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4일 오후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에 대해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산불 피해를 본 강원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도 착수했다.
행정안전부는 5일 오전 9시를 기해 강원지역의 산불에 대해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고 밝혔다.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면 행안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은 재해 복구를 위한 인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확대돼 지역 행정 공무원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릴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연 긴급회의에서 “현장에 가신 총리와 행안부 장관이 상황을 점검해 특별재난지역 지정 검토를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긴급점검회의를 열어 산불 피해 복구 및 이재민 생활 안정을 위한 재정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기재부는 42억5000만원을 응급복구비로 우선 집행하고, 필요하면 1조8000억원 규모의 올해 목적예비비를 활용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과 보증은 최대 1년까지 상환을 유예하고 만기도 연장하는 것을 포함한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강원 고성군과 속초시에서 민간인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다쳤다(오후 4시 기준). 산불로 인한 피해면적은 525ha로 추정된다. 중대본은 “주택 135채, 창고 7동, 비닐하우스 9동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이번 산불로 주민 총 4011명이 고성군과 속초시가 마련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동시다발로 덮친 화마…이재민 4000여명, 피해액만 수천억대
단일 화재 사상 가장 큰 ‘역대급’ 산불이 4~5일 고성 속초 동해 강릉 인제 등 강원 동북부를 동시다발적으로 덮치는 국가재난사태가 발생했다. 잠정 피해규모(525ha)가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초유의 화재다. 소방헬기가 뜰 수 없는 야간에 태풍급 강풍이 더해져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번진 산불에 수천 명의 주민이 피난해 공포에 떨었다. 다행히 5일 오전 큰불이 잡혀 피해지역이 확산되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산불 현장을 지휘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최문순 강원지사로부터 화상통화 보고를 받고 지방자치단체와 군병력 등 동원가능한 인력을 모두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원 지역 산불 관련 예비비 1조8000억원을 활용해 (피해지역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속초·고성은 화재 진압
속초 시내를 불바다로 만든 화재 진원지 고성은 이날 오전 9시37분께 주불 진화가 완료됐다. 오후 4시께엔 고성과 속초 일대 불이 완진됐고 강릉과 동해, 인제는 각각 70%, 80% 진화율을 보였다. 강릉 동해, 인제 산불은 아직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새벽 내내 소방공무원, 군·경, 시·군공무원 등 1만7720여 명과 단일 화재 사상 가장 많은 870여 대의 소방차를 전국에서 동원해 필사적인 진화에 나섰다. 소방청 관계자는 “무수한 불티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가며 연속 화재를 일으켰다”며 “강원도가 보유한 소방차량으로는 (불길을) 10분의 1도 막아낼 수 없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고성 속초 등 동해안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산불이 시작된 것은 4일 오후 7시17분이다. 고성군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에서 발화된 불씨가 점점 커지더니 강력한 서풍을 타고 동쪽 야산으로 옮겨붙었다. 이 불은 부채꼴 모양으로 내달리며 일성콘도 현대콘도 등 일대와 속초 방면 한화리조트를 거쳐 장사동과 속초 시내로 번졌다. 투숙객들이 머무르는 콘도 등의 본관 건물까지는 불길이 다행히 닿지 않았지만 부속건물 20여 동이 소실됐다. 속초 장천마을을 덮치고 영랑호까지 진출한 불은 장사동 횟집거리, 속초의료원 방향으로 각각 갈라져 주변을 휩쓸고 오후 9시께 해안가까지 이르렀다. 발화점에서 장사동 해안가까지 직선거리가 약 7.2㎞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산불 확산 속도는 사람이 빠르게 걷는 속도와 비슷했다. 발화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7㎞가량 떨어진 곳에는 폭약 약 5t, 뇌관 2990발 등이 저장된 화약창고가 있어 하마터면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
여의도 면적 2배 불 타
강원도현장대책본부에 따르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은 무려 525㏊(525만㎡)에 달하는 산림과 임야 등을 초토화했다. 여의도 면적(290㏊)의 1.8배에 이르고 축구장 면적(7140㎡)의 735배에 달하는 엄청난 피해다.
농협은 현재까지만 52억여원에 이르는 농업시설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파종을 앞둔 시기라 농가가 체감하는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6300여 가구의 도시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40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주택 300여 채, 창고 7동, 오토캠핑리조트 46동, 건물 98동이 소실되는 등 농가시설 외 재산피해도 상당 부분 발생했다. 지역경제 피해 등 유·무형 손실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수천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인명피해도 나왔다. 불길로 인한 연기를 마셔 속초에 거주하는 58세 남성이 4일 밤 거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부상자도 중상자 1명을 포함해 30여 명 발생했다. 교육부와 강원교육청은 속초지역 초·중·고 25개교 전체, 고성 24개교 전체 등 총 52개교에 휴업령을 내리고 일부 학교를 주민대피시설로 개방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해 지원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고성군 토성면사무소 상황실을 찾아 “고성과 속초의 주불은 진화가 거의 끝난 만큼 진화 이후를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이르면 다음주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특별재난지역엔 복구비 지원은 물론 각종 세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 통신비 전기료 난방비 등 공과금 감면 혜택을 준다. 시·군·구는 피해액이 45억원, 읍·면·동은 4억5000만원을 넘을 경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심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다.
행정안전부는 피해지역 응급복구를 위해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40억원과 재난구호사업비 2억5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대기업들도 잇따라 피해 지역에 성금을 내고 복구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20억원의 성금과 담요, 속옷 등을 담은 구호키트 500세트를 전달했다. 임직원 봉사단을 현장에 파견하고 의료진을 보내 주민들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주민 대피소에는 전자제품을 무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SK, LG그룹도 각각 성금 1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SK텔레콤은 3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복구 작업을 돕고 있으며 복구현장용 LTE무전기도 지원한다. LG생활건강은 생필품 지원을, LG전자는 이동서비스센터를 통해 가전제품 수리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피해복구 성금 1억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하고 굴착기 등 복구장비와 생필품 등 구호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식품업계 지원도 이어졌다.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빵 3000개와 SPC 삼립 생수 3000개를 전달했다. 농심은 신라면과 육개장 사발면 등 컵라면 2만 개를 제공했다.
김동윤/정의진/이해성/김보형/구은서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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