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 임원 등 고소득 직장인을 대상으로 연간 1000억원 안팎의 소득세를 추가로 걷는다. 저소득 가구에 주는 근로장려금(EITC) 최소 지급액을 연간 3만원에서 10만원으로 확대하는 등 ‘서민 감세’는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25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세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개정안을 다음달 14일까지 입법예고한 뒤 국무회의(8월 27일)를 거쳐 9월 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는 세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고소득 직장인을 타깃으로 잡았다. 근로소득공제 한도를 2000만원으로 설정, 총급여가 3억6250만원이 넘는 약 2만1000명(2017년 기준)의 세 부담을 늘렸다. 연봉 5억원인 사람은 110만원, 10억원은 535만원을 더 내야 한다. 또 임원 퇴직금의 공제 한도를 축소하는 식으로 퇴직 임원의 세 부담을 높였다.
반면 대기업이 생산성 향상 시설에 투자할 때 적용하는 세액공제율을 내년 한 해 동안 1%에서 2%로 올리는 등 기업 세 부담을 한시적으로 덜어주기로 했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적용하는 할증률도 최고 30%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중소기업 할증률은 아예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 할증제도가 도입된 1993년 이후 최대 65%였던 상속·증여세 실질 최고 세율은 내년부터 60%(명목 최고 세율 50%+50%×20%)로 낮아진다.
정부는 세제 개편에 따른 누적 효과를 향후 5년 동안 분석한 결과 총급여 67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3773억원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민·중산층(-1682억원) △중소기업(-2802억원) △대기업(-2062억원) △기타(-1907억원)는 모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 전체 세 부담은 1405억원 줄어들고 5년 누적으로는 4680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고소득자 2만1000명 '핀셋 증세'…서민·중산층은 1600억 감세
문재인 정부가 세금을 매길 때 대기업과 고소득자는 언제나 ‘한묶음’이었다. 둘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부자’였다. 출범 첫 해 법인세 최고세율(22%→25%)과 소득세 최고세율(40%→42%)을 동시에 끌어올렸고 작년에는 종합부동산세율 등을 인상했다. 그렇게 이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재원으로 썼다.
그랬던 정부가 올해는 대기업과 고소득자 묶음을 풀고 증세 타깃을 미세조정했다. 기업의 투자 위축 등을 감안해 대기업 세금은 깎아준 반면 고소득 직장인의 세부담은 한 번 더 늘리기로 한 것이다. 근로장려금(EITC) 지급액을 확대하는 등 ‘서민 감세’ 기조는 유지하기로 했다.
고소득 직장인만 세부담 늘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표적인 ‘부자 증세’는 근로소득공제 2000만원 한도 신설이다. 근로소득공제는 소득의 일정률만큼을 빼주는 식으로 설계돼 고소득자일수록 많은 금액을 공제받는다. 현행 근로소득공제율은 ①소득 500만원 이하 70% ②500만~1500만원 40% ③1500만~4500만원 15% ④4500만~1억원 5% ⑤1억원 초과 2% 등이다. 예컨대 연봉이 1억5000만원인 직장인은 ①구간 350만원 ②구간 400만원 ③구간 450만원 ④구간 275만원 ⑤구간 100만원 등 모두 1575만원을 소득공제받는다. 소득이 많으면 ⑤구간에서 더 많은 공제를 받아 전체 소득공제액도 그만큼 늘어난다.
정부는 여기에 2000만원이란 상한선을 씌웠다.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소득공제는 2000만원까지만 해주겠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총급여가 3억6250만원이 넘는 2만1000명(2017년 기준)가량은 세부담이 늘어난다. 연봉 5억원인 사람은 110만원, 10억원은 535만원, 30억원은 221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임원 퇴직소득 한도를 낮춘 것도 부자 증세로 분류된다. 지금은 임원이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 전 3년간 연평균 급여의 10%×2012년 이후 근속연수×3(지급배수)’ 산식에 따라 산정된 금액은 퇴직소득으로 간주돼 상당 부분 소득공제를 받는다. 내년부터는 산식의 지급배수가 2배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퇴직소득 인정금액이 줄어 실제 세부담이 늘어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고위 임원들은 당장 내년부터 근로소득세를 더 내야 할 뿐 아니라 몇 년 후 회사를 떠나면 퇴직소득세도 더 내야 한다”며 “정부가 증세에 따른 조세조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소득 직장인만 ‘정밀 타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민·기업 감세로 내년 세수는 감소
서민층에 대한 세제혜택은 계속 늘리기로 했다. 연소득이 2000만원(단독 가구)~3600만원(맞벌이)에 못 미치는 가구에 주는 근로장려금 최저지급액을 연간 3만원에서 10만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최소지급액이 너무 적게 책정돼 저소득층 지원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비용부담은 연 45억원 안팎으로 그리 크지 않다.
정부는 또 야간 근로수당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생산직 근로자 요건도 총급여액 2500만원에서 3000만원 이하로 넓혀주기로 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3년 연장한다. 기획재정부는 서울시가 밀고 있는 ‘제로페이’에 힘을 보태기 위해 공제율을 일반 신용카드(15%)나 현금영수증·체크카드(30%)보다 높은 40%를 적용해줬다.
사적 연금에 대한 세제지원도 확대된다. 만기가 돌아온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연금계좌로 갈아타면 300만원 한도 내에서 전환금액의 10%만큼을 추가로 세액공제해준다. 50세 이상이면서 총급여 1억2000만원 이하(종합소득금액 1억원 이하)인 사람에 대해선 세액공제 대상 연금계좌 납입한도를 3년 동안 한시적으로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확대해준다.
기재부는 부자 증세로 연간 1000억원(근로소득공제 한도 신설 640억원+임원 퇴직소득 지급배수 축소 360억원)을 추가로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포함해 이번 세제개편으로 향후 5년 동안 고소득층(총급여 6700만원 초과)으로부터 걷는 세금이 3773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서민·중산층(-1682억원) △중소기업(-2802억원) △대기업(-2062억원) △기타(-1907억원) 등은 모두 줄어든다. 내년 전체 세수는 올해보다 988억원 줄어들고 향후 5년간 누적으로 4680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는 작년에도 세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세법개정안을 짰다. 2년 연속으로 세수가 감소하는 개편안을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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