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일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방안을 거부한 우리 정부를 겨냥해 “분쟁 해결 절차에 응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추가 보복을 시사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방적으로 수출을 규제한 일본이 국제법을 어겼다”고 맞받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남관표 주일대사를 불러 “한국이 근래 판결을 이유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뒤엎는 일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과 중재위 불응이 1963년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게 일본 측의 논리다.
고노 외상은 별도 담화에서 “한국이 야기한 엄중한 한·일 관계 상황을 고려해 한국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필요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추가 경제보복이 거론된다.
청와대는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일본의 계속된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부당한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상황을 추가로 악화시키는 발언과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방적인 수출 규제로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 원칙, 글로벌 공급망을 심각히 훼손하며 국제법을 위반한 주체는 오히려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상응 조치로 거론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경제 보복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연계돼 있지 않다’는 태도를 견지해온 청와대가 일본의 담화 이후 강경 대응으로 돌아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日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 방치" vs 韓 "위반 주체는 일본"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 간 신경전의 ‘1차 분수령’으로 꼽혔던 18일이 지나자마자 일본은 추가 보복을,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검토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청와대는 조속한 대화와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장기전’을 예고했다. 경제계에서는 ‘강 대 강’ 대립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심각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日 “한국이 국제법 위반” 주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뒤엎는 일을 하고 있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측이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제안하며 답변을 요구한 시한은 18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공연히 밝혀왔지만 일본 측에 공식 답변을 보내진 않았다.
고노 외무상은 이날 담화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한일청구권협정 위반뿐 아니라 협정상 분쟁해결 절차인 중재에도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협정 위반이 늘어났다”며 “한국 측에 의해 야기된 엄중한 한·일 관계 현황을 감안해 한국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을 국제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엎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분쟁이 생기면 제3국 중재위를 통해 해결하도록 돼 있는데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는 것 역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게 일본 측 논리다. 일본이 ‘한국 정부의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전을 준비하며 명분을 쌓는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오는 23~24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놓고 맞부딪친다.
韓 “불법행위로 국제법 위반한 것은 日”
일본 정부의 입장 발표 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은 청구권 협정상 중재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속 주장하지만 우리로선 일본 측이 설정한 자의적 일방적 시한에 동의한 바 없다”며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일본 측의 계속된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및 인권침해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판결했고,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이런 판결을 무시도 폐기도 못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측과 외교채널을 통한 통상 협의를 지속했다”며 되레 자유무역 원칙 등 국제법 위반 주체는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강제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일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제3국 중재안에 대해서는 양국의 적대감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재위를 통해 분쟁 해결에 나설 경우 ‘일부 승소’ 혹은 ‘일부 패소’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게 일반적이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은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측이 제시한 대법원 판결 이행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포함해 양 국민과 피해자가 공감하는 합리적 방안을 일측과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주 중반 추가 보복 이어지나
양국 정부가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면서 한·일 간 대립은 장기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달 21일로 예정된 일본의 참의원 선거 후 일본의 태도 변화가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와 관련해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일본의 강경한 태도를 확인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여당도 강공 모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결국에는 (문재인) 정권을 흔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며 “결국은 긴 싸움이 될 것이고 단단히 마음먹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추가 보복 카드로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 제외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한국산 수입품 관세 인상 △한국인 비자발급 기준 강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재원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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