렸다. 1988년 출시한 2세대는 중형차 최초로 미국에 수출을 시작했고, 90년대 쏘나타II는 불과 33개월 만에 60만대가 판매돼 '중형차 대중화'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이후 세대를 거듭해 2004년 5세대(NF) 쏘나타가 등장해 미국 시장에서 주목을 끌었고, 6세대(YF) 쏘나타는 중국에서 현대차 중형 모델 최초로 1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그리고 6세대 때는 국내 최초 중형 하이브리드가 추가됐다. 이후 7세대(LF)를 거쳐 최근에는 8세대(DN) 쏘나타가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이름 빼고 다 바꿨다' 할 정도로 성능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또 한번 '쏘나타'의 위상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영화에는 본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다가 러시아에 도착, 훔쳐 타고 추격을 벌이는 '가즈 볼가(GAZ Volga) 3110' 택시 버전도 등장한다. 러시아에선 흔한 택시이자 고위 관료층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도 많이 타는 대중적인 차다. 'GAZ'는 포드와 소련의 합자형태로 1929년 설립된 회사 이름이고 '볼가(Volga)'는 차명이다. 그리고 '3110'에서 '3'은 중형차, '1'은 승용차, '10'은 가즈의 열 번째 공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본은 이 차로 엄청난 성능을 가진 벤츠 'G바겐'과 추격전을 벌인다. 암살자 커릴이 타고 등장하는 오프로드형 자동차 'G바겐'은 국내에서도 영화배우 김주혁 씨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으로 많이 알려진 차종이다. 

 원래 G바겐은 이란의 '모하마드레자 샤 팔레비' 국왕이 군용차를 만들기 위해 벤츠에 개발과 생산을 의뢰한 게 시작이다. 제안을 받아들여 벤츠는 무려 4년에 걸쳐 생산시설까지 갖추었지만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약속된 구매자가 사라졌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군대를 시작으로 교황청, 미국과 독일, 말레이시아 등에 군용차로 판매를 시작해 민간용으로 넘어와 G-CLASS가 됐다. 비록 영화에서는 암살자가 몰았던 탓에 주인공의 볼가를 넘어선 활약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실제 성능과 카리스마는 첩보영화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장주연(방송작가)
 *현재 유튜브 방송 '봉만대 권용주의 영차', KBS 1라디오 '시사夜'의 작가이자 자유기고가이다. 

  



 *이 내용은 '봉만대 권용주의 영차' 3편으로 방송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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