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故 전미선의 추도제…한글만큼 돋보이는 억불 (종합)

입력 2019-07-15 10:37   수정 2019-07-16 17:20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송강호가 영조에 이어 세종에 도전했다. 박해일은 그와 함께 훈민정음을 만든다. 지금껏 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이면이 스크린 위에 구현됐다. 추도제의 등장은 고(故) 전미선의 넋을 기리는 듯하다.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의 언론시사회가 7월15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조철현 감독, 송강호, 박해일이 참석했다.

‘나랏말싸미’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송강호)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했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신미(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이다. 영화 ‘사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황산벌’의 각본을 집필한 조철현 감독의 입봉작이기도 하다.

관객은 영화 시작과 함께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자막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지난 33년간 영화 일을 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열린 마음을 배웠다”며,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으나 역사에 대한 평가나 판단 앞에서는 모두가 겸허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 자막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영화는 한글을 창제하는 구체적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 간의 인연이 각각 씨줄과 날줄로 구성된 영화”라며, “시나리오를 쓸 때는 상상력의 영역과 팩트의 영역이 서로 구분되나 영화를 찍을 때는 내가 찍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진실의 오염’을 겪는다. 때문에 지금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를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를 다루는 영화이자,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의 억불 정책이 극 전반을 지배하는 작품이다. 조철현 감독은 “보통의 사극은 신하나 중국과의 대립을 갈등 요소로 설정한다”며, “우리 영화는 세종과 신미 스님이 서로에게 프로타고니스트이자 안타고니스트로 존재한다. 소헌왕후(전미선)까지 포함해 세 사람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해서 거기에 주안점을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이를 먹은 탓인지 내적 욕망과의 갈등,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욕망의 충돌에 관심이 많은 요즘”이라고 덧붙였다.

신 대부분이 답답한 실내에서 전개되는 것이 ‘나랏말싸미’의 약점 중 하나다. 이에 감독은 역사적 공간의 등장에 방점을 찍었다. 제작진은 6개월 이상 문화재청의 문을 두드리며 오랜 기간에 걸친 긴밀하고 정교한 회의 끝에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여러 유적지를 한국 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는 “다양한 실제 공간에서 영화를 찍었다”며,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공간답게 그곳에서 디자인적으로 훈민정음 자모와 관련된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편, ‘나랏말싸미’는 고 전미선의 유작이다. 극 중 소헌왕후 역을 맡은 전미선은 지난달 29일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세상을 떠난 바 있다. 이에 ‘나랏말사미’ 측은 고인의 애도를 이유로 언론시사회 포토 타임부터, 출연진 및 감독 인터뷰, 무대 인사 등의 대외 일정을 상당수 취소했다. 이날 상영된 ‘나랏말싸미’ 엔딩 크레디트에는 ‘아름다운 배우. 고 전미선 님을 잊지 않겠습니다’란 자막이 삽입되기도.

‘나랏말싸미’ 제작을 맡은 영화사두둥 오승현 대표는 이날 공동 인터뷰에 앞서 단상에 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한 전미선 님의 비보를 접하고 우리도 충격에 빠졌다. 영화의 흥행을 떠나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개봉 연기까지 생각했으나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이 영화를 많은 분들께서 함께 보시고 ‘좋은 영화’ ‘최고 배우’로 기억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최소화된 일정 아래 개봉을 진행했다. 진심이 왜곡될까 봐 조심스러우나 취재진 여러분께서 그 뜻에 동참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세종 역을 맡은 송강호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과정이 있었다. 감독님 이하 모든 스태프들과 출연진이 슬픔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극 중 천도제 신에 관해 “(작품과 현실이 서로 연관성을 띠고 있기에) 영화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꼈다”며, “그것을 통해 관객 분들께 이 영화가 슬픈 영화가 아니라 그 슬픔을 딛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신미 역의 박해일은 “선배님의 마지막 작품을 함께하게 돼 너무도 영광”이라며, “관객 분들께서 작품을 따뜻한 온기로 품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바랐다. 조철현 감독은 “천도제 신을 찍을 때 전미선 씨는 그 자리에 없었다”며, 마지막에 “힘듭니다”라는 말로 ‘나랏말싸미’팀이 느끼고 있을 비통함을 짐작케 했다.

“세종대왕의 고난의 역사와 외로움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영화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송강호가 소망한 영화 ‘나랏말싸미’는 7월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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